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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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CLA 로스쿨 유학 시절, 각 분야별로 성공한 개업 변호사들이 자신의 영업비결을 들려주는 수업을 들었다.
그중 한 변호사는 자신의 전문 분야 중 하나가 '변호 과오(legal malpractice)' 소송이라고 했다.
비윤리적이고 불성실한 변호사들 때문에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법조 직역의 전문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싶고, 변호 과오 소송에서 승소하면 나름의 돈벌이도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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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CLA 로스쿨 유학 시절, 각 분야별로 성공한 개업 변호사들이 자신의 영업비결을 들려주는 수업을 들었다. 그중 한 변호사는 자신의 전문 분야 중 하나가 ‘변호 과오(legal malpractice)’ 소송이라고 했다. 의사를 상대로 하는 의료 과오 소송은 들어봤어도, ‘변호 과오’ 소송이라니. 변호사가 변호사를 상대로 싸우는 일을 전문 분야로 내세우다니. 이 사람, 변호사 업계에서 왕따 아닐까?
그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 과오 소송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의미’와 ‘돈’, 두 가지로 설명했다. 비윤리적이고 불성실한 변호사들 때문에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법조 직역의 전문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싶고, 변호 과오 소송에서 승소하면 나름의 돈벌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법조계 커뮤니티에서 받는 평판이 중요하고 소송 상대방이 될 변호사가 지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건 수임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흔히 미국은 변호사가 발에 챌 정도로 많고, 손해액의 규모가 크고, 변호사들이 돈 벌려고 온갖 소송을 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런 미국에서조차 변호사를 상대로 싸워줄 변호사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회색지대에 놓인 법률 소비자들
나도 변호사가 상대인 소송을 해본 적 있다. 변호사를 상대로 하는 착수금 반환 소송이었다. 사건은 이렇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계약은 위임계약이다. 위임계약은 상호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민법은 당사자가 언제든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변호사가 계약을 먼저 해지할 수 있고, 의뢰인은 계약이 끝날 때까지 변호사가 한 업무에 대해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판례가 그렇다. 원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변호사 업무의 특성상 부르는 게 값이라 분쟁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인턴이 대신 서면을 쓴 것 아니냐?’라고 따진 것이 화근이었다. 변호사는 신뢰가 깨졌으니 더 이상 사건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예정된 변론기일 1주일 전 사임서를 제출했다. 돌려줄 착수금은 없으니 필요하면 소송을 하라고 했다. 의뢰인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변호사한테 변호사 비용을 돌려받기 위해, 다시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 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부득이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중도에 사임한 변호사에게는 보수청구권이 없다고 다투었지만, 법원은 착수금 800만원 중 500만원은 변호사의 몫이라고 판단했다. 서면의 양과 질은 차치하고, 1심 일곱 번 기일 중 두 번의 변론에만 출석했으니 500만원은 과하다고도 다투었지만, 법원은 적정하다고 했다. 그 보수가 무슨 기준으로 산정된 것인지 의뢰인은 끝내 납득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래 다투려던 사건보다 변호사와의 소송전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변호사가 기일에 3회 불출석하여 논란이 된 사건이 불거지자, 대한변호사협회는 신속하게 직권으로 징계 조사에 착수했다. 이처럼 변호사의 과오가 명확한 사건은 오히려 간단한 사건일 수도 있다. 법률 소비자들의 피해는, 답이 명확하지 않은 회색지대에서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변호사를 상대로 다투는 소송은 돈이 되는 분야가 아니어서 변호사를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분야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법률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제도들이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혜온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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