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화장실…똥 막힌 변기를 뚫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열어야 했다. 청소해야 했으므로. 뚜껑을 드는 순간 경악했다. 휴지 더미에 꽉 막혔고, 거기엔 배변이 섞여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좋지 않은 냄새는 막을 수 없었다. 아름답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기도로 승화했다. "오, 하느님. 제가 대체 왜 이 분의 장(腸) 건강을 확인해야 하나요."
도망치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청소하는 사람 입장이었기에. 오른손에 변기 뚫는 도구(뚫어뻥)를 쥐었다. 영화에서 악당을 해치우기 전 위기일 땐, 늘 스승의 조언 장면이 나온다. 5년차 시청역 미화원님인 조옥자씨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여사님, 만약 변기가 잔뜩 막히면 어떻게 청소하시나요."(기자)
"변을 부숴요(헉). 그리고 동그란 걸 맞추고 조심조심 밀어서 뚫는 거죠. 거의 다 내려가요."(옥자님)
그 말을 믿고 '뚫어뻥'을 변기 가까이 가져갔다. 성난 용 여러 마리가 날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배설은 생존이다. 더럽고 부끄럽다며 손사래 치지만 안 하면 죽는다. 죽지 말고, 또 길을 똥밭으로 만들지 말라고 공중화장실을 잘 마련해뒀다. 귀한줄 모르고 마구 쓰는 걸 많이 봤다. 그리고 또 봤다. 내가 인상 쓰고 돌아설 때, 그 불편함과 기꺼이 마주하는 분들을.
느끼길 바랐다. 당연히 치워지는 게 아니란 걸. 늘 붐비는 서울 지하철역 화장실 청소를 직접 해봤다. 들어가기 전 감사를 남긴다. 안 된다고 하는 게 편함에도 애써 연결해준 서울교통공사 홍보팀 박정민 대리님과, 다 거절할 때 응해준 서울메트로환경 1·2호선 시청역 조옥자님, 다른 소장·주임님들께.
"생활쓰레기를 여기까지 가져와 버려요. 맥주캔, 치킨뼈, 과일껍데기도요. 여기 버려주면 그나마 감사하죠."
무슨 말인지 금세 알게 됐다. 세 번째 칸 화장실 문을 열었다. 변기 옆에 누군가 벗어놓고 간 팬티가 있었다. 옥자님이 "체험하시겠다 했으니 치워보라"고 했다. 장갑 낀 손으로 집었다. 드는 순간 배변이 묻은 걸 봤다. 오장육부가 꿈틀거렸다. 엄지와 검지로 집어 빠르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잔상이 짙어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 역시, 그마저 나은 거란다. 변기가 막히면 더 괴로워진다. 팬티를 벗어 물을 내린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막혔다. 토사물도 마찬가지. 옥자님 경험담이 이랬다. "라면 먹고 장애인 화장실에 토를 해놨어요. 새빨갛잖아요. 얼마나 막히겠어요. 손으로 다 긁어서 파고, 뚫고 했지요." 깨끗함의 뒷면엔 사람의 노고가 다 있었다.
수세식 변기(쪼그려 앉는) 칸에 들어갔다. 가장자리에 오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옥자님이 청소 방법을 알려줬다. "물 내리는 걸 누르면서, 싹 닦아주는 거예요. 어쩔 땐 벽까지 다 묻어 있어요." 이 변기는 그정도는 아녔다, 다행히도.
변이 눌어붙어 굳은 것들은 잘 안 닦였다. 물로 불리며 닦아냈다. 슥슥삭삭, 평범한 솔질이 길게 느껴졌다. 몇 분간을 힘주어 하니 겨우 지워졌다. 옥자님이 "아, 그정도만 하면 돼요"라고 했다. 덕분에 더러웠던 변기가 깨끗해졌다. 손님 받을 준비를 마친 거다.
꽉 막힌 변기 뚫는 게 더 힘들었다. 종로3가역 화장실. 배변과 휴지로 범벅돼, 범람하기 직전인 변기가 있었다. 뚫어뻥을 넣어 구멍에 맞추고, 아래로 위로 천천히 압력을 넣어 뚫었다. 물이 찰랑거릴 땐 등골이 오싹했다. 쑥 내려가는 소리가 난 뒤 물을 내리니 깨끗해졌다. 뿌듯했으나 속은 오래 미식거렸다. 옥자님과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심하게 막혔을 땐 다 넘쳐서 대변이 떨어져서 다니기도 해요. 긁어서 빼고 건더기는 휴지로 싸서 건져서 버리고요. 고역이지요."(옥자님)
"비위가 많이 상하시겠어요. 힘들진 않으세요."(기자)
"상하긴 하지요. 그래도요. 우리가 직업으로 선택한 거니까요."(옥자님)
몸을 갈아넣어 반짝이게 하는 일이었다. 더러운 걸레에 물을 콸콸 쏟았다. 독한 약품을 넣어 빨았다. 묵직한 걸 들어 털고 짜냈다. 그걸 들어 바닥을 닦았다. 앞으로 쭉쭉 밀었더니 옥자님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고객님도 칠 수 있고, 휴지나 이런 게 다 밀리지요." 걸레를 세워 두 손으로 잡고, 슥슥 조심조심 훔치는 거란다. 그리 하니 손목에 무리가 덜했다.
수세식 변기는 쪼그리고 닦으니 금세 무릎이 욱신거렸다. 종로3가역 미화원님은 아예 웅크려 소변기 주변 바닥을 휴지로 닦아내고 있었다. 새까만 바닥이 반짝거렸다. 다들 고령이어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옥자님은 "무릎, 허리 다 안 좋지요"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벽면을 가득 메운 낙서도 일일이 지운단다. 직접 지워봤다. 옥자님이 낙서를 지울 때 쓴다는, 물파스를 가져왔다. 얼마나 문댔는지 납작해졌다. 그걸 들고, 욕설 낙서를 지웠다. 쓱쓱 문대니 지워졌다. "콜록 콜록." 밀폐된 공간이라 매운 파스 내음에 금세 기침이 나왔다. 옥자님이 "독하지요. 스티커 제거제는 더 독해요"라고 했다. 오늘 이리 지워도 내일 또 생긴단다.
청소할 땐 늘 고개를 숙이고, 눈은 화장실 바닥에 두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재빨리 청소한단다. 그러는데도 뭐라하는 시민들이 있다. "왜 여자가 청소하냐고 소리치는 거지요." 옥자님의 말이었다. '청소 중입니다' 팻말을 놓아도 무시하고 불쑥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그저 후다닥 할뿐이란다.
그러는 동안 입엔 "죄송합니다"가 붙어 있었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할 때였다. 술 먹은 걸로 보이는 60대 정도 남자가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다(알아 듣기도 힘듦). 그러자 옥자님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빠르게 걸레질을 했다. 누가 죄송해야 하고, 누가 감사해야 했을까. 무언가 울컥했다.
더러운 걸 치우는 게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옥자님이 고갤 저었다. 그보다 힘든 건 다른 거라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닦고 있었어요. 출퇴근 시간엔 4분 간격으로 사람이 와요. 서로 섞일 수밖에요. 옆에 닿으면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더러운 게 묻었다는 듯 털고요. 우릴 쓰레기로 생각하는 거지요. 청소도 더러운 걸 치우는 것도 괜찮아요.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게 더 마음 상하고 상처 받고요."
장애인 화장실을 청소하려 문을 연 것뿐이었다. 사용자가 문을 안에서 잠가야 하는데, 잠그지 않아 열렸다. 안엔 등산복 차림인 비장애인이 있었다. 그는 양변기 뚜겅에 발을 딛고 올라가 있었다. 깜짝 놀라 옥자님이 연신 "죄송하다"고 하며 나왔다. 그는 청소하는 곳을 쫓아다니며 마구 뭐라고 했다. 죄송하단 말만 반복했단다. 상처가 오래 갔다.
가래침을 세면대나 소변기, 쓰레기통, 지하철역 바닥 및 계단에 뱉지 마세요. 잘 씻겨 내려가지도 않고 치우기가 많이 괴롭습니다. 정말 많다고 합니다.
변기 막히지 않게 휴지 적당히 써주세요. 다 쓴 뒤엔 뚜껑 열어놓고 가주세요. 닫혀 있으면 그 안을 보는 게 몹시 두렵습니다.
변기 뚜껑 위에 올라가거나, 발로 여닫거나 물 내리지 마세요. 일일이 다 닦아야 합니다.
손은 씻은 뒤 가급적 세면대 안에서 털어주세요. 물기가 바깥에 많이 튑니다. 미끄러지고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힙니다.
변기가 막혔다면 뚜껑 닫지 마시고, 역무실로 신고해주세요. 모르는 상태로 다음 사람이 물을 내리면 범람해서 청소하기 훨씬 어려워집니다.
함부로 낙서하지 마세요. 밀폐된 공간에서 약품을 써서 지우는 탓에, 눈과 코가 따갑고 아픕니다.
소변 보실 때 '조준' 잘해주세요. 여기저기 튀어 청소하기 많이 힘들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집 화장실을 쓰듯 쓰시면 좋겠습니다.
에필로그(epilogue).
어느 한겨울, 옥자님이 에스컬레이터 청소를 할 때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따뜻한 음료를 가져와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미화 선생님 없으면 얼마나 더러워지겠어요. 난리나지요. 너무 고생 많아요. 고맙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한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옥자님과 또 다른 옥자님들을 위한 응원을 챙겨왔다. 고마운 독자님들에게, 미화원님들께 전하고픈 이야길 들려달라고 했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단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청결하게 관리해주셔서 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미연님)
그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껏 당연하다 생각해왔던 것들이 없었을 거예요.(솔이님)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스히 인사해주세요.(반달님)
강남 출퇴근 직장인이에요. 역 하루 이용 건이 100만 건이 넘는다지요. 그 많은 이들이 지하철 화장실을 갈 땐 다급해서 가잖아요. 마음 편하도록 늘 깔끔한 환경 만들어주셔서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정현님)
아버지께서 미화원이십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일터에 처음 가신 날, 충격 받아 우셨어요. 휴게실이 너무 열악하고 악취가 나는 지하 공간이라고요. 노동자 휴식권은 법적 틀에서 더 강력하게 강제해야 합니다. 실태 감독은 상시로 이뤄져야 하고요. 가장자리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춘님)
깨끗하게 쓰려는 시민입니다. 열악한 노동인 걸 알아서, 청소하실 때 사용하려면 죄송스럽습니다.(선희님)
가장 더러운 공간을 가장 깨끗하게 만들어주시지요. 늘 응원하고 고맙습니다.(글리터님)
지하철역 화장실 갈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더럽지 않을까 하고요. 막상 가보면 청결하고 관리가 잘 되고 있더라고요. 당신들이 계셔서 많은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화장실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마인드앤모션님)
직장 미화 여사님께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해주시더라고요. 덕분에 화장실을 집처럼 편안히 쓸 수 있었어요. 꽃보다 더 고운 여사님 마음과 손길 덕분에요.(히즈스프링님)
마주칠 때마다 쑥스러워도 감사하다고 인사해요. 한 분, 한 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현경님)
청소하시는 분들에 대한 대우가 우리나라는 정말 여전히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앨리슨님)
밤낮으로 청소해주시는 덕분에 깨끗한 화장실을 씁니다. 긴 코로나 시대엔 소독 업무까지 해주셔서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요. 덕분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살만해지는 것 같습니다.(은혜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미화원님, 늘 감사합니다.(달리님)
이탈리아에 다녀오고 입국하던 날, 공항 화장실서 정말 드러 누웠지요. 이리 깨끗한 걸 당연히 여기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몸이 너무 고달프지 않으시기를…정말 감사합니다.(연경님)
해외서 살다와 그런지, 한국 공중 화장실 청결에 매번 놀랍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 더 큰 존경을 보내 드립니다.(린다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기분 좋은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숨겨진 노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무례한 사람들 때문에 받는 상처보다, 감사와 응원의 마음이 더 많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서련님)
억대 연봉은 여러분들이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잊지 않고 저희 집보다 더 깨끗히 사용하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동동님)
가장 필요한 곳에서 늘 고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수아님)
귀한 손길로 섬겨주셔서 감사 드립니다.(세아님)
주변에서 항상 마주치는 분들인데, 관심 없이 살아오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휴게 공간과 근무 환경이 나아졌음 좋겠습니다.(혜인님)
평범한 하루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차분한 주변 환경일테죠. 평범한 하루를 만들어주시는 미화노동자들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종인님)
늘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기도 하고 쑥스러워 그러지 못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효정님)
저희 어머니도 미화 일을 오래 하고 계세요. 제가 타고 있는 지하철은 배설불과 오염된 물질로 끈적해져 있을 거예요. 그 분들이 없다면요. 화장실을 평온한 얼굴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화진님)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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