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 너구리, 인간중심주의를 반격하다

한겨레 2023. 5.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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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동물실험 빙자한 학대 극복하고
동료들과 수호자가 된 ‘로켓’
문명절멸 광기는 현실의 반영
‘미친 과학자’ 흑인 재현 흥미
마블 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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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말하는 너구리가 있다. 장비와 부품만 있다면 무엇이든 고치고, 무엇이든 만든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무법자지만, 동료들과 함께라면 가끔씩 우주를 구하는 영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과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제임스 건은 처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시리즈의 연출을 제안 받았을 때 이 너구리가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존재하게 됐을까?” 말하는 너구리 로켓의 비밀스러운 과거는 시리즈가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표면 아래 잠재돼있던 질문이었다.

건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끌려가 그래서는 안 되는 존재로 변해버린” 작고 순진무구한 이에 대해 생각했다. “이 작은 동물은 찢겨졌다 다시 합쳐졌다. 그의 삶은 고통스러웠고, 그는 너무나도 외로웠다.” ‘가오갤’ 시리즈의 마지막인 3편에서 건은 이 아이디어로 돌아갔다.

로켓과 코즈모의 공통점

‘가오갤3’은 너구리 로켓(목소리:브래들리 쿠퍼)의 이야기다. 그와 함께 가오갤 시리즈를 스쳐간 다른 동물들도 재조명을 받 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염력을 가진 개 코즈모(마리아 바칼라보)다. 1편에서 코즈모는 콜렉터(베니시오 델 토로)의 수집품 중 하나였다.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 그에게는 이름도, 목소리도, 사연도 없었다.(그를 알아본 원작 팬들에게는 카메오 출연으로 여겨졌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코즈모가 출연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2편과 3편 사이에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홀리데이 스페셜’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코즈모는 3편에서 자신의 과거를 언급한다. 그는 인간의 항공우주 실험에 이용당한 수많은 ‘라이카’ 중 하나였다. 실제로 1957년 소련에서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하면서 최초로 우주에 진입한 포유류로 기록된 ‘떠돌이 개’ 라이카는 우주선 안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라이카는 ‘인간의 진보’라는 망상에 희생당한 수많은 동물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다.

2편 오프닝에서 ‘소버린’ 행성의 배터리를 먹어치우는 괴물로 등장해 영화 시작과 함께 가오갤에게 처참히 학살당하는 우주 종 아빌리스크 역시 3편에 이르러 난폭한 괴물이라는 누명을 벗는다.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인섹토이드’(곤충인간)인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는 아빌리스크가 다른 생명을 해할 의도가 없다는 걸 깨닫고, 곧 그들과 친구가 된다. 아빌리스크가 보였던 공격성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방어적 행동일 뿐이다.

이런 배치 안에서 로켓이 어린 시절 하이 에볼루셔너리(척우디 이우지)에게 당했던, 실험을 빙자한 학대의 의미가 비로소 완성된다. 로켓이 두 발로 걷고 인간의 말을 하는 ‘고등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의인화된 캐릭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3편에서 로켓의 아픔은 인간 경험에 대한 환유가 아니다. 그건 인간이 비인간 동물에게 행했던 폭력이 초래한 고통 그 자체에 대한 묘사다. 로켓이 자신이 너구리임을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동물’이기 때문에 당했던 고통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오갤’ 3부작은 인간 사회의 규범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면서 마지막 편에 이르러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인간중심주의를 건드린다. ‘가오갤1’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서로 손을 잡는 순간을 클라이맥스에 배치했다. 이 이방인들은 영웅이 되기보다는 동료가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우주를 구하고 ‘수호자(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거듭난다.

‘가오갤2’는 욕심 사나운 ‘아버지’를 한껏 조롱했다. 퀼(크리스 프랫)은 난생 처음 아버지 에고(커트 러셀)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마블 세계관에서 신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셀레스티얼 중 하나다. 에고는 “삶의 진정한 목적은 단 하나, 성장하고 퍼져서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퀼에게 함께 세계를 집어삼키자고 떼를 쓴다. 영화는 근대인의 확장 열망과 그 근간에 놓여 있는 부계혈통주의를 풍자한다. 퀼은 인간의 형상을 한 신-아버지를 버리고 다양한 존재의 형상을 한 동료들 옆에 선다.

마블 스튜디오 제공

‘흑인 가면’의 딜레마

세계정복을 위해 수천만년을 준비하는 에고의 집념은 3편의 ‘미친 과학자’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창조주가 되려는 욕망과 겹쳐진다. 그는 멋대로 생명을 변형해서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고, 그들을 이용해 위대한 문명을 세우는 것이 숭고한 목적이라고 우긴다. 그리고 동물실험을 통해 수많은 생명을 해친다. 로켓은 그의 실험동물 ‘89P13’이었지만, 결국 자신을 만든 자의 지성을 뛰어넘는 존재로 진화했다. 하지만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로켓을 오직 도구로 대하며 오로지 그의 뛰어난 두뇌만을 원할 뿐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이 만든 행성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다. 문명 하나를 절멸시키는 일. 너무 잔인해서 영화 시나리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역사 안에서 몇 차례고 반복됐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점령이 그러했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노예무역이 그러했으며, 몸체를 늘려만 가는 인간 문명의 자연 문명 침탈이 그러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굳이 흑인의 신체로 재현된다는 점이다. 왜일까? 제국주의의 역사 안에서 오직 ‘인간’으로 여겨진 것은 ‘백인 남성’ 아니었는가? 게다가 백인들은 흑인들을 ‘동물’의 자리에, 그렇게 이성의 빛과 대비되는 야만이라는 어둠의 자리에 놓고 착취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얼굴이 뜯겨져 나가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인 문명에 동화되어 근대인의 내면을 가진 그는 본래의 얼굴을 잃고 그 위에 흑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셈이다. 이런 이해가 한편으로는 조던 필의 <겟 아웃>이 함의하는 바였을 터다. 이와 비교하면 시스템에 저항하기 보단 그 안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했던 <블랙 팬서> 시리즈의 그 모든 화려함이 딜레마에 갇힌 ‘흑인 가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흑인 가면’은 동물의 도구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만나 근대적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한층 심화시킨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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