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야전병원장 “중독자 치료해야 비로소 이기는 싸움”

공주/김은경 기자 2023. 5.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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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마약 중독 치료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
국내 마약 중독 치료의 권위자인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마약은 한 번 경험으로 중독의 늪에 빠질 수 있어 재범률이 높다”며 “그 악순환을 끊으려면 치료와 재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우리 정부는 많이 잡을 것이고 ‘악’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처벌할 것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족히 1000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한 충무공의 뜻을 헤아려 이 땅에서 마약을 쓸어내겠다.”(이원석 검찰총장)

최전방 장수들의 각오가 비장하다. 마약과 전쟁이 시작됐다. 한국은 ‘마약류 범죄 계수(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 수)’가 2012년 18에서 2022년 36이 돼 두 배로 뛰었다. 국제적으로 이 계수가 20을 넘으면 급속한 확산 위험이 있거나 마약 범죄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본다.

야전병원 사령관처럼 후방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조성남(65) 국립법무병원장은 지난 35년간 우리나라에서 마약중독자를 가장 많이 경험한 치료 전문가다. 지난 1일 오후 충남 공주 반포면의 숲길을 지나 사방이 고요한 병원에 도착했다. 집무실 앞에 ‘德術竝優(덕술병우·덕과 의술은 함께 해야 도타워진다)’라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었다. 오전 진료를 끝내고 온 그는 “마약과 전쟁하는 데는 ‘중독자’라는 부상자가 틀림없이 나온다”며 “마약은 쓸어내되 사람은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은 범죄, 중독은 질병

-지난달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이 큰 충격을 줬습니다.

“마약이 그만큼 일상 깊숙이 침투했다는 증거입니다. 중독에 취약한 청소년을 노렸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확 깨운 것 같아요.”

-청소년까지 파고드는데.

“마약 사범은 5년 전까지만 해도 40대가 주류였지만 지금은 20대가 가장 많고 청소년도 급증하고 있어요. 소셜미디어(SNS)로 쉽게 구할 수 있게 됐고, 가격이 10만원 이하로 저렴해진 탓도 있습니다.”

-마약이 청소년에게 더 위험한가요.

“마약은 뇌의 보상 회로에 도파민을 과도하게 분비시키고, 판단력과 생각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을 손상시킵니다. 뇌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는 더 취약하죠. 또 마약중독은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이라 갈망과 충동을 평생 관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정부가 마약 범죄를 엄단하겠다고 했는데요.

“마약을 뿌리 뽑으려면 공급과 수요를 둘 다 끊어야 합니다. 공급을 끊으려면 제조·유통 사범을 엄정히 처벌해서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해야겠죠. 그러나 수요를 멈추려면 중독자를 치료해야 됩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투약이라는 범죄와 중독이라는 질병을 구별해야 합니다. 처벌한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무턱대고 교도소로 보내면 오히려 마약하는 법을 배워서 나올 겁니다. 치료 감호를 받은 뒤에 교도소에서 남은 형을 복역하는 재소자가 편지로 ‘제발 독방을 쓰고 싶다’ 합니다. 마약을 잊어버리고 살고 싶은데 마약 사범들끼리 모여서 온갖 수법과 공급망을 공유한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치료 기회를 많이 주고 회복 시설을 늘려야죠. 처벌하기 전에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판검사가 이를 감독하는 미국 약물 법원(Drug Court) 같은 모델이 필요합니다. 교도소 안에도 치료 시설이 있어야 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감형도 해주고요. 퇴소 이후에는 민간 재활 시설에 연계해주고, 그곳에도 실질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처벌보다 치료가 우선인가요.

“중독 초기에는 대부분 스스로 중독인 줄 몰라요. 저한테 오는 환자 70%가 말기 중독자예요. 돈도 잃고 일상도 망가진 뒤엔 재활이 더 힘듭니다. 암으로 치면 온몸에 전이된 다음에 온 셈이죠. 적발됐을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초범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범법자 치료하는 의사

1958년생인 조 원장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해 국립법무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국립법무병원은 정신 질환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치료하는 법무부 소속 정신병원. 옛 이름인 ‘공주 치료감호소’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정문 경비 초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겉보기엔 대형 병원과 비슷했지만 곳곳에 CC(폐쇄 회로)TV가 보였다.

-어떻게 마약중독 치료 전문가가 됐습니까.

“1988년 이곳 법무병원에 취직해서 처음 만난 환자가 필로폰을 투약하고 6개월 된 자기 딸을 죽인 남자였어요. 환각 상태에서 인형이 자기한테 욕한다고 착각해 아기를 길바닥에 내던진 거예요. 그걸 동네 사람들이 다 보고 ‘아비가 딸을 죽였다’고 하니까 ‘인형인 걸 보여주겠다’며 죽은 아이 종아리를 깨물었대요. 그런 끔찍한 일은 처음 봤어요.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단순 중독자일 때부터 전문적 치료를 해야 한다 싶었죠.”

-가슴 아픈 환자를 많이 봤겠습니다.

(긴 한숨) 가족을 해친 사람이 많아요. 필로폰에 취해 아내 머리에 악마가 들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살해한 남자도 있었고요. 6년 전에 환각제인 LSD에 중독돼서 어머니와 이모를 죽인 스무 살짜리가 들어왔어요. 타인이 가족이나 친구 모습을 하고 나타나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카그라 증후군’ 증세를 보인 거예요. 미국 유학을 앞둔 모범생이었는데 정말 안타까웠죠.”

-어떻게 치료하나요.

“일단 벌어진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가족의 죽음, 그리고 ‘내 정신과 영혼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요. 아주 오래 걸립니다. 항우울제 같은 약물 치료도 병행해요. 3년, 5년씩 끈질기게 면담과 치료를 합니다. LSD 환자에겐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공부를 이어가며 값지게 살아가길 바라지 않겠느냐’고 다독였죠. 그 친구는 5년간 치료받고 나가 다시 학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필로폰 환자에겐 ‘나가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아버지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다른 중독자들의 회복을 도와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단순 투약자도 있나요?

“더 많습니다. 1996년 법무병원 안에 단순 중독자만 수용하는 마약 병동을 만들었어요. 스스로 중독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서 망가진 삶을 복구해 나가게 도와줍니다. 직업, 도덕, 인간관계, 취미 생활까지요.”

-그동안 치료한 마약중독자가 몇 명쯤 됩니까.

“환자를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는 건데요. 지금 전화번호부를 보니 5000명 정도 되네요.”

-연락처를 알려주는 이유는 뭔가요.

“오밤중에라도 마약이 생각난다고 하면 바로 도울 수 있어야 하니까요. 아침까지 기다리면 늦어요. 마약에 다시 손대거나 금단 현상 때문에 망가져버립니다. 보통 정신과에서는 환자에게 개인 연락처를 주는 걸 금기시하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너의 회복을 돕기 위해 늘 내가 여기 있다’는 의미도 되고요.”

-실제로 전화가 오나요.

“종종 옵니다.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많이 오진 않아요. 강남을지병원에 있을 때, 새벽에 술에 취해 ‘약 생각이 난다’며 전화한 환자가 있었어요. 용인 수지에서 서울 목동까지 달려갔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길래 24시간 커피숍에서 밤새 얘기하면서 진정시켰어요.”

-마약을 해보고 싶다는 유혹이나 호기심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왜 없겠습니까. 중독 환자들한테 ‘마약 좋다’는 얘길 얼마나 많이 듣는데요. 그런데 저는 무섭더라고요. 중독으로 삶이 망가지는 걸 보기도 했지만 범법을 저지른다는 그 자체가 두려워요. 마약중독 치료는 규범을 지키는 삶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병원 밖 재활까지 1인 2역

조 원장은 1997년 퇴소자들을 모아 마약중독자 자조(自助) 모임을 만들었다. 을지대 을지중독연구소장이던 2012년에는 일본의 민간 재활 시설인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를 국내로 들여왔다. 그는 “병원이나 교도소를 나온 뒤에도 꾸준히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재활 시설과 모임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내에 다르크(DARC)를 만들었습니다.

“마약중독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회복자가 중독자들과 한집에서 살면서 회복을 돕는 치료 공동체예요. 중독자가 사회에 연착륙하도록 하는 일종의 연계 시설이죠. 약을 끊는 데 성공하고 성실하게 사는 분들에게 다르크 운영을 권유하고 지원하고 있어요. 경남 김해, 경기 남양주, 대구, 인천 등 전국에 네 군데 있습니다.”

-회복자가 운영하는 게 원칙인가요.

“네 곳 센터장들의 마약 전과가 최고 9범입니다. 20년, 30년씩 중독자로 산 사람들이에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회복을 돕는 거예요.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확산이라고 봅니다.”

-사비도 들였다고요?

“경기 다르크 만들 때는 제가 보증금 1000만원을 지원했어요. 지금도 소액이지만 매달 10만원씩 운영비를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가족이 싫어하지는 않나요.

“아내는 제가 레지던트일 때 병원 간호사였어요. 공주로 내려올 때 일을 그만뒀는데, 환자 위한 것이라면 공감하고 이해해줍니다. 봉직의(페이 닥터)들이 월급 300만원 벌 때 전 100만원도 못 받았는데, 평생 돈 벌어 오란 말이 없었죠(웃음). 아내 없었으면 못 했을 일이에요.”

-마약중독도 치료제가 있나요.

“확실한 치료약도, 치료법도 없어요. 하지만 국제적으로 새로운 치료법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마약 인지 행동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가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요. 국내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예산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처럼 연구를 총괄하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마약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하면서 “마약류 중독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치료·재활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덧붙였다. 조 원장은 “그동안 정부가 마약 단속을 강하게 한 시기는 있었지만 대통령이 재활 치료를 언급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발 벗고 나선 것은 다행입니다. 실천 없는 공염불로 끝나진 말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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