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14년 만에 UCL 추억의 장에 불려 나와… 제코와 엮인 공통 요소는?[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TD·42)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추억의 장’에 불려 나왔다. 2013-2014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지 9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퇴색되지 않은 그의 이름이다. UCL 기록사(史)를 수놓은 ‘박지성’이라는 이름 석 자는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박지성 TD는 선수 시절에 유럽 무대에서 ‘한국인’의 성가를 드높였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 에인트호번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빼어난 솜씨를 펼치며 맹위를 떨쳤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EPL 최고 명가(名家)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시대를 함께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총애를 듬뿍 받았던 이름난 미드필더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그렇지만 가는 세월도 ‘박지성’이 남긴 발자취를 지울 수 없었다. 그가 UCL 기록사의 한쪽을 장식했던 발걸음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박지성이 남긴 기록은 에딘 제코(37)와 공통 요소로 엮이며 다시 들춰졌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인터 밀란)의 공격 핵인 제코가 2022-2023시즌 UCL 마당에서 펼치는 맹활약과 교집합을 이루며 새삼스레 주목받게 된 그때 그 시절의 자취다. 과연 무슨 기록일까?
UCL 68년 역사에 단 열한 번만 나온 진기록, 두 팀에서 UCL 4강전 득점
지난 11일 새벽(한국 시각)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2022-2023 UCL 준결승 1차전서, 제코는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전반 8분, 감각적 발리슛으로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다. 하칸 찰하놀루의 왼쪽 코너킥을 문전에서 논스톱 슈팅으로 이어 가 골망을 갈랐다. 인테르의 주 득점원답게 이번 시즌 UCL에서 넣은 네 번째 골이다.
인테르가 같은 연고(밀라노)를 둔 숙적 AC 밀란을 2-0으로 완파하고 기선을 잡는 데 일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한 제코였다. 두 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8.0·후스코어드닷컴)을 받은 데서도 얼마나 뛰어난 몸놀림을 펼쳤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로써 제코는 UCL 기록의 장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팀을 달리해서, 즉 2개 팀에서 UCL 4강전 골을 뽑아내는 진기록을 세웠다. 제코는 AS 로마에 몸담고 있던 시절인 2017-2018시즌에도 UCL 준결승전에서 골맛을 본 바 있다. 리버풀과 맞붙은 격돌에서, 1차전(2-5패)과 2차전(4-2승) 모두 한 골씩을 잡아냈었다. 이 시즌 UCL 마당에서, 제코는 8골을 터뜨리며 AS 로마의 4강행을 이끈 주득점원으로 맹활약했다.
UCL 무대에서, 박지성도 일찌감치 14년 전에 이 기록을 이뤘다. PSV 에이트호번 시절엔 2004-2005시즌 AC 밀란을 상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엔 2008-2009시즌 아스널을 상대로 각각 한 골씩을 뽑아냈다. 두 판 모두 2차전에서 넣은 골이었다. 특히, AC 밀란전 한 골은 의미가 있었다. AC 밀란의 브라질 출신 수문장으로서 640분 무실점을 자랑하던 제주스 시우바(지다)가 지키던 골문을 꿰뚫은 한 골이었다.
참고로, 이 기록 – 두 팀에서 UCL 4강전 득점 – 은 이번 제코까지 모두 열한 번 나왔다. 1955년에 유러피언컵으로 발원해 1992년 UCL로 개칭해 지금까지 이른 68년 역사를 고려하면, 얼마나 이 고지를 밟기가 어려운지가 쉽게 엿보인다. 또한, 열한 번 모두 기록 달성자 얼굴이 다르다. 곧, 이 기록을 두 번 달성한 자는 한 명도 없을 만큼 지난한 등정길이라 할 만하다.
제코(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전에 기록을 세웠던 얼굴은 디터 뮐러(독일)를 비롯해 데얀 사비체비치(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 필립 코퀴(네덜란드), 지네딘 지단(프랑스), 박지성(대한민국),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스페인), 안드리 셰우첸코(우크라이나), 페르난도 토레스(스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다. 스페인만 2명(모리엔테스·토레스)일 뿐, 나머지 9명은 모두 국적이 다를 정도다.
‘GOAT(Great Of All Time)’로 평가받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6·파리 생제르맹)조차도 이루지 못했다.
금세기 초, EPL을 바탕으로 세계 으뜸으로 손꼽히는 ‘꿈의 무대’ UCL에서도 역량을 뽐낸 박지성을 배출한 ‘한국 축구’의 잠재력이 새삼스레 터져 나온 2022-2023 UCL 4강전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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