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함께 월경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젠더살롱]
교육 활동 중 가장 반응이 좋은 시간은 단연 성교육이다. 폭력예방교육은 특유의 진지한 주제로 인해 분위기가 숙연해질 때가 많고 성평등교육은 갖은 오해와 편견으로 무장하여 저항하는 이들이 등장할까 약간의 긴장감을 깔고 들어간다면, 성교육은 아무래도 밝고 유쾌하다. 한창 성에 눈뜬 어린이, 청소년 참가자들은 괜히 관심 없는 척하거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척하지만 강사가 보여주는 화면과 이야기에 내심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게 보여 나도 재밌다. 그런 성교육 시간도 분위기가 싸해지는 때가 종종 있으니, 불과 며칠 전의 이야기다.
"월경, 좀 참을 수 없나요?"
초등 고학년과 함께하는 성교육 시간, 사춘기를 전후한 몸과 마음의 변화 파트 중 월경을 설명하고 있었다. 월경을 하지 않는 몸이다 보니 내심 더 신경 써서 이 파트를 다루는데, 유난히 까불거리던 남자 어린이가 큰 소리로, "응~ 내 알 바 아님~"을 외쳤다. 교실 분위기는 금세 싸해졌고 나는 이 풍경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남성 애인이 파트너의 월경대(흔히 생리, 생리대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월경의 정확한 명칭을 살리기 위해 이 글에서는 월경, 월경대로 쓴다) 심부름을 하는 과정에서 신체 사이즈를 고려해 '소형'을 구입했다고 말하는 남성의 이야기가 흔하게 돌아다녔다. 월경을 소변처럼 참았다가 할 수는 없는 거냐고 묻는 남성을 보았다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도 종종 들려왔다. 나 역시 월경하는 사람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살면서도 성교육을 하기 전까지 월경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다. 월경통을 겪는 친구나 애인을 볼 때면 안타까워하면서 초콜릿이나 단 것을 사다 주기는 했으나 편의점, 마트에서 월경용품 코너를 지날 때면 왠지 모르게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혹 누군가 월경혈이 샌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 모르는 척 하는 게 당연시됐다. 그런 행동에는 상대가 난처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진심과는 별개로 주변 여성들이 경험하는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월경통에도 대체재는 많지 않았고, 월경대는 여전히 검은 비닐봉투에 담겨 나가기 일쑤였으며 월경은 자신의 이름 대신 '생리', '매직', '그날' 정도의 이름으로 불리고는 했다.
월경에 대한 무지, 그저 다르기 때문일까?
"남성 목욕탕에서는 수건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더라"며 놀라는 여성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다른 몸과 경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에 대해서잘 모르는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니겠냐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실로 여성이 월경으로 겪는 불편과 남성의 무지가 단지 생물학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일일 뿐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건 이미 경험적으로 너무 많이 느끼고 있다. 최근 다녀온 한 해외 여행에서 관광차 유명한 사원을 방문했는데, 앞에 떡하니 '여성 출입 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머쓱하게 함께 발길을 돌리면서 종교와 전통, 문화 차이 같은 것들을 떠올려 보았으나 불편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 옆에는 왜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Women are prohibited to enter because their menstruation(여성은 월경을 하기 때문에 입장이 금지 된다).'이어진 문장에는 그것이 '불결'하고 '불경'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신성한' 장소인 사원의 출입을 금지하였다는 내용이 '과거형'으로 적혀 있었으나, 그 전통은 엄연히 현재에도 계속 적용되고 있으므로 그 인식 역시 과거에서 끝났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월경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몽정을 하기 때문에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다는 전통은 들어본 적이 없으나, 월경을 이유로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의 행동과 역할에 제약을 두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악습은 너무 흔했다. 그 과정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선행되고 월경이라는 이유가 따라붙었겠지만, 어느샌가 둘은 한덩어리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월경을 부정적으로 여기던 문화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특정 종교,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 역시 월경하는 여성을 불경하다고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으며(레위기 15장 19~21절) 우리는 한 번도 여성 교황을 마주한 적이 없다. 인간을 창조한 신에게 문제가 있을 리는 없으니 그것은 다분히 신의 목소리를 빙자한 오만방자한 인간들의 차별과 편견의 역사라 비판할 수 있겠다. 그래도 다행히 월경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에는 성교육을 하면서 월경 기간을 잘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일회용 월경대만이 아닌, 월경컵과 이른바 '탐폰'으로 이야기되는 일회용 삽입형 월경용품, 나아가 필요에 따라 월경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호르몬루프, 임플라논 시술 같은 경우 피임 목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월경이 멈추거나 양이 줄어든다)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이 월경 기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월경이 왜 제 이름을 잃고 '생리'라는 '생리현상'의 준말로 감춰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하며 월경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감추었던 사회문화를 비판적으로 사고해 볼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월경을 설명하는 과정 역시 섬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월경을 설명할 때, 임신을 '위해' 자궁벽을 두텁게 준비해 뒀다가, 임신을 하지 않으면 자궁내막 조직이 '탈락'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최근 성교육계는 이와 같은 설명이 여성 일생에 몇 번 되지 않는(물론 없을 수도 있는!) 임신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더 일상적이며 자주 경험하게 되는 월경은 임신을 하지 못한, 실패한 과정으로 여길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자궁내막이 두터워지고 떨어지는 과정을 월경이라 설명한 이후에, 정자와 만나서 수정, 착상을 하게 될 경우 임신을 하며 그 기간 동안 월경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순서와 용어에 조금씩 변화를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기본값으로 여기게 할 것인지, 무엇을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별 것 아니라 여길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조금씩이나마 인식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진지한 이들의 '피땀눈물'이 녹아 있다.
한 사람당 약 2,400일, 우리와 상관없을 수 있나요?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일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월경에 대해 관심 갖는 남성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차별과 혐오에 동참하지는 않더라도 앞서 보았던 것처럼 내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며 무지로 일관하는 남성들이 너무 많다. 당장 앞서 교실에서 같은 반응에 무어라 대응하면 좋을까? 나의 경우에는 한동안 정적이 흐르게 두어 스스로 반성할 수 있게 한 뒤 되물었다. "그게 정말 월경하지 않는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 일인가요? 당장 우리 자신도 월경하는 사람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나요?" 제법 효과적이었지만 치사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월경이 누군가를 생산하거나 생산되었을 때에만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불편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뭐라고 이야기해 주면 좋을까? "인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한 사람당 평균 40년 내외, 한 달에 평균 5일씩만 잡아도, 대략 2,400일을 월경을 하는데, 과연 상관없을 수 있나요?"
남성과 함께 월경에 대해 더 나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까?
드물게 월경을 두고 남성이 이야기 얹는 때가 있기는 했다. 대체로 월경휴가나 월경용품을 지원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였다. 내심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전체 남성 중 일부일 거라고 변명하고 싶었으나, 침묵은 크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막을 수 없었고 부끄러움은 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개중 최악은 월경권을 비롯한 재생산 권리에는 조금도 관심 두지 않다가 저출생 이야기만 나오면 혀를 차며 훈수 둘 때였다. 분명 월경하는 몸과 사람, 월경 기간과 임신, 출산은 분리하여 이야기할 수 없음에도 마치 영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저출생 문제'에만 관심 두고 심지어 당사자는 배제한 채로 이야기할 때, 주변 여성들은 연속되고 입체적인 서사를 가진 존재로 존중받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로 취급된다고 느꼈고 분노했다.
나는 여전히 더 많은 남성들이 월경과 월경하는 몸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 가져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침묵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강사가 된 초반, 월경교육을 할 때 드는 어색함과 위화감을 숨기기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고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더 자연스럽게 월경에 대해 이야기 듣고 나눌 수 있었다. 다음 목표는 남자 청소년과 함께하는 월경교육이다. 월경 과정에 대한 이해부터 월경용품 사용법을 익히고 월경혈이 묻은 친구를 보았을 때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지, 나아가 그것이 그저 바지에 흙이 묻은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해야 할 이야기는 너무 많다. 우리는 남성과 함께 월경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에어드롭'으로 코인 받았다" 김남국 의혹 진상조사단 보고
- 수십 명 뒤엉킨 '난교 클럽'… 손님은 처벌 못하는 이유는
- 안영미 측 "뱃속 아이에게도 악플…법적 대응 검토"
- "가수 못해먹겠다" 생방송 욕설 후 그룹 탈퇴한 아이돌
- 만취 운전하다 순찰차 들이받은 30대… 잡고 보니 지명수배자
- 암표도 아닌데 137만원… 해외서 등골 브레이커가 된 K팝
- 9000원 소시지 훔쳐 징역 1년, 3억 절도범은 집행유예... '장발장법' 또 도마에
- 유치원 교사들이 집단으로 학부모 고발한 이유는
- 바드에 한국어 가르친 구글 CEO "한국, 믿을 수 없을 만큼 역동적"
- "연락주면 보답" 여중생들에게 명함 뿌린 70대 남성 경찰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