분야별 전문의 모인 '드림팀' 만나니···말기암 환자 치료도 척척
위암·대장암·폐암·간암·유방암 등 8개 암종에 9개 진료과가 참여
치료 이해도·의료진 신뢰도 쌓이며 환자 순응도 높아지는 긍정 효과
“처음 오셨을 때보다 암 크기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보이시죠? 힘드셨을텐데 환자분이 잘 따라주셔서 치료 경과가 좋은 편입니다. 걱정했던 것 만큼 힘들지 않으셨죠?”
“예,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남들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입맛이 없어진다던데 저는 식사를 잘 해선지 오히려 몸무게가 조금 늘었지 뭡니까.”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33회에 걸친 방사선치료를 완료하고 추적검사를 받으러 온 박종수(75·가명)씨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박 씨는 지난해 이 맘때 시작된 기침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의심 소견을 들었다. 부랴부랴 조직검사를 받은 결과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폐암의 80~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NSCLC)은 폐에 처음 생긴 종양의 크기와 침윤 정도, 주위 림프절 및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1~4기로 병기를 구분한다. 같은 3기라도 림프절 전이 양상에 따라 치료 선택과 조합이 달라지는데 박씨는 종양 크기가 크지 않고 같은 편 림프절만 침범한 3A기라 항암, 방사선치료 뿐 아니라 수술도 가능하다고 했다. 의료진은 “고령임에도 기저 질환이 없고 전신 컨디션도 좋은 편”이라며 수술을 권했지만 박씨는 모든 치료를 거부해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박씨가 마음을 바꿔 방사선치료를 받게 된 계기는 ‘암 다학제 통합진료’였다. 다학제 통합진료는 암환자의 진단 및 치료에 관련된 전문의 3~9명이 팀을 이루고 협의로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약제와 기술의 도입으로 암 치료가 점점 복잡해지는 가운데 여러 진료과의 전문의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최적의 치료 계획을 모색한다. 암환자와 가족들이 이러한 과정에 동참하고 최종적으로 환자가 직접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남은 생을 병원에 누워 보내긴 싫다’며 버티던 박씨에게 주치의인 김정현 호흡기내과 교수는 다학제 통합진료를 권했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내와 아들 내외, 두살 터울의 남동생까지 동반해 동탄성심병원 본관 지하 2층에 위치한 다학제진료실을 찾은 박씨. 폐암 다학제팀 소속 의료진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약속한 오후 12시 30분이 되자 브리핑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미리 설명을 드렸지만 박종수 환자 분의 병을 같이 진단하고 계획을 하기 위해 흉부외과 이희성 교수님, 핵의학과 한유미 교수님, 방사선종양학과 하보람 교수님이 와주셨어요.”
김 교수가 박씨의 전반적인 상태와 치료법의 종류를 소개하자 핵의학과에서 PET 검사 결과를 토대로 영상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는 각각 수술과 방사선치료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학제팀은 사전에 논의한 대로 생존율이 좀더 높은 수술을 가장 우선순위에 뒀지만 박씨는 ‘나이 때문에 수술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털어놨다. 의료진들은 박씨와 가족들의 뜻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암방사선치료를 진행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는 “환자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치료법이 의료진이 1번으로 권유한 치료법과 다를 때가 종종 있다”며 “여러 진료과 교수들이 제공하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들을 비교하고 최종적으로 환자 본인이 받을 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다학제 진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암 다학제 진료는 단일 의료진의 지식과 인식에 의존할 때보다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 받으며 캐나다, 유럽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암환자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제한적이나마 치료성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암환자들이 의료진과 함께 치료과정에 참여할 경우 만족감과 심리적 안정감이 상승한다는 근거가 쌓이면서 전 세계 암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장암·위암·폐암 등에 대한 다학제 통합진료 수가를 산정하면서 많은 병원들이 도입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위암·대장암·폐암·간암·유방암 등에 대한 다학제 진료 비율이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항목에 포함되고 ‘다른 전문과목의 전문의 3인 이상’이 환자와 ‘대면’해야 다학제 통합진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준이 신설되며 진료 현장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동탄성심병원은 위암·대장암·폐암·간암·유방암·두경부암(갑상선암)·비뇨기암·부인과암 등 8개 암종에 대해 9개 진료과가 다학제 통합진료를 시행한다. 정책의 취지에 공감한 교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지난해 하반기 다학제 통합진료 건수는 상반기 대비 58% 늘었다.
김 교수는 “암 진단을 받고 처음 치료계획을 수립하거나 치료 도중 변경이 필요한 환자 위주로 다학제 통합진료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방송 사회자처럼 환자와 보호자 앞에 서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고 사소한 말실수라도 할까 신경이 곤두섰던 때도 있었다”며 “환자,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을 몸소 느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러 교수가 자신의 질환에 대해 심도 깊게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치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쌓이다 보니 환자들의 치료 순응도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동탄성심병원에서 다학제 통합진료 대상 환자에게 실제 진료를 실시한 비율은 위암 92%·대장암 63%·폐암 53%로, 적정성평가 만점 기준인 위암 7.6%·대장암 12.2%·폐암 12.6%를 훌쩍 뛰어넘는다.
동탄성심병원이 운영하는 다학제진료실 2곳은 늘 점심시간 전후로 예약 전쟁이 치열하다. 외래진료, 시술, 수술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여러 교수들이 환자, 보호자 일정에 맞춰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다보니 대부분 식사를 포기한 채 다학제 통합진료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 역시 다학제 진료가 잡혀있는 날은 오전 외래를 마치자마자 뛰어나가곤 한다.
박일석 암센터장(이비인후과 교수)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던 교수들도 환자들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라는 점에 공감하면서 참여율이 부쩍 높아졌다”며 “환자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긍정적 효과도 있어 병원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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