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폐기 요구 1년간 뭉개”...산업부 2차관 경질 막전막후
수차례 독촉에도 탈원전 지지부진
지난 10일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전격 경질됐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부와 환경부 장관에 대해 ‘복지부동’을 경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 만이다. 더욱이 산업부 차관만 ‘나 홀로’ 인사조치를 당했다. 관가에선 “대통령이 특정 부처를 공개 경고한 뒤 곧바로 인사를 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왔다. 도대체 산업부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본지가 산업부와 여권, 업계 등을 취재한 결과, 이번 인사 조치에는 ‘탈원전’ 폐기에 대한 용산 대통령실과 여권의 강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복수의 취재원들은 “작년 말부터 용산에서 수차례 산업부를 향해 탈원전 폐기에 드라이브를 걸라는 독촉을 했지만, 지지부진하자 칼을 뺀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5월 현 정부가 출범하며 원전 정책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하지만 창원·부산 등 중견·중소 원전업계에선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올 초 나온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이 포함되지 못한 것도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컸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삼척과 영덕 원전 계획을 취소한 이후 신규 원전 부지 확보 노력조차 없다”며 “즉시 재개하겠다고 한 신한울 3·4호기 공사도 2025년에야 가능하고, 계속운전도 심사와 설비 교체에 몇 년을 허비해야 하는 기존 제도를 손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처럼 1년 가까이 탈원전 폐기 요구를 산업부가 뭉개다시피 하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업부가 지난 1년간 어떤 에너지 정책을 폈는지 모르겠다”며 “후임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던 강경성 비서관을 보낸 것은 적지 않은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산업부가 최근 전기요금 인상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여당이 직접 개입하게 한 것도 산업부를 비판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다. 모 관계자는 “전기료 인상은 총선을 앞둔 여권에 큰 부담”이라면서 “하지만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한전에 자구안을 독려하고, 국민을 상대로 전기료 인상의 필요성을 알리는 노력은 부족했다”고 전했다.
이런 비판에 산업부에선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에 순응하다가 지금 관련 공무원들이 죄다 감사원이나 검찰 조사와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현 정권의 속전속결 지시를 따를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규정과 절차 등을 꼼꼼히 따지고 가급적 집행에 신중하겠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법률과 국가 계획 등으로 원전 확대를 막는 ‘대못’이 크고 깊게 박혀 있어 정부 부처가 이를 무시하고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또 다른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산업부는 지난 정권의 탈원전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차관 자리를 추가로 얻어내고, 해외공관장도 여럿 보냈다”며 “온갖 특혜를 누려놓고는 이제 그 잘못을 바로잡자고 하니 팔짱을 끼고 있는 모양새는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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