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 학원 보내야 할까요?”… 초등 엄마들이 묻는 까닭
줄넘기 사교육의 세계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직장인 최모(41)씨는 지난 3월부터 집 근처 줄넘기 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같은 반 엄마들이 추천했다. 일주일에 두 번 50분씩 수업을 받고, 학원비는 한 달에 12만원. 최씨는 “처음엔 ‘무슨 줄넘기까지 학원을 보내나’ 했는데, 지금은 ‘줄넘기 학원은 필수’라는 엄마들 말에 100% 동의한다”고 말했다.
집안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없다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줄넘기 학원이 처음 생기고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 줄넘기 등 체육과외 유행, 갈 데까지 간 사교육’ 같은 비판성 기사가 언론에 등장했다. 일부 극성스러운 학부모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쳐야 마땅할 줄넘기까지 학원 과외를 시킨다는 논조였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줄넘기 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나 현재 전국에 있는 전문 학원은 약 300곳. 덤으로 줄넘기도 가르치는 태권도장 등은 수천 곳에 달한다. 맘카페에서도 줄넘기 학원 정보를 나누는 엄마들이 넘쳐난다. 사교육 광풍의 대표 사례로 지목되던 줄넘기 학원은 왜 요즘 초등학생 엄마들 사이에서 ‘필수’ ‘갓성비(god+가성비)’ 학원이 됐는지 ‘아무튼, 주말’이 심층 해부한다.
◇”줄넘기는 미리 준비하래요”
9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 있는 줄넘기 학원 ‘점프에듀’. “선수 준비! 삼, 이, 일!” 구령과 함께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졌다. 줄넘기가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 힘껏 발을 구르는 소리가 차올랐다. 초등학생 스무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줄넘기를 연마했는데, 한 번 뛰면서 줄을 두 번 연속해 돌리는 일명 ‘쌩쌩이(이중 뛰기)’를 10초에 20개씩 하는 건 예사였다. “천천히 뛸수록 오래 뛸 수 있어요!” “귀와 어깨는 거리가 멀수록 유리해요!” 선생님의 코칭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 반의 막내 장모(7)군이 ‘뒤로 뛰기’를 10초에 17개나 하자 형, 누나들이 웃으며 박수쳤다. 수업 말미에 댄스가수 싸이의 노래 ‘댓 댓(That That)’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의 줄넘기 동작은 더 화려해졌다. 노래에 맞춰 ‘좌우 되돌리기’ ‘엇걸어 뛰기’ ‘되돌려 흔들어 뛰기’ 등 곡예 같은 기술들이 이어졌다. 언니들과 거울을 보며 연속 이중 뛰기를 연습하던 정모(9)양은 “엄마가 (줄넘기 학원에) 다녀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노래에 맞춰 줄을 넘는 게 재밌어서 3개월째”라고 했다.
원생은 약 150명. 초등학생이 대부분이고 유치원생과 중학생도 있다. 김소영 강사(대한줄넘기협회 수석강사)는 줄넘기 학원의 인기 요인으로 줄넘기가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부상 위험이 작은 체육 활동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과거와 달리 요즘 여덟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은 처음 (줄넘기 학원에) 오면 줄을 아예 못 넘는다. 신체 활동 부족이 심각한 것 같다”며 “줄넘기 학원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안전하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학부형 김모(40)씨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아이의) 야외·체육 활동이 크게 부족해진 것 같다”며 “학교에서는 거의 앉아있기만 한다더라. 공교육에서 제대로 된 체육 교육을 받기 어려워 학원 도움을 받게 됐다”고 했다.
학교에서 줄넘기를 강조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시킨다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일부 학교는 ‘줄넘기 인증제(급수제)’를 도입해 줄넘기를 수행평가 항목으로 지정했고, 평가를 하진 않더라도 ‘1학년은 두발 뛰기 100개를 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학교들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인기인 초등학생 학부모 지침서에는 ‘기본체력 활동으로 줄넘기를 하는 학교가 많고, 요령만 있으면 누구든 잘할 수 있으니 미리 연습을 하는 게 좋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올해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주부 이모(36)씨는 “선배 엄마들로부터 줄넘기는 선행(학습)을 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어서, 올 초에 전문 강사에게 속성으로 줄넘기 과외를 받았다”며 “학교에서 이번 학기에 두발 뛰기 50회와 거꾸로 뛰기 30회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이가 선행 덕에 쉽게 성공하니까 엄청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줄넘기가 곧 아이의 자존감으로 연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유튜브 ‘슬기로운 초등생활’을 운영 중인 교사 출신 작가 이은경씨는 유튜브에서 “초등에서 줄넘기는 잘하면 무조건 좋다”고 단언했다. “학교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내 자식만큼은 무조건 줄넘기를 잘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었어요. (중략) 줄넘기가 어른들 입장에선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 입장에선 굉장한 자존심 문제예요. 자신감을 굉장히 업(up)시키는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돌봄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줄넘기 학원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음악 줄넘기’를 신청하려 했다는 워킹맘 김모(40)씨는 경쟁자들에게 밀려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 하자마자 줄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태권도장에 등록했다. 그는 “우리 어렸을 때는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뛰어 놀아도 괜찮았지만, 요새는 세상이 험해서 믿을 만한 시설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학원에 비하면 비용이 싸고, 아이도 재밌어해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훌라후프·리코더도… “돌봄·교육의 외주화 심화”
줄넘기 학원 수강료는 한 달에 10만원 안팎(주 2회 기준)이다.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보다는 대체로 저렴한 편이다. 원생 수가 150~200명 되는 대형 학원도 꽤 있다. 과외의 경우 현재 시간당 3만~6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전문 강사와 학부모를 연결해주는 한 중개 플랫폼에는 현재 800명이 넘는 줄넘기 강사들이 활동 중이고, 2015년 이후 9000건 가까운 줄넘기 레슨 신청이 접수됐다.
줄넘기만 사교육 영역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 훌라후프,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리코더, 단소, 종이접기 등 다양한 예체능 종목을 학원과 과외로 배울 수 있다. 과외 중개 플랫폼에는 ‘학교에서 과제로 내준 줄넘기 X자 뛰기와 이중 뛰기를 마스터하게 해달라’ ‘가위질과 연필 잡기 등 소근육을 쓸 수 있는 연습을 시켜달라’ 등 구체적인 요청이 쇄도한다.
특히 리코더는 ‘음악 분야의 줄넘기’로 여겨진다. 몇 년 전부터 리코더 전문 학원도 하나둘 생겨났고 리코더를 가르치는 피아노 학원도 많다. 열 살 아들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회사원 임모(43)씨는 “리코더를 집에서 가르쳐보려 했는데, 아이들이 집중을 못 하더라.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 교습소를 찾았는데, 일주일도 안 돼 기본기를 익혀왔다”며 “필요할 때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예체능 분야 사교육 참여율은 2012년 53%에서 지난해 67.8%로 코로나로 학원 운영이 제한된 시기(2020년 46.9%)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올랐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이뤄지던 돌봄·교육이 돈으로 구매하는 상품·서비스로 대체되는 외주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이은희 인하대 교수) “학교에서 예체능을 점수화시켜 평가하는데, 이를 대비하기 위해 곧장 사교육을 찾는 부모가 많아졌다”(김영심 숭실사이버대 교수)고 진단했다. 원인으로는 저출산 시대에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 많아졌다는 점, 자신의 자녀가 뒤처지거나 위축될까 봐 불안을 느낀다는 점 등이 꼽혔다.
“별의별 것까지 사교육을 받는다”는 비판적 시각도 여전히 있다. 실제로 사교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담을 호소하는 학부모도 많다.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사교육비 총액은 11조9000억원에 달했다.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로, 전년 10조5000억원 대비 13.1% 증가한 것이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기준으로 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7000원, 1인당 월평균 예체능 사교육비는 20만3000원이었다. 김영심 교수는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서라도 예체능을 즐기는 것은 긍정적이나, 사교육비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학교에서 예체능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사회가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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