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이 입금된 날, 엄마를 미라로 만들었다[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3. 5. 1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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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60쪽 | 1만4000원

“작은방으로 가는 중간 바닥에 코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뭔가를 급히 찾으러 가려다 문턱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보였다. … 엄마가 돌아가셨다. 향년 76세.”

명주는 ‘엄마’가 사망하자 따라 죽으려 했다. 약을 몇십 알 털어 넣고 엄마 옆에 누웠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쯤 자고 깬 뒤 비몽사몽으로 헤매던 차에 엄마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이번달 연금을 보냈다는 문자였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었다

명주는 조립식 삼나무 관과 아마포를 주문했다. 염습에 필요한 재료도 샀다. 냄새를 쫓을 편백나무 수액도 구입했다. 중고 에어컨과 제습 기능을 갖춘 공기청정기도 사들였다. 시신을 염한 뒤 아마포에 싸 관에 넣었다. 명주는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라고 뇌까렸다.

기초연금 30만7500원, 유족연금 69만8000원을 더하면 100만5500원이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 통신비, 식비 등을 빼면 28만원가량 남는다. 엄마 병원비, 약, 기저귀 등을 사는 데 들어가던 이 돈이 이제 명주를 위한 돈이 됐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명주는 엄마가 남겨준 풍요와 여유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간호간병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간병의 터널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을 잠시 누렸다가 곧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죄책감에 줄곧 시달렸다. 치매에 걸린 동네 ‘은빛요양원 할머니’ 아들이 주식 빚 갚으려고 할머니 집을 팔아 요양원에 맡겨 두고 몇년째 소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는 “엄마의 집을 빼앗고 요양원에 유폐시켜놓은 아들이나,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두고 연금을 빼먹는 자신이나 하등 다를 게 없었다. 하물며 자신은 죽은 엄마가 흙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게 만든 패륜아였다”고 자책했다.

두려움도 몰려왔다. ‘사체은닉’ ‘연금부정수령’ 같은 말을 검색했다. ‘아버지 사망 숨긴 채 20년간 연금 수령한 70대 딸 기소’ 사건 기사를 자세히 읽었다.

‘은빛요양원 할머니’가 놀이터 등을 걷는 모습을 볼 때면 엄마가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옆 동네 아파트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도와준 마트 점장이 볼 때마다 안부를 물었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과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옆집 사람마저 피할 순 없었다.

악마가 속삭였다 ‘한 대 패버려’

명주는 13평 임대아파트 701호에 산다. 옆집 702호 스물여섯 청년 준성과 친해진다. 준성은 뇌졸중 후유증에 알코올성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본다. 준성은 매일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공원 트랙으로 나가 함께 걷기 연습을 한다. “아버지는 운동을 하는 게 마치 준성을 위해서 하는 수고라도 되는 듯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준성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간병도 운동도 힘들기만 하다. 준성이 고3 때 쓰러진 아버지는 그 후로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전문대학 물리치료학과를 다니며 국가고시 자격증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가 다시 쓰러졌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길바닥에 널브러지곤 했다. 주정하는 아버지를 어깨에 둘러메고 올 때면 때려죽이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곤 며칠을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버지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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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도 엄마에게 모진 짓을 했다. 돌봄을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엄마가 대변을 세면대 구멍에 쑤셔 넣는 걸 보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를 데리고 병원 다닐 때 어떤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딸이 혼자 두고 도망가겠다’고 하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엄마를 보며 그런 말을 절대 안 할 거라고 결심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치매가 급속하게 진행할 땐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명주는 변기 물로 양치질을 하는 엄마를 보고 차라리 빨리 죽으라고 악다구니를 쳤다. 준성에게 차마 꺼낼 수 없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밥을 차려주면, 엄마는 다른 인격이 들어간 듯 “야, 이년아, 이걸 음식이라고 했냐?”고 욕하며 음식을 내던졌다. 악마가 명주 머릿속에서 ‘한 대 패버려’라고 속삭였다. “처음 한 대가 어려웠지 한 번 나간 손은 좀처럼 멈춰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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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갈아 넣어도 느는 건 빚

명주 아버지는 친구 탄광 사업에 투자해 모든 재산을 날렸다. 명주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관절염으로 일을 쉬었던 엄마도 다시 일을 나갔다. 남동생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명주는 이혼하고 백화점 구두매장에서 일했다. 목표액을 맞추려고 자기 카드로 구두를 사서 가매출을 잡고 매출이 좋은 날에 돌려받는 방식으로 매출액을 채웠다. 점장은 입만 열면 “니들이 여기 아니면 갈 데나 있어? 식당이나 마트밖에 더 있냐고?” 같은 말을 지껄여댔다. 점장의 압박에 카드빚과 여기저기 빌린 돈이 2000만 원을 넘긴다. “여기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인생을 갈아 넣어도 느는 건 빚뿐이었다.”

엄마 집으로 간병하러 들어오기 전 자동차공장 급식 조리원으로 일했다. 백화점이나 보험사 콜센터처럼 고객 응대에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어서 버틸 만했다. 물이 펄펄 끓는 솥이 바닥에 쏟아지면 큰 화상을 입었다. 습진이 있던 발에 장화가 녹아 달라붙어 좀처럼 낫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통증’ 때문에 ‘근로능력 불가’ 판정이 나오지 않아 기초수급자 신청도 어려웠다. “가난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고 수치스러운데, 몸이 아프다는 걸 증명하는 건 더 복잡하고 굴욕적이었다.” 만 원이라도 싼 고시원을 찾아 방을 옮겨 다녔다. 약값을 벌려고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아르바이트도 눈여겨 봤다.

보험료 97만원이 밀려 병원 갈 엄두를 못 냈다. 엄마에게 먹이던 신경안정제와 진통제를 먹곤 했다. 연금을 받으면서도 마트에 가면 “언제나 사고 싶은 것과 살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같은 가격에 20매가 든 치즈와 25매가 든 치즈를 고민하다가 값싼 마가린을 골랐다.

원한 건,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옆집 준성의 형은 아버지가 쓰러진 뒤 몰래 13평 임대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괌으로 떠났다. 준성은 편의점과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거쳐 대리운전을 한다. 운전병 출신이다. 아버지가 잠드는 시간 일하는 게 장점이었다. 월 300만의 간병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일과 간병을 병행한다.

보통 일곱 시에서 새벽 한 시까지 운전해 5만원을 벌었다.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아 일을 못 하는 날을 빼면 한 달 평균 100만원 벌기도 빠듯했다. 아버지 국민연금은 62만 원이다.

모욕과 차별, 부조리도 힘들다. 비가 오면 ‘대리기사분들의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적힌 24시간 현금인출기 공간에 들어가곤 했다. 발 냄새 나는 양발을 운전석에 올리는 ‘진상’도 감당해야 한다. 벤틀리를 주차하다 급발진 같은 현상 때문에 뒤쪽 범퍼와 앞뒤 문에 손상을 입혔다. 수리비는 6000만원인데, 보험으로 처리되는 건 4000만원뿐. 게다가 차주는 수리를 마칠 때까지 하루 렌트비를 아버지 월 연금보다 18만원 많은 80만 원으로 계산해 3주 치 1440만 원을 달라고 했다. 매달 14만원씩 내던 대리기사 보험료는 준성을 보호하지 못했다. 대리업체가 절반인 7만원을 착복한 것이다.


☞ “영업비밀이라는 대리기사 알고리즘, 단협에 넣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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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성은 절망한다.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하느님, 제 앞날에 과연 희망이 있기는 한 건가요? 준성은 분노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늘에 대고 소리 없이 외쳐댔다.” 준성이 원한 건 그냥 단지 자기 인생을 사는 일이었다.

명주가 바란 삶도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두 사람 다 생존조차 힘들다. 준성의 아버지도 사고를 당한다. 명주가 준성에게 말했다. “나라가 못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 간병 살인, 간병 파산 이어지는데···국가는 책임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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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상 받을 때 제목은 ‘야만의 겨울’이었다. 시신을 미라로 만든 뒤 연금으로 살아야 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들의 참혹한 현실을 뜻한다. 야만은 소설 속 대리기사, 집배원, 미용사 등 여러 직종 노동자들과 이혼 여성이 겪는 차별과 혐오, 착취, 사고다. 명주가 진통제와 컵라면을 사려고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다 폭력과 모독을 당하는 장면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코인과 라면의 야만’이 겹쳐졌다.

문미순은 여러 경험을 녹였다.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전엔 간혹 개인과외를 하며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남편 수입에만 기댈 수 없었다. 2021년 심훈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8년 동안 최저시급을 받으며 여러 일을 했다. 지난 9일 출간 기자회견에서 “사회에 여러 계급이 나뉘었고, 아래로 갈수록 쉽게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기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홀로 병실을 지키며 돌봄과 간병 문제를 절감했다고 한다.

잔혹한 현실을 다루면서 스릴러물 요소를 넣었다. 속도감과 몰입감 덕에 술술 읽힌다. 강영숙, 은희경, 정유정 같은 동료 소설가들이 극찬했다. ‘주례사 추천사’가 아니라는 건 책을 들면 확인할 수 있다.

문미순 작가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나무옆의자 제공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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