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향에서 자란 바보’ 일 마토 델레 지온카이에

유진우 기자 2023. 5. 13.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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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11일. 500년 묵은 한 낡은 고(古)문서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000만달러(400억원)에 팔렸다. 이 책의 이름은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로 꼽혔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504년부터 1508년까지 작성한 72쪽 분량 친필 노트 모음집이다.

당시 베일에 싸였던 낙찰자는 시간이 지나 인류의 현재를 이끌어 나가는 거부(巨富) 빌 게이츠로 밝혀졌다. 그해 부인 멜린다와 결혼한 게이츠는 교육과 자선 사업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의미로 이 노트를 샀다. 미디어는 과거의 천재가 남긴 기록을 현재의 천재가 사들이는 장면에 열광했다. 이후 게이츠는 이 노트 내용을 ‘인류 모두의 재산’이라며 스캔해 공개했다.

다빈치가 생전에 남긴 노트는 코덱스 레스터뿐이 아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도서관에 있는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영국 국립 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코덱스 아룬델’, 마드리드 왕립 도서관이 소장한 두 권에 이르는 ‘코덱스 마드리드’도 있다. 다만 이들 노트는 개인이 소유한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사고팔 수 없다.

이 가운데 코덱스 아틀란티쿠스는 노트 권수로 총 12권, 페이지 수는 1119페이지에 달한다. 72쪽이었던 코덱스 레스터 가치가 400억원이었으니,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의 가치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주제 면에서도 아틀란티쿠스는 미술·의학·조류·천문·역학·건축·무기 등 인류사에 두루 쓰인 학문 전반을 망라하고 있다.

그중에는 와인과 양조학에 관한 심도 깊은 내용도 담겨있다.

실제 다빈치에게 창조력과 영감을 주는 여러 원천 가운데 하나는 포도주였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 인근 빈치(Vinci) 마을에서 태어났다. 다빈치(da vinci)라는 이름이 ‘빈치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이다. 토스카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빈치 일대는 예나 지금이나 올리브 농사와 포도 농사를 주로 짓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서에 따르면 다빈치 아버지는 20헥타르(약 6만평) 정도 포도밭을 소유했고, 다빈치 본인 역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포도주와 친해졌다.

“나는 좋은 와인이 있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많은 행복이 주어진다고 아직도 믿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열렬한 와인 애호가였다. 그렇다고 그저 아무 술이나 즐기는 고주망태는 아니었다.

코덱스 아틀란티쿠스를 보면 다빈치가 남긴 포도 묘목 잘 키우는 법, 와인 제조법, 와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와인을 마시는 법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지금은 숙성에 널리 쓰이지만, 당시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바리크(Barrique)’라는 소형 참나무통에 관한 스케치를 직접 남기기도 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는 와인을 좋아하고 직접 포도를 경작해 와인을 제조한 사람답게 가끔 작품을 그려준 대가를 포도밭으로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실내 벽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이다.

다빈치는 당시 밀라노를 통치했던 루도비코 스포츠차 공작 의뢰로 1495년부터 1498년까지 3년 동안 이 걸작에 몰두했다. 공작은 그림을 완성하자, 보수 일부로 성당 인근 포도밭 3000평을 다빈치에게 하사했다. 이 포도밭은 여전히 아텔라니 하우스(Casa degli Atellani)라는 이름으로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1499년 프랑스가 밀라노를 침공하자, 다빈치는 북부 밀라노를 떠나 고향 중부 토스카나로 내려왔다. 그리고 조금 더 본격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피렌체 인근 피에솔레(Fiesole)에 땅을 충분히 사서 가족과 함께 포도를 직접 키우고 양조에 집중했다.

중세 무렵 유럽에는 딱히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와인 업계에서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시기는 일러도 18세기 이후로 평가한다. 그 이전에는 그저 포도를 으깨고 발효해 마실 뿐 품질 개선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다빈치는 15세기 후반부터 재배와 숙성 단계에서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한 와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포도 숙성도에 따라 어떻게 다른 와인이 나오는지 확실히 알았다. 포도 당도가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때 수확해서 발효해야 맛과 향이 풍성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15세기부터 깨우쳤다.

1515년 다빈치는 피에솔레에서 직접 와인을 만드는 본인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문제점을 알려주고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 편지 역시 지금까지 기록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발명과 발견들이 제대로 발표되지 못한 채 전란(戰亂) 속에 파묻힌 것처럼 와인에 대한 지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레오나르도 다빈치 연구가들에 의해 500년 묵은 다빈치의 양조 비법이 하나씩 밝혀졌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다빈치가 남긴 방식으로, 다빈치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그때와 유사한 와인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런 시도는 다빈치 사후 500년이 지난 2019년을 전후해 절정을 이뤘다.

디아넬라 와이너리가 만든 ‘일 마토 델레 지온카이에’도 그중 하나다.

디아넬라 와이너리는 몬탈바노 지역 빈치 언덕에 양조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빈치 언덕은 다빈치가 태어난 곳이다. 일 마토 델레 지온카이에라는 이름에서 ‘마토(matto)’는 이탈리아어로 바보라는 뜻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기 때문에 당시 오히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다빈치의 양조 연구를 칭송하는 의미를 담았다.

이 와인은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 레드와인 구대륙 부문에서 베스트 오브 2023을 받았다. 수입사는 올빈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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