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버림받은 소녀 아델, ‘기적적인 용서의 노래’

한겨레 2023. 5.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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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아델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
AP 연합뉴스

가정의 달 5월에 가수 아델의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그는 겨우 19살 때 데뷔 앨범을 발표했는데 나이를 따서 앨범 제목을 <19>로 정했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밥 딜런의 사랑 노래를 다시 부른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 노랫말이 한편의 시다.

‘빗줄기가 당신 얼굴을 때리고/ 온 세상이 못살게 굴 때/ 제가 당신을 안아드릴게요/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저녁 어스름 속으로 별이 뜨고/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 때/ 제가 당신을 100만년 동안 잡아줄게요/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자. 거창한 연출은 없다. 영국 런던의 호텔 침대에 걸터앉아 노래하는 아델의 모습이 전부. 그는 무심하게 라이브로 노래한다. 19살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원숙한 음색과 가창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그였지만, 인간으로서 아델은 가족에게 배신당한 소녀였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어린 딸을 떠났고, 만나기로 한 약속을 번번이 어겼고, 끝까지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했다. 아델은 훗날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늘 아빠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아빠가 자신을 배신할수록 더 매달리고 사랑을 갈구했다고. 당신이 내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이 노래를 부르며, 아델은 아빠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노래를 해석하는 건 듣는 사람의 몫. 데뷔 때부터 그의 사연을 알고 있었던 나에게 지금도 이 노래는 사랑 노래가 아닌 사부곡으로 들린다.

아델은 이후로도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당시 나이를 제목으로 붙였다. <19>부터 <21> <25> <30>까지 발표하는 동안, 나는 늘 궁금했다. 첫 앨범이야 그렇다 쳐도 계속 나이를 앨범 제목으로 붙인 이유가 뭘까? 내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그는 이 시대의 디바로 등극했다.

디바라는 단어는 원래 ‘여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는데 뛰어난 여자 가수나 배우를 칭송할 때 널리 쓰인다.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머라이어 케리와 휘트니 휴스턴 사이에 셀린 디옹이 가세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표현이다. 그들의 시대가 저물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그들은 디바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뒤 비욘세와 얼리샤 키스, 리애나 등 솔 가수들이 춘추전국시대처럼 활약하던 시대를 잠시 거쳐 요즘 다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미국 대표 테일러 스위프트와 영국 대표 아델이다. 둘 다 이 시대 최고의 가수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그러나 디바의 칭호만큼은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아델에게 더 잘 어울린다.

아빠에게 버림받은 소녀가 팝의 여왕으로 등극하는 동안 알코올 중독자 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델은 성공한 뒤에도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증오하고 용서하고 배신당하고 또 용서하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결국 아버지는 암에 걸렸고 그 소식을 들은 아델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델은 데뷔 앨범 <19>부터 <21> <25> <30>까지 차례로 들려주고 아버지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 오랜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굳이 당시 나이를 제목으로 붙인 이유는, 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이 버린 아이가 이렇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별하고 헤어지고 살아왔다고 들려주고 싶었던 무의식의 발현 말이다. 실제로 아델은 훗날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용서하고 떠나보낸 과정을 털어놓은 적 있다. 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잘 모르겠다.

믿음이 클수록 배신의 충격도 크기에, 가족의 배신은 타인의 배신보다 더 고약하다. 그나마 성인이라면 거리를 두거나 의절이라도 할 테지만, 온전히 부모에게 의탁해야 하는 아이의 경우엔 그럴 수도 없다. 버림받은 아이가 아델처럼 아픔을 딛고 거대한 성공을 거둘 확률은 희박하다. 그처럼 극적인 화해를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일은 아이에게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 아이의 평생을 발목 잡는 불행의 시작이다. 기적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이뤄낸 아델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사랑 노래, 누군가에게는 사부곡으로 들릴 그의 노래가, 위로와 감동을 전해주기를 바랄 뿐.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박은경의 스위트 뮤직박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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