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사자가 술을 뿜네

박현주 미술전문 2023. 5.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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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몽케 칸의 술 분수대를 묘사한 그림.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몽골제국의 국가행사 ‘쿠릴타이’의 일부로 열린 지순연(質孫宴) 파티는 보통 3일 밤낮으로 계속됐다. 화려했던 파티장의 모습과 몽골 지배층의 음주 풍습은 당시 파티에 참석했던 서양의 사신이 남긴 기록에 묘사돼 있다. 축하 사절단으로 참석한 고려의 관리도 기록을 남겼다.

프란체스코회 소속 수도사였던 윌리엄 루브룩(1248~1255)은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사절로 1253년 12월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 도착해 7개월을 머물렀다. 루이 9세는 칸에게 성경과 천막 예배당을 선물로 보냈다. 하지만 몽골은 이 선물을 복속의 의미로 이해한다. 루브룩은 귀국 후 몽골에서의 체험을 40개 장으로 된 문서로 만들어 루이 9세에게 보고했다. 1~10장에 몽골의 관습과 파티 모습이 들어있다. 당시 카라코룸은 몽골의 정복지를 포함 세계 각지로부터 온 외국인들이 붐비는 국제 도시였다. 칸의 즉위식에는 3000~4000명의 외교 사절이 참석했다. 교회, 이슬람 모스크, 불교 사원도 있었다.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됐고, 칸은 서로 다른 종교 사이의 ‘토론 배틀’을 장려했다. 루브룩은 논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토론이 길어지면 간간히 함께 와인을 마셨다.

지순연 파티장에는 술 분수대가 있었다. 4대 몽케 칸의 명령으로 몽골군의 유럽 원정 중 포로로 잡힌 프랑스 출신 기술자 기욤 부세가 축조했다. 잎과 가지가 있는 나무 모양이었는데 모두 은으로 만들었다. 꼭대기에는 트럼펫을 부는 천사가, 밑동에는 사자 네 마리가 술을 뿜는 형상이 조각돼 있었다. 칸이 술을 공급하라는 신호를 보내면 천사의 트럼펫이 울렸고 사자의 입에서는 네 가지 다른 종류의 술이 흘러 나왔다. 네 가지 술은 서역에서 온 ‘와인’, 몽골의 ‘마유주’, 유럽의 ‘벌꿀 주’, 중국의 ‘곡주’였다.

원나라 때 공문서를 모아 역은 ‘경세대전’(經世大典, 1331)에 따르면, 지순연에는 여성용 비단 속옷과 고급 모피를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각양각색의 선물이 답지했다. 1251년 몽케 칸의 즉위 파티에는 매일 수레 2000량이 와인과 쿠미스(마유주) 등 술, 말과 소 각 300마리, 양 3000마리 등 도축용 가축과 기타 식자재를 공급했다.

이탈리아 출신 사제인 조반니 다 피안델 카르피네(1185~1252)는 루브룩보다 7년 앞선 1246년 8월 카라코룸에서 열린 3대 구육 칸의 즉위식에 참석했다. 1247년 9장으로 발간된 그의 책에도 몽골의 음주 풍습이 나온다. 몽골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셨다. 그에게 가장 큰 고역은 몽골인들이 끝없이 권하는 술을 받아 마시는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1254~1324)는 1274년 몽골에 도착해 그 해 열린 쿠릴타이에 참석했다. 1292년까지 17년간 원나라에 머물며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지순연과 와인 등에 관련된 기록을 남겼다.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건국한 2년 후인 1273년에는 왕후와 황태자의 즉위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고려는 축하 사절을 보낸다. 다음 해 충렬왕이 되는 태자 왕심은 쿠빌라이의 막내딸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해 이때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황제의 부마인 그는 주요 국가행사에 필수 참석했다. 고려 원종은 충렬왕의 이복동생인 순안후(順安侯) 왕종(王悰)을 사행단장으로, 역사서 ‘제왕운기’(帝王韻紀, 1287)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승휴(李承休, 1224~1300)를 서장관(書狀官)으로 한 축하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승휴는 1274년에도 원종의 부고를 전하러 원나라를 다시 방문한다. 그는 이때의 여행기를 67세 되던 1290년 기록으로 남겼다. 사후 후손들이 그의 시문집을 모아 1360년 간행한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4권에 들어 있는 ‘빈왕록’(賓王錄)이다.

고려 사행단은 1273년 6월9일 개경을 출발한 후 거의 두 달 만인 8월4일 원나라의 겨울 수도인 대도(大都)에 도착한다. 장마로 길이 지체된 탓이었다. 왕후와 황태자의 책봉식은 이미 그해 3월에 있었다. 쿠빌라이는 아직 여름 수도인 상도(上都)에 체류하고 있었다. 8월24일 쿠빌라이가 대도로 왔고, 8월27일 대명전인 장조전(長朝殿) 낙성식 파티가 열렸다. 파티는 새벽 5시쯤 시작돼 오후 3시쯤 끝났다. 그 다음날인 8월28일에는 7000명이 참석한 지순연이 열렸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모든 참석자가 옷을 ‘지순’으로 갈아입었지만, 쿠빌라이 칸의 배려로 고려 사절단만 고려 복식을 그대로 입었다.

‘빈왕록’ ‘고려사’ 등에 따르면, 지순연에서 쿠빌라이 칸은 파티장의 맨 앞 가운데에 황후와 함께 앉았다. 그 아래 단의 오른쪽엔 왕족과 제후가, 왼쪽엔 여성들이 서열 순서대로 앉았다. 충렬왕은 황태자 친킴, 다른 왕자 6명에 이어 8위였다. 사행단장 왕종은 16위 자리에 앉았다. 그 아래로 외국 사절과 정3품 이상의 고관이 홀위(笏衛)로 불리는 바둑판 모양의 배치도에 따라 단상에 자리했다. 그 외 참석자는 단하였다. 충렬왕은 1294년 쿠릴타이에서 7위, 1300년에는 서열이 4위로 올랐다. 칸의 곁에는 칼을 차고 활과 창으로 무장한 8명의 경호원 (케식)이 배치됐다.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 2006)은 파티장 아래에는 높이 6m, 용량 5000리터짜리 대형 술 항아리인 ‘주해’(酒海)가 술 종류별로 위치했고, 소믈리에 격인 다라치와 카라치 40명과 요리사인 바우르치 20명이 배치됐다고 전한다.

지순연은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의 파티였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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