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외화내빈', 그림자는 서서히 쓰러져 간다

이성필 기자 2023. 5.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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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승리 후 팬들과 함께 하는 대전 하나시티즌 선수단 ⓒ대전 하나시티즌
▲ 경기 승리 후 팬들과 함께 하는 대전 하나시티즌 선수단 ⓒ대전 하나시티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2020년 1월 국내에 처음 발병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엔데믹(endemic, 풍토병으로 전환) 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제약에 시달렸던 프로스포츠계는 과거 일상적인 관람 문화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력의 노고에는 단연 각 프로스포츠 구단의 일선 직원(프런트)들이 있다. 현장에서 '그림자' 역할을 하는 이들은 코로나19 동안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을 반납하는 등 고통 분담을 마다치 않았다.

유럽 주요 프로리그 구단들이 경기 수 감소에 따른 입장권이나 후원사 수입, 구단 상품 수입 손실로 직원 숫자를 줄이는 등 해고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았다. 선수단 임금이 전체 구단 운영비의 50~70%를 차지하는 여전한 기형적 구조에서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프로축구의 경우 기업구단인 울산 현대와 부산 아이파크가 임금 일부를 반납했었고 시민구단 수원FC도 연고지인 수원시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반납했다. 상급 단체인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도 동참했다. 이후 프로연맹의 경우 성과급으로 반납분을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가수 임영웅의 힘을 실감했던 FC서울-대구FC전 ⓒ한국프로축구연맹
▲ 가수 임영웅의 힘을 실감했던 FC서울-대구FC전 ⓒ한국프로축구연맹

당시 구단 반납 기준의 시선에서, 임금 일부 반납을 통해 선수단 운영비에 활용하는 계획이 나오자 대중의 비판 쏟아져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을 '억' 소리 나는 연봉을 받는 선수단에 활용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동조합 없는 직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 아닌가에 대한 물음표도 있었다.

3년이 지난 현재, 프로축구는 활황기다. 숫자로만 보면 장밋빛 시대가 도래했다. 12라운드까지 총관중 73만1,297명에 평균 1만157명을 모았다. 12개 구단 체제에 유료 관중 기준, 평균 관중이 1만 명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전체 관중은 182만7,061명이었고 평균 관중은 8천13명이었다. 현재 수준을 시즌 말까지 그대로 유지한다면 사상 첫 K리그1 혼자 200만 관중 돌파라는 꿈의 대업을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 시즌 30%를 치른 이후 관중 수치가 뚝 떨어지는 예년의 흐름과 비교하면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애써 K리그2와 총관중을 합칠 필요가 없다.

대전 하나시티즌의 경우 지난해 K리그2에서 20경기 총관중 4만5,411명, 평균 관중이 2,271명이었다. 올해는 6경기 8만1,557명에 경기당 1만3,593명으로 승격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고 있다. 광주FC도 20경기에서 2만6,154명에 평균 1,308명이었지만, 올해 6경기 2만4,096명에 평균 4,016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가수 임영웅 방문 효과가 있었던 FC서울은 대구FC전에서만 코로나19 이후 프로 스포츠 전체 가장 많은 4만5,007명을 모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원들이 무조건적인 희생만 한다면 200만 관중을 달성한들 무소용이다. 2019년 2월 기준 K리그 각 구단 사무국 직원 수와 올해 2월 기준 직원 수는 비슷하거나 소폭 증가가 전부다. 프로축구연맹 등록 기준으로 대표이사, 단장, 사무국장, 본부장 등 고위직을 제외한 직원 수를 살펴보면 그렇다.

강원FC 24명→33명 (인턴 5명 빼면 28명)

대구FC 14명→17명

FC서울 32명 (당시 유소년 육성 FOS팀에 4명 구성)→31명 (여자배구 담당 제외)

수원 삼성 18명→17명

울산 현대 19명→22명 (인턴 1명 빼면 21명)

인천 유나이티드 21명→25명 (클럽하우스 신축에 따른 인력 포함)

전북 현대 17명→20명 (직책 강등에 따른 인원 포함)

제주 유나이티드 12명→14명

포항 스틸러스 17명→16명

수원FC 11명(2019년 2부리그)→14명

광주FC 10명(2019년 2부리그)→10명

대전 하나시티즌(2019년 2부리그) 12명→22명 (인턴 3명 빼면 19명)

▲ 대관중 유치와 선수단 지원 뒤에는 프런트로 불리는 일선 직원들이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대관중 유치와 선수단 지원 뒤에는 프런트로 불리는 일선 직원들이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직원 대부분은 최소 서너 가지 업무를 기본적으로 한다. 구단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10가지 이상을 하는 직원도 있다. 과한 업무를 소화하다 보니 인턴으로 들어와 정규직 채용을 바랐다가 알아서 정규직에 도전하지 않고 '프런트의 꿈'을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원FC, 광주, 대전의 경우 2019년에는 K리그2(2부리그)에 있었다. 4년이 지난 상황에서 대폭적인 직원 증가는 대전이 전부다. 대전의 경우 하나금융그룹이 모기업으로 오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대전이 그나마 다른 구단과 비교해 인원이 대폭 증가한 것은 2020년 하나금융그룹의 시민구단 인수에 따른 업무 확장으로 풀이 된다. 대전은 종합스포츠클럽으로의 진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 등을 개설해 인기를 얻고 있다. 자연스럽게 해당 업무도 가능한 직원까지 채용하면서 늘었다.

강원은 반대다. 4년 전 직원 중 올해까지 일하고 있는 이는 11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신규 또는 경력 입사다. 13명은 퇴직했고 22명이 새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4년 사이 강등이 됐던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무국 인원 변동이 컸을까. 총선, 지방선거 등 선거의 영향을 받는 시도민구단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가장 현실적이다. 수장이 바뀌면 생각에 따라 구단 운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미 알린 바 있다.

얼마 전 최순호 수원FC 단장이 팬들과 언론에 사과문까지 띄웠던 것도 직원 부족에 따른 문제다. 실업구단도 아니고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현재 홍보팀을 맡은 직원은 선수단 보강 등의 업무인 전력강화팀장을 겸직하고 있다. 홍보에 대한 기준이나 특성을 제대로 못 해 우왕좌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홍보팀 직원이었던 사원은 여자팀인 수원FC 위민까지 관리했다.

지난해 A구단의 경우 국가 지원 사업을 통해 인턴 직원을 선발했다. 6개월이라 기간 만료 시점에 직원들이 한 시즌은 온전히 경험하고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구단 대표를 설득했다고 한다. 나머지 기간 임금을 구단 자체 비용으로 부담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턴은 인턴으로 채우는 것이 더 나았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새로운 인턴이 와서 다시 처음부터 가르치느라 직원들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간이 연장되지 않았던 인턴은 올해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해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고 한다. '꿈을 실현하는 직장'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꿈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직장'이라도 됐으면 좋았겠지만, 본보기가 될 수는 없었다. 예비 프런트들이 선망했던 구단이라는 점에서 더 아쉬웠다.

B구단은 평소 홍보 업무를 하는 직원이 경기 당일에는 취재석에서 상황에 따른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사라진다. 행방을 수소문하니 전광판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전광판에 표출되는 경기 영상이나 경품 소개, VIP 안내 등을 장내 아나운서와 하다 보니 정작 그라운드 위에 상황이 발생하면 취재진은 현장 직원이 없어 프로연맹에 전화를 거는 등 촌극이 빚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어떤 직원은 매표소 관리까지 하느라 경기장 안의 상황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저 선수 부상 정도가 어떠냐", "오늘 경기장에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왔다고 들었다. 어디에서 관전하느냐"라는 질문을 건네자 "네? 저는 판매한 표 검수 중이에요. 잘 모르겠네요"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오고는 한다.

이는 경영 최고위층이 홍보와 마케팅이 같은 개념이라고 보는 착각에서 온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직원이 부족하니 홍보와 마케팅을 같은 부서에 놓고 활용한다. 온갖 업무에 시달리는 직원은 체력이 떨어지니 업무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결국 업계를 떠나고 그 자리는 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처음부터 배운다. 또는 베테랑 직원을 자신의 눈 밖에 났다며 엉뚱한 부서에 배치, 시간만 보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후배들을 경험으로 가르쳐 육성하는 순환 구조라도 만들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C구단 일선 직원은 "프로 구단은 성적에 따라 분위기가 요동치는 특수한 곳이기는 하다. 그래도 업무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타부서의 일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부서 이동을 하면 모를까, 좀 심하다. 너무 과해서 대표가 원망스러운 경우도 있다"라며 한탄했다.

▲ 전북 현대 선수단 버스를 막았던 팬들. 사무국 일선 직원들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만 봤다.

경기력이 여전히 우선이라는 시각이 더 크다 보니 선수 강화 또는 지원부서에 직원 수가 더 쏠려 있는 경우도 있다.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강등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며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면서도 유소년 육성 부서 축소나 홍보-마케팅 업무 통합 등 하지 않아도 될 효율화를 하고 있다.

K리그는 승강제를 하면서도 여전히 산업 규모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중계권료 낙수 효과가 구단에는 미미하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라는 대다수 구단 직원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 온다.

그나마 일부 구단이 한계를 깨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나머지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1~2명의 홍보 직원을 놓고 "우리 구단이 이런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알리고 있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홍보 수단이 많고 관리할 도구도 많은데 외주에 맡겼으니 어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일단 외부에는 사과 형식을 취하는 대신 해당 홍보물을 올린 외주사 책임이 크다고 내부 경영진에 보고해 꼬리 자르기와 책임 회피에 나선다.

조금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외부에 대박 난 기업구단, 시도민구단의 기억 남는 홍보물이나 관중몰이 성과는 개인 역량, 아이디어 도출에 따른 돌파였다. 프로구단을 떠난 프런트가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자가 되고 변호사 등 알아서 능력을 보이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례에서 개인 역량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프로연맹은 2019년 이사회에서 신생 구단 창단 시 사무국 인원을 최소 20명 이상으로 구성하라고 규정화했다.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해달라는 의미다. 과연 구단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 기존 구단도 20명이 넘지 않는 경우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받아 쓰는 예산 구조에서 20명 이상의 사무국은 언감생심이다.

겉만 화려하고 속은 아픈, 진짜 산업이 되기 위해, 고용 창출 효과를 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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