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 달만 만나볼래요?” 친구 대신 나간 소개팅에서 시작된 ‘오월의 청춘’[오마주]

오경민 기자 2023. 5.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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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한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는 명희(고민시)와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희태(이도현)는 사랑에 빠진다. KBS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1980년 봄. 군부독재를 청산하라며 거리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사이로 외제차 한 대가 들어섭니다.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황희태(이도현)의 차입니다. 그는 민주주의나 독재타도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대학가요제입니다. 그는 대학생 자격으로 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의사시험을 합격하고도 졸업을 유예한, 타고난 ‘베짱이’입니다.

반면 희태의 가장 친한 친구 경수(권영찬)는 학생 운동과 야학 활동에 열심입니다. 경수는 종종 데모하다 다친 학생들을 희태의 방에 데려옵니다. 병원에 데려갔다가 보안대에 잡히면 큰일이니까요. 희태는 툴툴대면서 간단히 상처를 봉합하는 등의 응급처치를 해주곤 합니다. 어느날 경수는 머리에 둔기를 맞고 쓰러진 여공 석철(김인선)을 업고 나타납니다. 딱 봐도 위급해 보이는 석철을 희태는 열심히 조치하지만 석철은 결국 코마에 빠집니다. 급히 약을 사러 나갔던 경수는 그날로 사라져 소식이 끊깁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석철은 무의식 중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죠. 그 말을 들은 희태는 석철을 돌려보내기 위해 석철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광주로 향합니다.

김명희(고민시)는 광주 한 종합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합니다. 나주에 있는 집에 매달 돈을 부치면서도 꼬박꼬박 돈을 모았습니다. 유학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독일 한 대학으로부터 이른 합격 소식을 받습니다. 아직 자금이 부족해 포기하려 하지만, 알고 지내던 신부가 그에게 천주장학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해주겠다고 하죠. 좋은 기회입니다. 다만 천주장학회 장학금은 다음 달까지 출국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명희는 급히 비행기표 값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죠. 그때, 친구 이수련(금새록)이 제안을 해옵니다. 대신 선에 나가 상대방을 세 번만 만나주면 비행깃삯을 만들어 주겠다는 겁니다. 사실 광주에 있는 큰 제조업체 사장의 딸인 수련은 아버지 몰래 학생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선 자리는 보안대 대공수사과장네 아들인데, 도저히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명희는 수련인 척 선 자리에 나갑니다. 그곳에서 희태를 만납니다.

KBS 제공
KBS 제공

명희와 희태는 서로에게 반합니다. 그러나 희태의 아버지인 대공수사과장 황기남(오만석)은 수련이네 사업을 욕심내 희태와 수련을 결혼시키려 하죠. 그는 자신을 방해하는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는 잔인한 인간입니다. 명희가 한 달 뒤 유학길에 올라야 하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그때, 희태는 명희에게 딱 한 달만 만나보자고 제안합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5월에 두 사람은 사랑을 꿈꿉니다.

2021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각자의 꿈과 사연을 안고 광주에 모인 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명희와 희태, 대학생인 수련과 그 오빠 수찬(이상이), 군대에 끌려갔다 ‘광주 진압 작전’에 투입된 희태의 친구 경수 등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합니다. 드라마는 당시 군대의 무력 진압을 상세하게 재연하기보다는 사건에 휩쓸렸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힘씁니다.

김해원 작가의 어린이 소설 <오월의 달리기>를 원작으로 해 이야기를 확장했습니다. <오월의 달리기>의 주인공은 달리기로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명수(조이현)인데요, 드라마에서는 명희의 늦둥이 동생으로 등장합니다.

풋풋하고 말랑말랑한 분위기에서 시작해 결말까지 달려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입체적인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전개됩니다. 따뜻한 대사들도 인상 깊습니다. 사실 자신은 제조업체 사장의 딸이 아니라 가난한 집안의 장녀라고 명희가 고백하자 희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혼외자식이에요. 어머니는 밤무대 가수였고요. 근데 그게 뭐 나빠요? 덕분에 강하고 웃긴 사람으로 잘 컸잖아요, 우리.” 이 밖에도 드라마는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춘들,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위로를 건넵니다.

드라마를 종영할 당시 이강 작가는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 자료 조사를 시작했을 때는 5·18이라는 비극과 떠난 이들을 보고자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수많은 텍스트 뒤의 ‘남은 사람들’이 보였다”며 “제가 읽는 모든 증언과 자료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눈물로써 남겨둔 기록으로 느껴졌고, 남아있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집필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도 ‘밀물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슬픔에 잠기지 않고 계속해서 삶을 헤엄쳐 나아가길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기도한다”고도 했습니다.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이 숨진, 4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서도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는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유쾌할 땐 유쾌하게, 진득할 땐 진득하게 극을 전개해 나갑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어쭙잖은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사건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갑니다. 그렇다고 상징적인 장면을 재연하느라 극의 힘을 빼지도 않습니다. 작품은 극 장르가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시사합니다. 1980년 광주를 다뤄서 너무 무겁지는 않을까 시청을 망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적당히 가볍고, 보고 나서 먹먹한 울림이 있을 정도로는 묵직합니다.

최근 <더 글로리> <나쁜 엄마> 등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은 배우 이도현의 비중 있는 멜로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웨이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2부작.

‘방구석 여행’ 지수 ★★★★★ / 그 시절 그 곳의 완벽 재현. 모든 인물이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보기 드문 콘텐츠.

‘손수건’ 지수 ★★★★★ / 극이 중반으로 넘어가면 휴지나 손수건은 필수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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