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박항서’ 탄생할까...한국인 감독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 나라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noenemy99@mk.co.kr) 2023. 5. 13.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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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까요. 박희순과 고창석, 그리고 귀여운 동티모르 아이들이 주연으로 맹활약한 감동적인 축구 영화입니다.

김원광(박희순)은 한 때 잘나가는 축구선수였지만 사기를 당해 쫄딱 망한 신세가 되죠.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신생독립국인 동티모르로 향합니다. 하지만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대사관 직원(고창석)에게 귀국할 것을 권유받습니다.

그러다 축구에 푹 빠져있는 아이들을 보고 운동화를 팔아먹을 계획을 세우지만, 아이들 부모들이 운동화 한 켤레 사줄 여유가 없어 이마저도 무산될 위기에 처하죠.

그러다가 우여곡절끝에 원광은 축구팀을 만들게되고 많은 일을 겪습니다. 내전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아이들끼리 반목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도 하지만 결국 결말은 해피엔딩. 제대로 축구화도 신지 못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유소년 국제대회에서 동티모르를 우승시키는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맙니다.

박희순이 분한 원광역의 실제 주인공은 한국인 김신환 감독입니다. 그는 여전히 동티모르에서 유소년 팀을 이끌며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20여년전 그가 이끌던 유소년팀은 국제대회에서 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기적적으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체계적인 지원과 훈련을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에 선수의 성장은 더딜 수 밖에 없죠. 여전히 동티모르는 피파 랭킹 기준 전세계 최하위권 순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2023년 4월 기준 피파랭킹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위는 월드컵 우승에 빛나는 아르헨티나 입니다. 2위가 프랑스, 3위가 브라질, 4위는 벨기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세계 축구를 지배했던 독일이 14위에 머물고 있다는게 생경하게 느껴집니다.(11위 모로코, 13위 미국보다 낮은 순위입니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20위로 랭킹이 제일 높고 이란이 24위를 찍고 있습니다. 한국은 27위로 웨일스(26위) 바로 뒷자리입니다. 중국은 81위, 베트남은 95위를 찍고 있네요. 114위가 태국, 115위는 북한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봐도 동티모르의 순위는 없습니다.

149위까지 내려가야 동티모르를 20년 넘게 지배했던 인도네시아가 나옵니다. 동티모르는 여기서 50위 정도 더 밑으로 내려가 196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파랭킹상 맨 끝이 211위 산마리노인 것을 감안하면 동티모르의 축구 실력은 전세계 최하위라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동티모르가 최근 들어 반전의 움직임을 꾀하고 있습니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열리고 있는 ‘동남아의 올림픽’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에서 지난 4일 필리핀을 무려 3대 0으로 격파한 것입니다. 동티모르 U22 멤버들이 이룬 성과입니다.

피파랭킹상 필리핀은 136위로 동티모르보다 한참 위에 있습니다. 동남아만 떼어놓고 보면 베트남과 태국 다음으로 높은 랭킹을 기록중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인대표팀끼리 맞붙은 지난 2021년 12월 AFF 스즈키컵 당시의 스코어입니다. 불과 얼마전 동티모르 국가대표팀은 필리핀과 싸워 0대 7로 일방적인 완패를 당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나 U22 대표팀간 싸움에서 3대 0승리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박순태 동티모르 U22 대표팀 감독. [SEA GAME 유튜브 채널]
그리고 이 배경에는 한국인 감독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박순태’라는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축구인입니다.

그는 오랜기간 대구대 감독을 맡아 대학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축구인입니다. 2002년 부터 무려 17년간 모교인 대구대를 이끌며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황석호 등을 길러냈습니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동티모르까지 넘어갔는지 자료 부족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그 배경에 한국인 김신환 감독이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아쉽게도 동티모르는 다음경기인 인도네시아전(7일)에서 3대 0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필리핀을 만나기 전 캄보디아와 미얀마에게도 잇달아 패배해 예선 1승3패로 탈락이 확정됐지만 필리핀을 상대로 거둔 짜릿한 승리는 동티모르 축구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것이 분명합니다. 주목할만한 ‘언더독의 반란’이었으니까요.

박순태 감독이 동티모르팀이 필리핀을 상대로 첫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동티모르가 주요 국제대회에서 이같은 추세를 이어나간다면 박순태 감독이 베트남에서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만큼 동티모르에서 명성을 얻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동티모르는 지난해 AFF U23 준결승에 올라가 베트남을 상대로 0대0 무승부 경기를 펼치다 승부차기로 아쉽게 패배한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맨발의 꿈’의 신화가 동티모르 역사를 또 한번 뒤흔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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