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성장하는 아이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어른들은 모른다
편견을 바로잡을 나이
생후 3개월부터 피부색 선호
6살부터 고정관념·젠더 편견
‘교육’과 ‘경험’으로 강화돼
이른 시기에 교정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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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자 친구들은 예쁘게! 남자 친구들은 멋지게 해보세요!”
올해 6살인 딸아이 입에서 나온 말에 내심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사고가 잠시 정지한다. ‘예쁘게와 멋지게는 어떻게 다른 걸까?’ 아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걸 알면서도 일부러 팔뚝을 치켜든다. “이거 봐! 엄마 근육 예쁘지?” 나의 작고 소중한 알통을 뽐내보지만, 턱도 없다. 놀랍게도 아이가 말하는 ‘예쁘게’와 ‘멋지게’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테레오타입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6살 여아의 눈에 들 때까지 자세를 고쳐야 한다. 보통은 두 손으로 턱밑에 꽃받침을 만드는 모양으로 타협한다.
6살이라고 해봐야 57개월 남짓. 내게 찾아온 생명이 딸이란 걸 처음 안 때부터 두려웠다. ‘여자애는 이래야 해’ 같은 성별 고정관념을 배운 딸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날이 언젠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이르게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성별 고정관념은 사진 찍는 자세에 국한되는 법이 없다. 관심사가 달라지고, 머지않아 자기 자신이나 친구의 행동거지를 통제하기 시작하며, 고정관념과 다른 친구를 차별하거나 따돌리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5살과 6살의 차이
미국 뉴욕대, 일리노이대, 프린스턴대 공동 연구팀은 어린이가 6살이 되면 여아는 자기 성별에 ‘총명함’이라는 특성을 연결할 가능성이 남아보다 낮아지고, 총명함을 필요로 하는 활동을 피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5~7살 어린이 96명을 대상으로 세가지 과제를 냈다. 먼저 ‘정말 정말 똑똑한’ 사람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 뒤 낯선 어른 남자 2명과 여자 2명 중 누가 이야기의 주인공인지 추측해보라고 했다. 또, 여러 쌍의 동성 또는 이성의 어른을 보고 누가 ‘정말 정말 똑똑한지’ 맞혀보라고 했다. 낯선 남성과 여성의 사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물체나 속성을 골라보는 과제도 냈다.
분석 결과, 5살은 남아와 여아 모두 자기 성별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6살과 7살 여아는 자기 성별과 총명함을 연결할 확률이 남아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경제적, 인종적 배경과 관계없이 이런 경향은 대체로 비슷했다.
연구팀은 후속 실험에서 어린이들의 이런 인식이 관심사에도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6살과 7살 어린이 64명에게 내용과 규칙이 유사한 게임 2개를 소개했는데, 하나는 ‘정말 정말 똑똑한 아이들을 위한 게임’, 다른 하나는 ‘정말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을 위한 게임’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좋아하나요, 싫어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여아는 ‘정말 정말 똑똑한 아이들을 위한 게임’에 남아보다 흥미를 훨씬 덜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정말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을 위한 게임’에 대한 흥미는 여아와 남아에서 차이가 없었다. 이번엔 5살 어린이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더니, ‘정말 정말 똑똑한 아이들을 위한 게임’에 대한 여아와 남아의 관심도는 차이가 없었다.
이처럼 6살 어린이부터 고정관념을 배우고 적용하기 시작하며 명백한 차별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 10살이 되면 ‘미묘한’ 차별까지도 인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리고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 이를 학습하는 방식도 다르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은 초등학교에서 1·3·5학년 학생 300여명을 모집해 임의로 빨간 그룹과 파란 그룹을 설정한 뒤, 모든 어린이를 빨간 그룹에 배치했다. 그리고 ‘교육’ 혹은 ‘경험’이라는 각기 다른 방법을 통해 파란 그룹에 대해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교육’ 조건에서 어린이는 “파란 그룹 사람들은 정말 나빴어”, “파란 그룹 사람들이 너희에게 얼마나 못되게 구는지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반면 ‘경험’ 조건에서 어린이는 파란 그룹 구성원에게 사탕을 받았다. 10개를 받을 수도, 혹은 전혀 못 받을 수도 있었다. 이후 파란 그룹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1학년 어린이에게는 교육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즉 사탕을 받지 못한 경험을 한 어린이보다, 파란 그룹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들은 어린이가 파란 그룹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5학년은 정반대로 경험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사탕을 적게 받은 어린이일수록 파란 그룹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파란 그룹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들은 뒤, 이와 모순되게 사탕을 많이 받는 경험을 하게 한 조건도 있었다. 이 경우에도 1학년과 5학년 차이는 분명했다. 1학년 어린이는 사탕을 많이 받은 경험이 무색하게도, 나쁜 이야기를 기억하고 파란 그룹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반면 5학년 어린이는 파란 그룹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들은 이야기보다 직접 경험한 것이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부색 차별 인식
문제는 어린이에게 이렇게 일찌감치 편견을 발달시키는 ‘능력’(?)이 있는데도, 어른은 그저 어린이가 ‘아직은’ 모를 거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600명 이상이 참가한 미국의 온라인 연구에서 △아이들과 인종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이른 나이가 언제라고 생각하는지 △인종차별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시기가 언제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다수의 참가자들은 어린이가 유아기부터 피부색에 따른 차이를 알긴 하지만, 인종차별에 관한 대화는 다섯째 생일 즈음에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치면 6~7살이다. 놀랍게도 참가자의 피부색(40%가 유색인종)과 관계없이 결과가 비슷했다. 참가자의 부모 상태, 성별, 교육 수준, 아이와의 경험도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캐나다·남아프리카공화국·이스라엘·홍콩 등의 기존 연구를 보면, 생후 3개월부터 아이는 특정 피부색의 얼굴을 선호하고, 9개월부터 피부색으로 얼굴을 분류할 수 있으며, 3살 어린이는 일부 피부색 그룹을 부정적인 특성과 연관시킨다. 또 4살은 백인을 부와 높은 지위와 연관시키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이미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중요한 대화가 지연될수록 차별적 신념을 바꾸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엄마로 살면서 어린이를 이해하고 싶을 때면 종종 말이 전혀 통하지 않고 문화도 완전히 다른 이 세계에 떨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가장 먼저 정보에 굶주릴 것이다. ‘혼란한 가운데 주변 세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반적인 규칙을 열심히 찾으려 하겠지’라고 생각해본다. 어린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양육자로서의 관찰과 어린이를 연구한 과학자들의 공통된 증언을 종합하면, 어린이는 자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한다. 아주 어린 나이에 모든 종류의 복잡한 주제를 생각할 수 있다. 주입으로, 혹은 경험으로 얻은 정보를 재구성해 자기만의 생각을 굳힌다. 그것이 부정확하거나 해로울지라도 말이다.
나의 우주, 나의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과 점진적인 독립을 응원한다. 어른에게서 배운 고정관념 때문에 관심사와 잠재력을 제한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한다. 어린이를 이해하려 하고, 어린이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 같은 것 말이다.
과학칼럼니스트
육아를 하며 과학 관련 글을 쓴다. 과학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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