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21] 뜨겁기 그지없는 잠자리였습니다. 오랜 시간 선망해온 스타와의 하룻밤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 만큼이나, 침대에서도 그의 능력은 사뭇 달랐습니다. 만족감은 충분했고, 몸에는 나른한 기운이 흘렀습니다.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단잠에서 깨어나니 문득 욕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스타인 이 사람의 아이를 가지면 어떨까.” 평생 돈 걱정 없는 삶을 살수도 있을 테고, 설사 헤어지더라도 위자료나 양육비를 두둑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과욕이 마음을 채웠지요. 옆을 돌아보니, 그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습니다.
화장실로 가서 휴지통을 바라봅니다. 마침 사랑의 징표(?)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아이를 갖기에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사용한 콘돔을 집어 들고 ‘나 홀로 임신’을 시도합니다. 근데 이게 웬일. 화끈한 기운이 확 올라옵니다.
“글로벌 스타는 체액마저 남다른가”라는 생각도 잠시, 인기척에 잠이 깬 그가 달려옵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핫소스를 넣었지.” 그제야 깨닫습니다. 화끈함의 원인은 ‘핫소스’였다는 것을요.
글로벌 래퍼 ‘드레이크’가 지난 2021년 1월 겪은 일화입니다. 그와 하룻밤 정사를 나눈 한 여성이 이 사건을 공개하면서 숱한 화제를 불렀지요. ‘핫소스 콘돔’이라는 조소 섞인 반응도 많았습니다. 역사 콘텐츠 사색에서 웬 드레이크의 핫소스 얘기냐고요. 피임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한 방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악어의 똥이 피임에 특효?
“악어똥이 피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초의 피임에 대한 기록은 이집트 문명에서 발견됩니다. 무려 기원전 1825년의 문서 ‘카훈 메디컬 파피루스’에서입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산부인과 질환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합니다. 악어똥을 활용한 피임법이 백미지요.
다만 문서 곳곳이 소실된 탓에 악어똥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가 불분명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악어똥을 자궁에 삽입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학자들은 악어똥을 태워서 그 향기를 맡는 방법을 썼다고 반박했지요.
기원전 1550년 전 작성된 ‘에버스 파피루스’에서도 피임법이 자세히 기록됩니다.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추야자, 아카시아, 꿀을 양모에 발라 여성의 그곳에 넣어야 한다”고 기록돼 있었지요. 노동력이 중시되는 고대 농경사회에서도 임신이 언제나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히포크라테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엉터리 피임법 주장
고대의 의학지식이 대개 그러하듯, 피임법도 엉터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리와 소금을 물에 녹여 먹으면 1년 동안 임신이 안된다는 헛소리도 고대 그리스에서 통용됐지요. 일개 약장수의 소리가 아니라,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이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피임에 대해 ‘고견’을 남긴 학자였지요. 그는 성교 전에 삼나무 기름을 자궁에 바르도록 권장했습니다. 오일의 미끄러움으로 인해 수태가 힘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습니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지요. 위대한 의학자와 철학자도 피임에 관해서만큼은 ‘미신’을 믿었던 셈입니다.
10세기 당대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던 페르시아인들에게도 비슷한 피임법이 전해집니다. 의사 무하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라지는 코끼리 똥, 양배추 등을 조합해 자궁에 넣으면 임신을 막을 수 있다고 썼었지요. 여성 인권이 굉장히 낮은 시대였기에 피임의 의무가 주로 여성에게 지워졌습니다.
“피임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노라”
어느덧 피임이 죄인 시대가 찾아옵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 유럽에서였습니다. 기독교 교리에서 성교는 쾌락이 아닌 출산의 수단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피임=쾌락을 위한 섹스’나 다름 없었지요. 피임의 수난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고단함은 종교의 신성함을 때론 넘어서곤 했습니다. 이미 넘칠 대로 넘치는 아기를 더 이상 낳을 수 없던 가난한 부부들. 이들은 죄책감을 무릅쓰고 피임했어야만 했지요. 딸린 식솔이 대여섯은 되는 왁자지껄한 방, 야심한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사랑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안전벨트를 매고 말이지요.
백합뿌리와 관상용 식물인 유향을 자궁에 넣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 성교하는 동안 족제비 고환을 허벅지에 묶으면 임신을 막을 수 있었다는 민간신앙도 전해집니다. 신대륙 캐나다에서는 16세기부터 동물 ‘비버’를 피임에 활용합니다. 고환을 빻아서 위스키에 섞어 여자들에게 먹이면 임신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지요.
피임 더 이상 여자의 몫만은 아니다
“원시적 콘돔의 출현.”
피임은 여성의 영역이었으나, 남성의 신체로 시나브로 옮겨갑니다. ‘전염병’ 때문이었습니다. 15세기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략하면서 매독이 창궐합니다. 병사들 사이에 성병이 걸린 사람이 폭증하면서 성기에 무언가를 덮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가톨릭 신학자인 가브리엘레 팔로피오는 리넨 천을 화학 용액에 적셔 성기에 덮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1100명의 남성에게 이를 시험한 결과 그 누구도 무서운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원시적 형태의 콘돔이었습니다. 목적은 ‘성병 방지’였지만 결과는 ‘피임’이었던 것것이지요.
시민혁명으로 내전에 돌입한 영국에서도 1640년부터 동물 창자나 방광을 이용해 콘돔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난봉꾼인 찰스 2세가 병사들을 위한 성기 보호용 기구를 ‘콘돔’이라는 이름의 백작에게 지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전혀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일축하지요. 콘돔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 이전부터 왕왕 등장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전쟁이 콘돔의 전성기를 낳았다
전쟁은 콘돔 확장의 촉매였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 잇따라 전쟁이 터지지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7년 전쟁, 프랑스 혁명까지 잇따라 터집니다. 군인들은 전장에서도 자신의 성욕을 풀었고, 성병 역시 만연해져 갔습니다. 지휘부에서 콘돔 보급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었죠. 유럽 전역의 펍, 이발소, 약국, 노천극장에서 콘돔이 판매됩니다. 물론 이들 역시 관심은 ‘성병’이었지 ‘피임’은 아니었지만요.
이때 콘돔을 ‘피임’용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최초의 인물이 카사노바였습니다. 그는 구멍이 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콘돔에 바람을 넣어봤을 정도로 철저한 위인이었지요.(난봉꾼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불러온 ‘피임’ 공론화
피임에도 철학이 깃들어 갑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그랬습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의 등장 때문입니다. 유럽을 강타한 저작 ‘인구론’(1798년)에서 그는 이야기하지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근·빈곤·악덕은 필연이다.” 마블 시리즈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 역시 이런 이론에 근거해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었지요.
“결혼이나 성교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위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신실한 종교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적으로 죄악인 ‘피임’을 설파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의 계승자들은 맬서스의 이론을 토대로 ‘피임’ 옹호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성교는 인간의 본성인 만큼 이를 막는 건 불가능하니 피임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1877년 영국에서 ‘맬서스 리그’라는 사회단체가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이들은 피임문제에 대한 공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피임을 처벌하는 법적·사회적 관행에도 반기를 들었지요.
맬서스 리그는 유럽에 반향을 일으킵니다. 이와 비슷한 사회조직 단체가 독일·프랑스·네덜란드에 구성됐지요. 유럽의 출산율이 떨어진 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콘돔의 등장 후 벌어지는 격론
1839년 피임의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집니다. 타이어 개발자인 찰스 굿 이어가 천연고무로 고무 콘돔을 발명하면서입니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가 “19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당시 세계인들은 신축성 있는 콘돔에 열광했었지요.
콘돔의 대량생산만큼이나 사회적 격론도 치열해집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어떻게 대놓고 피임을 조장하는 제품이 판매될 수 있느냐는 반대 의견이었지요. 특히 미국의 보수적인 성향의 주와 아일랜드와 같은 국가에서 그랬습니다. 실제로 미국 내 30개 주에서는 콘돔 생산을 중지하는 법안(Comstock laws)이 통과되기도 했었지요. 아일랜드에서는 1889년 음란광고법이 제정됨에 따라 콘돔 광고가 불법으로 규정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독일에는 파시즘과 나치즘 정권이 각각 들어섭니다. 민족적 우월성을 내세워 피임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었지요. 우월한 백인 민족이 아이를 많이 낳아야 열등한 황인, 흑인, 유대인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독재 정권들의 피임금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기회에 논할 계획입니다.)
인류는 늘 피임을 해왔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세상을 뒤흔든 지 20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의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식량은 크게 늘어가는데, 인구는 외려 급격히 줄어듭니다. 출산율이 급락한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경제학자들은 ‘인구절벽’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지적합니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폐기된 이론인 셈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난제입니다. 인구절벽을 해결하는 건요. 인류는 언제나 ‘사랑의 결과물’인 임신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음을 피임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대한민국 출산율은 ‘피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요.
역사학자 앵거스 맥래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피임은 가부장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생식능력을 좌우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지속돼 왔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새겨들어야 할 고견일지도 모릅니다.
<네줄요약>
ㅇ고대 이집트에서는 악어똥을 활용한 피임법을 썼다. 그리스에서도 피임 방법으로 여러 식물을 바르는 걸 추천했다.
ㅇ중세에 전염병이 창궐한 뒤, 원시적 형태의 남성용 피임기구가 등장했다. ‘피임’보다는 ‘성병’을 막기 위해서였다.
ㅇ맬서스의 인구론은 ‘피임’의 공론화를 불렀고, 크게 성공했다.
ㅇ피임은 가부장 문화 속에서 생식능력을 좌우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이었다. 저출산 국가인 대한민국이 새겨야 할 고언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ㅇ앵거스 맥래런, 피임의 역사, 책세상, 1998년
ㅇ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까치,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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