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광고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편의점 시트지'의 운명은
편의점 외부 유리벽에는 소비자들이 내부 담배 광고를 볼 수 없도록 불투명 시트지를 붙여야 하는데, 이 시트지가 실질적으로 금연 정책에는 효과가 없고, 근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트지 부착 3년 차를 맡는 올해 국무조정실이 정책의 실효성을 따져보고 있는 가운데, 시트지를 떼고, 그 자리에 '금연 광고'를 붙이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데,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4 제1항은 담배 광고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담배 광고는 영업소 내부에서 표시판, 스티커, 포스터 등 광고물을 전시하거나 부착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다만, 영업소 외부에 광고내용이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을 보호하고 흡연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규정은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감사원 지적에 보건복지부가 처벌을 예고하면서 정부와 업계 사이 논의가 진행됐다.
매장 내 담배 광고물을 아예 제거하자는 차원의 논의도 나왔지만, 담배 업계는 물론 광고에 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급받는 편의점 점주들의 사정이 걸림돌이었다. 결국, 정부와 국내 편의점들은 지난 2021년부터 외부 유리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는 것으로 접점을 찾았다. 이해관계가 걸린 내부 광고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법 규정도 준수할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다.
문제는 불투명 시트지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이다. 교육부·질병관리청의 2022년 제18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율(일반담배)은 2020년 4.4%에서 시트지 부착 이후인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4.5%로 소폭 상승했다. 한 편의점 직원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판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계산대 근처로 오면 쉽게 볼 수 있는데, 밖에서 가린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외부에서 편의점을 살펴볼 수 없게 되면서 근무자들의 안전 문제가 부각됐다. 입법조사처가 지난 8일 발간한 "담배 광고의 외부 노출 규제 현황 및 개선방향"에 따르면, 2017~2021년 편의점 범죄 발생 건수는 6만 8868건에 달하고, 2017년 범죄 건수 1만 780건에서 2021년 1만 5488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토교통부 소관인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에서는 24시간 일용품 판매 소매점의 출입문이나 창문은 내·외부로의 시선을 감소시키는 필름 등을 부착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편의점의 불투명 시트지 조치는 이러한 규정 취지와 상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건복지부가 해당 사안을 충분히 숙고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월 8일 인천 계양구 한 편의점에서는 현금을 노린 강도가 점주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건은 편의점에 부착된 시트지가 시야를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도 막을 수 있었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라며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면 점주를 옭아매는 규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결국, 청소년 흡연율을 잡겠다던 제도의 효과는 없고, 오히려 근무자 안전 우려만 키우는 상황에 국무조정실이 새로운 대책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국무조정실은 편의점 등 소매점 담배광고 규제 합리화를 규제심판제도에 상정해 의견을 수렴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확정된 개선방안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업계는 외벽 시트지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금연광고물을 붙이는 쪽으로 접점을 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트지의 역할을 금연광고물이 대신할 경우, 근무자의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기 힘들고, 금연광고물을 붙였다고 해도 매장 안으로 들어오면 광고에 노출되는 상황은 반복되기 때문에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 따르고 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유현재 교수(대한금연학회 홍보이사)는 "밖에서 가린다고 금연 정책에 효용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차라리 담뱃갑 경고 그림처럼 매장 내 담배광고에 금연과 관련된 내용을 상당 부분 삽입하게 하는 등 광고물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를 고민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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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황영찬 기자 techan9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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