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원도시 울산] ② '태화강의 기적'…선물처럼 찾아온 친수공간
강 심장부 태화들, 치수정책·개발논리에 없어질 뻔…시민들이 지켜내
[※편집자 주 =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오직 '산업도시'를 바라보며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공해도시'라는 오명을 얻게 했고, 특히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죽음의 강'으로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수치와 불명예를 벗어던지고자 민관은 각고의 노력을 전개했고, 태화강은 '기적'이라는 수식이 절대 과하지 않을 정도로 환골탈태하며 생태성을 회복했습니다. 태화강 수질 회복은 '친수공간'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시민들에게 선사했고, 이제 울산은 그 친수공간을 도약대로 삼아 '정원도시'로 비상하는 꿈을 꿉니다. 연합뉴스는 태화강의 오염과 부활, 정원도시 조성 과정과 성과, 시민이 주도하는 정원문화 확산, 앞으로 청사진과 기대 효과 등을 짚는 특집기사를 매주 토요일 7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태화강의 수질 개선은 '친수공간'이라는 선물을 시민들에게 선사했다.
악취를 풍기던 탁한 강물이 맑게 바뀌자 시민들은 더 이상 태화강으로 접근을 꺼리지 않게 됐고,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하천 퇴적지는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썩은 강물을 살려낸 울산은, 다음 단계로 친환경 수변공원 조성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오랜 시간 시민에게 외면받았던 강 둔치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방치됐고, 사유지에서는 각종 농작물 경작이 성행했다.
그나마 태화강의 생태성을 보여주던 십리대숲과 태화들이 아예 없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치수 정책, 개발 논리에 사라질 뻔한 강변 녹지…시민이 지켰다
십리대숲은 태화강을 따라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 4㎞ 구간에 조성된 대나무 군락지를 말한다.
그 길이가 10리(약 3.9㎞)에 달한다고 십리대숲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대숲 사이로 난 산책로에 들어서면 주변 풍경이나 잡음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고요함에 사로잡히며 현실감을 잃는 기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직선으로 뻗은 푸른 장벽이고, 들리는 것은 댓잎을 타고 재잘대는 바람 소리뿐이다.
현재 태화강 국가정원 내 태화강변 명소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십리대숲이 1987년 당시 건설교통부의 '태화강 하천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홍수가 났을 때 대숲이 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994년 울산시의회가 '태화강 연안 죽림 보존을 위한 태화강 하천정비 기본계획 변경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태도는 완강했다.
이에 울산 환경단체인 태화강보전회가 십리대숲 보전 운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대숲이 홍수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점을 밝혔고, 시민 7만여 명 서명을 받아 '태화강 대숲 보전을 위한 건의문'을 제출했다.
결국 정부도 울산 민관의 의견과 노력을 존중, 1995년 대숲을 존치하기로 결정했다.
태화강의 심장부인 태화들은 과거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산재한 농경지였는데, 한때 개발 논리에 의해 택지로 변할 위기를 겪었다.
1994년 태화들 일부 구역 용도가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시 울산경실련, 울산참여연대, 울산환경운동연합, 울산민주시민회 등 4개 시민단체가 '택지 개발 반대'와 '태화들 용도 변경 의혹 규명' 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움직임은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대, 진상 규명과 연안부지 회복 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이어 부산국토관리청이 주거지역의 하천부지 재편입과 함께 수로를 굴착하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지역사회는 이 역시 반대했다.
태화강보전회를 중심으로 '태화들 한 평 사기 운동'이 전개됐고, 이는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2005년 9월 당시 건설교통부 중앙하천관리위원회는 태화들 전체를 하천구역으로 재편입하는 안을 승인했다.
민관의 노력이 훗날 태화강 국가정원의 토대가 되는 태화들을 지켜낸 것이다.
경작지, 쓰레기 걷어낸 자리에 '전국 최대 도심 수변공원' 탄생
가까스로 지켜낸 태화들을 중심으로 태화강의 하천 환경을 예전의 아름답고 쾌적한 친수공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바로 '태화강 대공원' 조성사업이다.
이 사업은 1999년 월드컵 개최도시를 대상으로 시행한 환경부 국비지원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본격화했다.
시는 2002∼2004년 1단계 사업으로 태화들에서 비닐하우스 391동과 쓰레기 3천500여t 없애고, 그 자리에 태화강 생태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조류 관찰 데크, 죽림 공원, 실개천, 자연학습원 등 친환경 시설을 마련하고 파고라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설치했다.
차나무 등 관목류 2만여 그루, 초화류 12만 포기도 심었다.
태화들 전역(44만2천㎡)이 하천구역으로 편입되고 사유지 보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2008년 시작된 2단계 사업이 2010년 완료됐고, 그해 6월 공원이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1단계 사업 구역은 십리대숲이나 태화강 생태공원 등으로 불렸으나, 2단계 사업 마무리를 계기로 시민 공모를 통해 '태화강 대공원'이라는 이름이 결정됐다.
53만1천㎡, 서울 여의도공원의 3.6배에 달하는 단일 규모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수변공원이 울산에 탄생한 것이다.
이후 백로와 까마귀를 비롯한 다양한 철새들이 서식할 수 있도록 삼호대숲에 태화강 철새공원도 조성됐다.
태화강 명줄 중 하나인 선바위 주변으로도 공원 조성이 병행됐다.
태화강 둔치에는 체육시설과 함께 대숲 체험 관찰로와 실개천 등 생태적 기능이 부여된 다양한 공간이 속속 들어섰다.
2005년부터는 콘크리트 호안을 제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사업이 진행됐다.
시는 녹지 축, 수계 축, 공원·식생·가로의 연계를 통해 생태 인프라를 구축하고, 생태계 간 연계를 유도하기도 했다.
어류와 수서생물의 이동을 단절시킨 보에 물고기 이동 특성을 고려한 어도를 설치·정비했다.
1963년 준공 이후 울산지역 기업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다가 가동이 중단된 태화 취수탑은 리모델링 후 태화강 전망대로 활용됐다.
중구와 남구 강변을 잇는 보행자 전용 다리 십리대밭교도 갖춰졌다.
콘크리트 대신 잔디가 돋는 생태주차장, 강변으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는 보행통로(육갑문)도 곳곳에 설치됐다.
이처럼 성공적인 친수공간 조성 결실은,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렸던 태화강이 '국내 2호 국가정원' 지정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됐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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