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에 어느 부위를 쏘이면 가장 아플까
초등학생 때 교실에 들어온 호박벌을 내쫓으려다 처음으로 벌에 쏘였다. 따끔한 첫 느낌에 이어 얼얼하고 화끈거리는 고통이 찾아왔다.
모기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에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그런데 다양한 곤충에 여러 번 쏘여가며 고통을 측정한 과학자들이 있다. 이 과학의 순교자들은 2015년 이그노벨상 생리곤충학상을 수상했다.
● 독침의 왕, 곤충에 쏘인 통증을 정리하다
“잘난 체하지 않고 남모르게 찾아오는 통증.
화려한 색색의 레고처럼 멋지다.
어둠 속에서 발바닥에 박히기 전까지는.”
- 붉은불도그개미Myrmecia gulosa. 2단계
한 편의 시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미국의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가 붉은불도그개미에게 쏘인 후 남긴 기록이다. 슈미트는 벌과 개미를 비롯한 ‘쏘는 곤충’을 주로 연구했으며, 특히 통증의 정도에 관심을 가졌다. 평생을 곤충들에게 쏘인 고통을 기록하며 연구하며 ‘스팅, 자연의 따끔한 맛’이라는 책을 쓴 그의 별명이 ‘독침의 왕(King of Sting)’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슈미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이자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1983년에 발표한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곤충 침 통증지수, Schmidt Sting Pain Index)’다. 이 통증지수는 곤충에게 쏘인 통증을 비교할 때 쓰인다.
가장 접하기 쉬운(그래서 쏘이기도 쉬운) 양봉꿀벌에 쏘였을 때의 고통을 통증 지수 2로 정의하고, 이를 기준으로 덜 아프면 1단계, 더 아프거나 미친듯이 아프면 3단계와 4단계로 분류한다.
처음 통증지수가 분류된 곤충은 21가지였지만, 슈미트와 동료들이 전 세계를 탐험하면서 새로운 곤충에게 실수로(아주 가끔은 고의로) 물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총 150종에 달하는 곤충들이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 목록에 추가되었다.
이를 위해 슈미트 본인은 1000번 넘게 곤충에 쏘여야 했다. 수많은 곤충 중에는 슈미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타란툴라대모벌(4단계)도 있었다. 그는 타란툴라대모벌에 물린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극심하고 강렬한 전기 충격. 눈앞이 캄캄하다.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고 있는데, 작동 중이던
헤어 드라이어가 풍덩 빠졌다.”
● 독침에 쏘이면 제일 아픈 부위는 ○○○
말벌, 꿀벌, 개미 등 벌목에서 침을 쏘는 곤충의 조상은 잎벌이다. 잎벌은 속이 빈 산란관을 이용해 식물 조직 내부에 알을 낳았는데, 이 산란관이 독침으로 진화했다. 알을 집어넣던 부위가 먹이나 포식자의 몸에 독을 주입하는 부위가 된 것이다.
슈미트가 단순히 괴상한 취미로 통증지수를 만든 건 아니다. 통증의 기준을 찾고 분류하는 것은 곤충 연구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야!”, “살짝 따끔해”는 쓸 데가 없다. “2단계”나 “1단계”처럼 고통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어야 과학자들끼리 자료를 비교해가며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는 독침 연구자들이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새 언어와도 같았다. 일단 만들어지고 나자, 통증지수는 곤충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연구자들은 통증지수에 따라 곤충의 생활 방식을 예측할 수도 있었고, 반대로 곤충의 외양이나 행동에서 통증지수를 예측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눈에 띄는 화려한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치장한 소잡이벌은 적어도 2단계 이상의 통증을 일으킬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 정도의 독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저렇게 강렬한 경고색을 뽐내며 날아다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슈미트는 소잡이벌 침의 통증 지수를 “절대로 잊을 수 없는 3단계”로 기록했다).
물론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에도 한계는 있었다. 예를 들어 통증의 정도는 쏘인 신체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서도 달라질텐데,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는 이를 보여줄 수 없었다. 이것이 2014년, 당시 코넬대학교 대학원생이었던 마이클 스미스 미국 오번대 교수가 관심을 가진 문제였다.
꿀벌 연구자였던 스미스는 부위에 따라 통증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벌침에 쏘여가며 통증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통증의 기준인 양봉꿀벌이 실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스미스는 신체 부위 25군데를 골라 6주 동안 한 부위에 3번씩, 총 75번을 쏘였다.
통증의 범위는 1~10 사이로 기록했다(주변에서 그를 얼마나 말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스미스는 논문에 “이 연구는 헬싱키 선언을 위배하지 않으며, 본인은 실험과 관련된 모든 위험을 알고 동의했다”고 썼다).
그 결과, 9.0으로 기록된 콧구멍이 가장 아픈 부위라는 영예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윗입술과 성기, 고환이 뒤를 이었다. 가장 아프지 않은 부위는 머리와 가운뎃발가락, 팔뚝 순이었다. 스미스는 업계 대선배인 슈미트와 공동으로 2015년 이그노벨상 생리학곤충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아, 내가 어쩌다 이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슈미트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사는 전사말벌(4단계)에게 쏘여 고통에 몸서리 친 후 남긴 기록이다. 왜 그는 이 목록을 만들었을까? 일부러 곤충에게 쏘이고 다니냐는 질문에 그는 저서 ‘스팅, 자연의 따끔한 맛’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쏘이는 걸 원하지 않지만, 데이터는 원한다고.
과학의 역사는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과 희생 정신으로 가득하다. 1786년, 산소의 발견자 중 한명이자 스웨덴의 화학자인 칼 빌헬름 셸레는 43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는 자신의 실험 재료를 맛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비소, 수은, 납 화합물 등을 실험하다 결국 건강을 잃고 만 것이다. 1980년, 미국의 지질학자 데이비드 존스턴은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을 근거리에서 관측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과학자들의 감각과 안전을 담보하는 관찰 도구들이 나왔지만, 아직도 많은 과학은 직접 경험이라는 전통에 의존한다. 독침에 쏘이는 고통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도 그 전통의 일부분이다. 직접 쏘여보지 않고 통증의 정확한 양을 측정하는 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짜 소리를 들으면서도 슈미트와 스미스를 고통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새로운 곤충과 곤충독을 향한 호기심. 그들이 선구적으로 쏘여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독침을 쏘는 곤충에 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해서 더 무지한 채로 세상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곤충의 고통에 관한 새로운 과학을 열어젖힌 슈미트는 올해 2월 18일, 향년 75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산인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는 여전히 독침 연구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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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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