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다?[PADO]
[편집자주] 해적은 수많은 사람에게 낭만적 상상을 가져다줬습니다. 많은 아이들은 미국 애니메이션 <캐리비언의 해적>과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보면서 자랍니다. 바다보다는 호수와 운하의 수적(水賊)에 관심이 많았던 중국인들은 <수호지>라는 고전을 남겼는데, 서양에서 묘사하는 해적과 <수호지>의 수적은 많이 닮았습니다. 예일대와 런던정경대 교수였던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아나키즘 사상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말하는 아나키즘은 '무정부'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주의에 반대하고 가급적 시민사회의 자율에 의해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일종의 시민사회 중심의 사회주의를 의미합니다. <1984>를 쓴 조지 오웰이나 미국 정치사상가 마이클 월저 같은 사람들도 아나키즘이 강한 민주사회주의자들입니다. 해적과 수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뻥 뚫린 공간인 바다나 큰 호수,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는 어느 누구든 조직에 참여하고 이탈하는 것이 자유로워 정치조직은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지>(The Good Earth)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S. 벅이 수호지를 변역하면서 영문제목을 "All Men Are Brothers"(모든 인간은 형제다)라고 했던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바다와 큰 호수, 초원에서 자유롭게 조직을 만드는 해적, 바이킹, 노마드는 조직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따라 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그 어떤 조직보다 단단한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들은 민주정부를 만들기도 하고 세계적인 제국의 중핵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캐리비언해를 주름잡다가 나중에는 마다가사카르섬으로 근거지를 옮겨 인도양 해로를 약탈하던 영국인 해적들 다수가 원래는 노동계급 출신의 영국해군 수병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해군함정에서 귀족, 자본가 출신 장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이탈해 해적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들은 계급차별이나 권위주의에 대한 혐오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이야기가 엄밀한 인류학적, 역사학적 연구는 아닙니다만, 사실 18세기 사상계를 뒤흔든 볼테르나 루소의 저작 역시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인류학적,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펼쳤습니다. 그런 점에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이 책은 20세기 이후의 직업적 역사학이나 인류학이라기 보다는 19세기 이전의 고전적 사상가의 글쓰기를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해적 계몽주의>는 매우 흥미로운 사상서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진영 매거진인 <뉴리퍼블릭> 5월호에 실린 <해적 계몽주의> 서평을 요약소개합니다. 이글은 사실 미국의 보수우파도 좋아할 수 있는 글입니다만, <뉴리퍼블릭>은 그 점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년 봄에 방영중인 BBC의 코미디 <우리의 깃발은 죽음을 의미한다>(Our Flag Means Death)도 영국인들이 해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1700년 무렵 마다가스카르는 카리브해 해적들이 막 호황을 누리던 인도양 해로를 약탈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필수적인 경유지가 되었다. 이 섬 북동부 해안의 한적한 항구에 해적들은 암보나볼라, 생트마리 같은 타운을 세웠다. 항상 뜨내기 거주자가 수천 명이나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정부 같은 것은 없었던 이 정착지 타운은 서인도 제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비공식 해적질 인프라의 한 부분이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인 <해적 계몽주의>에 따르면, 이 섬들은 정치적 상상력과 자유의 온상이기도 했다. 해적과 마다가스카르 현지인 간의 만남은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파리(루소)와 쾨니히스베르크(칸트)에서 수만 리 떨어진 이 곳에서 급진적인 형태의 민주적 통치와 "계몽주의 정치사상의 여명"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했다.
2020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레이버는 인류학자이자 사회 이론가로서 최고 수준의 학자였다. 또한 자신이 혐오했던 불평등과 권위에 대한 반대라는 대의를 (월스트리트 등에 대한) '점거'(Occupy) 운동에서 발견한 격렬한 반세계화 운동가이기도 했다. 이 <해적 계몽주의> 역시 그러한 반항심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18세기 마다가스카르에서 대담한 민주주의 실험이 꽃을 피웠다고 주장하면서, 유럽인들이 유럽밖의 도움 없이 어떻게 유럽 땅 위에 민주주의를 재창조하고 근대 세계를 최초로 최고로 건설했는지에 대한 매일 들려오는 뻔한 이야기들을 해체해버린다.
바나비 슬러시는 18세기에 접어들 무렵 HMS 라임 호에서 근무한 영국 왕립해군 요리사였다. 그는 1709년 영국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심적 동요를 안겨주며 "해적들"은 같이 배를 타고 있는 동료들끼리 "군왕"처럼 당당하게 행동한다고 설명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서로를 민주적으로 동등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슬러시는 해적은 "모든 면에서 무지막지한 강도들"이지만 "자기들끼리는 정의롭다"고 말했다. "다른 모든 시도에는 대담함을 보이는" 무자비한 해적선장조차 해적선원들이 지켜온 "평등의 법도"를 감히 침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에서 악명 높은 해적 플린트 선장이 등장하면서부터 해적선은 대중의 상상 속에서 바다위의 독재체재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해적을 폄훼하려는 정치적 선전에 가깝다.
사실 바다위의 독재체제는 해적선이 아니라 대영제국 해군함정이었다. 영국 해군함정에서는 수병에 대한 규율이 자의적으로 잔인했고 장교들이 노동계급 출신 수병들에게 폭군처럼 행동했다. 많은 해적들이 전직 수병들이었다. 이런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반란을 일으켰던 그들이었기에 똑같은 독재체제를 재현하는 것을 혐오했다. 어차피 사형 선고를 받은 해적들에게 자유는 남은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는 해적들이 의도적으로 "주인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고, 이에 따라 스스로를 통치했다고 주장했다. 해적선장은 전투가 치열하거나 추격전이 벌어질 때 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권한이 제한적이었다. 다수결로 선출된 해적선장은 마찬가지로 같은 절차로 해임될 수 있었다. 해적선장은 다른 모든 선원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선원들 전체모임과 소수 회의체에 참여했다.
또한 배의 자원을 배분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선원들을 대변하는 갑판장과 권한을 나눴다. 18세기의 한 관찰자는 갑판장의 역할을 "로마의 호민관을 모방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관찰자는 갑판장을 배의 총리로 보았다. 해적선은 선장과 갑판장 외에는 계급이 나뉘어 있지 않았다.
그레이버는 이 '거칠지만 이미 완성된 평등주의'가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한 것은 1690년대였다고 말한다. 해적들은 반영구적인 전초 기지를 세우고 바다에서 실천했던 집단주의 정신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 평등의 전초기지를 세운 사람들은 예상할 수 있듯이 '어둠의 사람들'이었다.
벳시미사라카 연방은 약 700킬로미터의 해안선을 지배하며 1710년대에 탄생한 거대한 마다가스카르의 국가다. 당시 영국인 해적과 마다가스카르인 어머니의 아들로 추정되는 라시밀라호가 건국 왕이었다. 그레이버는 벳시미사라카가 근본적으로 분권화되고 심지어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민주적' 사회 질서를 감추기 위해 힘없는 허수아비 군주를 앞에 내세운 대안적인 정치체제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해적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및 토론이라는 지역적 전통을 결합할 수 있었던 상상력이 풍부한 "원시 계몽주의적 정치실험"으로 이 벳시미사라카 연방을 보길 요청한다.
벳시미사라카 연방 시대 마다가스카르 의사 결정의 중심에는 지역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합의를 모색하는 오래된 회의체인 카바리가 있었다. 카바리는 마을 내에서, 씨족 간에, 심지어 지역적으로도 개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격식 차리지 않고 활발한 토론을 선호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때, 카바리는 마다가스카르 사회가 유럽인들이 유럽 계몽주의의 원동력으로 자주 주장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자유분방하고 수평적인 사회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고 그레이버는 생각한다. 이러한 마다가스카르의 전통이 대화와 상업적 교류를 통해 '해적 평등주의'와 만나면서 벳시미사라카 연방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레이버가 해적과 마다가스카르 지역 지도자들에 대해 글을 쓴 것은 단순히 그들을 비난에서 구출하거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룬 업적을 기리고 그들의 창의적인 장난과 활기찬 정신을 즐기며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자유로워지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해적 계몽주의>의 진정한 보물이자 지적 유산이다.
그레이버는 인간의 삶을 그 생명력의 중심에 초점을 맞춰 조명하는 역사서술 방식에서 힘과 세상을 바꾸는 힘을 발견했다. 그 생명력의 중심은 무질서하고 놀랍고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며 언제나, 언제나 재미있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한예슬 닮은꼴' 10기 옥순, 과거 90kg 육박…"돌아가지 않을 것" - 머니투데이
- 노마스크에 "노인네야" 막말 금쪽이…오은영 "피해의식 큰 문제" - 머니투데이
- 주현미 "♥임동신과 열애, 조용필에 안 들키는 게 숙제였다" - 머니투데이
- '연봉 30억' 염경환, P사 포함 차만 6대…"하지만 오해 있다" 왜? - 머니투데이
- 김종민, '5살 연하' 맛집 사장 딸과 즉석 소개팅…"사랑은 직진" - 머니투데이
- 감기약 넣은 대북풍선에 막말 쏟아낸 김여정…"혐오스러운 잡종 개XX들" - 머니투데이
- 베트남 가서 맥주만 마셨을 뿐인데…정일우에게 일어난 일 - 머니투데이
- 안개 낀 주말 아침 날벼락…삼성동 아파트 충돌한 '헬기' [뉴스속오늘] - 머니투데이
- '기적의 비만약' 상륙에 주가 살 찌우더니…이 종목들, 지금은? - 머니투데이
- [르포]과수원 주인 졸졸 따르다 300kg 번쩍…밥도 안 먹는 '막내'의 정체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