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감독 교체 주기, 독일까 약일까? [경기장의 안과 밖]

배진경 2023. 5. 13. 07: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감독 교체는 축구계에서 극약처방으로 통한다. 시즌 중 가장 큰 자극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꺼내야 하는 카드다. 최근에는 너무 남발하는 감이 있다. 토트넘은 3년6개월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정식 감독 4명을 경질했다.
안토니오 콘테(오른쪽)와 크리스티안 스텔리니는 최근 잇따라 토트넘 홋스퍼 감독에서 경질되었다. ⓒAP Photo

2023년 4월23일은 토트넘 홋스퍼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억될 하루였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6-1로 대패했다. 전반 21분 만에 5골을 헌납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이른 시간에 허용한 5실점 기록이다. 뉴캐슬이 올 시즌 승승장구하며 리그 3위에 올랐다 해도 이 경기 전까지 토트넘과의 승점 차는 3점에 불과했다. 전력 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5골 차 대패와 이른 대량 실점은 용납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하루 뒤 토트넘의 대니얼 레비 회장은 뉴캐슬전의 참담한 결과에 책임을 묻고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감독대행과 코치들을 경질했다고 발표했다.

스텔리니는 정식 사령탑이 아니었다. 그는 한 달 전 지휘봉을 놓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수석코치이자 임시 감독이었다. 콘테 감독이 부진한 성적으로 토트넘을 떠나자 그를 대신해 올 시즌까지만 팀을 이끌기로 했다. 레비 회장은 스텔리니 감독대행 체제로 팀을 수습하며 잔여 시즌을 버티고 새 시즌에 맞춰 정식 사령탑을 선임하려 했다. 하지만 스텔리니 체제에서도 토트넘은 1승 1무 2패로 부진했고, 뉴캐슬전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했다. 이제 토트넘은 1991년생 라이언 메이슨 코치가 감독대행의 대행을 맡는다. 메이슨 대행 체제는 낯설지 않다. 이미 2021년에도 조제 모리뉴 감독이 경질된 뒤 약 2개월간 감독대행을 맡은 바 있다.

감독 교체는 축구계에서 극약처방으로 통한다. 시즌 중 가장 큰 자극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꺼내야 하는 카드다. 최근에는 너무 남발하는 감이 있다. 토트넘은 3년6개월이 채 되지 않는 동안 정식 감독 4명을 경질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모리뉴, 누누 산투, 그리고 콘테까지 유명 감독들이 차례로 왔다가 소득 없이 떠났다. ‘스페셜 원’ 모리뉴 감독의 경우 그의 커리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 유일한 팀이 토트넘이었다. 토트넘을 떠난 뒤 지휘봉을 잡은 AS 로마에서는 다르다. 첫해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팀을 유로파리그 준결승에 올려놓은 상태다. 이쯤이면 토트넘의 실패는 감독들의 능력이 아니라 운영을 맡는 수뇌부의 인내심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토트넘만의 문제는 아니다. 콘테 감독의 사임을 시작으로 첼시의 그레이엄 포터 감독, 레스터 시티의 브랜든 로저스 감독까지 세 명이 차례로 물러났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 역시 이 시기에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을 경질했다. 유럽 축구 매체들은 감독들의 릴레이 경질과 사임을 두고 ‘피의 일주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특히 첼시는 토트넘 못지않게 인내심이 없다. 포터 감독은 선임된 지 7개월 만에 경질됐다. 그는 올 시즌 6라운드까지는 브라이튼 앤드 호브 알비온의 감독이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로부터 팀을 인수한 새 구단주 토드 볼리는 개막 한 달 만에 토마스 투헬 감독을 경질했다. 자신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중하위권 전력의 브라이튼을 돌풍의 팀으로 이끈 포터 감독을 후임으로 선임했는데, 결과적으로 첼시의 이 선택은 착오였다. 빅클럽 지휘 경험이 없는 포터 감독은 브라이튼에서 보여준 능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첼시는 리그 11위까지 추락했다. 볼리 구단주는 팀 레전드 출신 프랭크 램퍼드를 감독대행으로 앉혔다. 급한 불을 끄려 했지만 되려 4연패에 빠졌다. 결국 램퍼드로도 안 되겠다는 여론이 뜨거워지자 다급하게 정식 감독 선임을 추진 중이다. 지난 8년간 첼시의 감독 계약서에는 도장 마를 날이 없었다. 무려 10명의 감독을 바꿨다. 그동안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 각 1회의 성과를 냈지만 ‘감독의 무덤’이라는 이미지를 피할 수는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명장 앨릭스 퍼거슨 감독 은퇴 후 지난 10년간 5명의 정식 감독과 3명의 임시 감독이 거쳐갔다. 트로피는 4개밖에 들지 못했다. 리그 우승은 10년째 멀어진 상태다. 퍼거슨 재임 시절 리그 우승 13회와 비교된다.

같은 기간에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 감독 체제를 유지했다. 8년간 400경기 넘게 이끈 클롭 감독은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FA컵, 리그컵, 클럽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최근 리버풀이 5경기 연속 무승(2무 3패)으로 리그 9위까지 떨어지며 클롭 감독에게도 위기가 닥치나 싶었지만, 2연승으로 다시 회복하는 분위기다. 맨체스터 시티도 2016년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 취임 후 사령탑 교체가 없다. 팀이 가장 원하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아직 일구지 못했지만, 리그 우승 4회를 포함해 트로피 총 11개를 들어올렸다. 잦은 감독 교체보다 특정 감독 체제로 일관성을 유지한 팀이 성과 면에서 더 앞섰다.

K리그도 감독 교체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배경은 2013년 1부 리그(K리그1)와 2부 리그(K리그2) 간 승강제를 도입하면서다. 그전까지는 성적이 부진해도 시즌 종료 후 감독을 바꾸는 게 일반적이었다. 2부 리그로 강등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강제 이후 구단과 팬들의 조바심이 커졌고, 강등 위기가 닥치면 전반기부터 사령탑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도 수원삼성이 개막 후 7경기 만에 이병근 감독을 경질했다. 지난해 박건하 감독이 물러나고 지휘봉을 잡은 지 정확히 1년 만이었다. K리그1은 2021년 서울과 강원이 시즌 중 감독을 교체했다. 지난해에는 수원·대구·성남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22년에는 5월(수원), 2021년에는 9월(서울)이 시즌 중 교체의 신호탄을 쐈지만 올해는 4월로 당겨졌다.

현재까지 수원의 극약처방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성용 감독대행 체제에서도 2연패에 빠졌다(4월25일 기준). 토트넘, 첼시와 비슷한 분위기다. 과거에는 감독 교체 시 허니문 효과가 존재했다. 퍼거슨 감독은 “시즌 중 선수단을 통째로 바꿀 수 없으니 감독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감독 교체는 곧 최대 위기의 시그널이었고, 선수단도 한발 더 뛰려는 의욕을 보였다. 강등권 팀들이 이런 효과를 노리며 잘 활용했다. 샘 앨러다이스, 로이 호지슨, 앨런 파듀, 해리 레드냅 등은 강등 위기의 팀을 잔류시키는 데 노하우를 발휘하며 감독 커리어를 채워나갔다.

수원삼성이 개막 후 7경기 만에 이병근 감독을 경질했다. ⓒ연합뉴스

프리미어리그 위약금 총액만 800억원 넘어

최근에는 상위권 팀들의 감독 교체가 더 다급한 면이 있다. 이유는 결국 돈이다. 프리미어리그 기준으로 4위 팀까지 주어지는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만으로 2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는다. 우승 시 누적 배당금은 1000억원을 가볍게 넘는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와 스폰서십에서 나오는 수익이다. 팀이 투자에 쓸 수 있는 돈방석에 오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팀들이 기를 쓰고 순위를 내려 하며, 그 과정에서 감독 교체 빈도는 더 잦아졌다. 프리미어리그 역시 1부 리그에 잔류해야 700억원이 넘는 중계권 수익 배당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기회에 대한 간절함이 더 많은 비용을 낳는 구조다. 감독 교체에는 대가가 따른다. 상호 합의의 경우 위약금에 대한 조율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경질은 남은 계약기간의 보수를 지불하는 게 원칙이다. 토트넘은 10년간 총 9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감독들의 위약금으로 썼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올 시즌 교체된 감독은 총 13명인데, 이에 따른 위약금 총액이 800억원을 넘어섰다. 올 시즌에만 감독 두 명을 경질한 첼시는 위약금만 213억원을 썼다.

감독 교체로 성과를 내면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팀이 기대하는 바다. 하지만 축구의 변화는 감독 한 명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 감독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새로운 선수를 원하기 마련이다. 다시 이적 시장에서의 비용 증대로 이어진다. 클럽이 원하는 수준급 선수 한 명의 몸값이 이미 1000억원을 훌쩍 넘는 시대가 됐다. 감독과 선수에게 쓰는 인건비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각 클럽의 재정적자 폭이 커지며 외부에서 유입된 자금이 유럽 축구를 접수하는 흐름이다. 20년 전에는 러시아 국유기업 재벌들이었고, 최근에는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의 오일머니다. 감독 선임이라는 인사가 곧 클럽의 운명을 좌우하다 보니 감독의 능력, 철학이 클럽의 방향성과 특성에 부합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