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 사이까지 갈라놓은, 치명적 식재료 송로버섯
영화 ‘피그’(2021)에서 롭(니컬러스 케이지)의 유일한 친구는 한 마리의 암퇘지다. 하지만 보통 돼지가 아니다. 롭은 송로버섯 채집가이고 돼지는 그의 조수다. 롭이 대략의 터를 잡으면 돼지는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아 송로버섯의 위치를 특정한다. 전통적으로 돼지 아니면 개가 맡는 일이다. 그렇게 채집한 송로버섯을 롭은 식재료 중개인 아미르(앨릭스 울프)에게 판다. 롭의 삶은 그게 전부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문명의 혜택도 누리지 않으며 은둔 생활을 한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오리건주의 외딴 숲에서 롭이 나름 누리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누군가 밤에 침입해 그를 때리고 돼지를 납치해 간 것이다. 롭은 아미르에게 도움을 요청해 포틀랜드 도심으로 나가 돼지 행방의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그와 더불어 롭의 실체 또한 조금씩 밝혀진다. 본명은 로빈 펠드, 십오 년 전 포틀랜드의 미식계를 주름잡았던 스타 셰프였다. 하지만 아내 로리가 죽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산으로 들어가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으며 송로버섯만 채집하고 살아왔다.
그런 그가 돼지 한 마리 때문에 문명에 재진입한 것이다. 버려진 건물 지하의 불법 파이트 클럽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먼 옛날 단 두 달 고용했었던 견습 요리사가 셰프가 되어 운영하는 최첨단 현대 요리 레스토랑을 거치며 로빈은 마침내 돼지의 행방을 파악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아미르의 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노라며 꾸민 일이었다. 아미르의 아버지는 그 지역을 쥐락펴락하는 식재료 도매상으로 아들이 결을 거스르고 외따로 행동하는 가운데 최상의 송로버섯을 받아다 파는 게 못마땅한 참이었다.
그렇다. 송로버섯(트러플)은 이렇게 아버지가 아들의 앞길마저 가로막으려 들 정도로 치명적인 식재료다. 염장 철갑상어알(캐비아), 거위나 오리 간(푸아그라)과 더불어 세계 삼대 미식 재료로 꼽는 송로버섯은 무엇보다 흙을 위시한 특유의 향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익혀 먹기도 하지만 대체로 파스타나 오믈렛처럼 비교적 간단한 요리에 종잇장처럼 최대한 얇게 저며 얹어 먹는다.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평범한 음식도 트러플 세례를 받으면 가격이 두세 배는 훌쩍 뛰어오른다. 이삼만 원짜리 파스타 한 접시라면 트러플로 십만 원을 바라볼 수 있다.
송로버섯은 왜 이다지도 비쌀까? 맛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고급스러움과 얽힌 수요와 공급 탓이다. 워낙 유서 깊은 식재료다 보니 19세기부터 재배가 시도되었고 성공도 했었지만 수요를 안정시킬 정도로 꾸준한 작황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영화 속 롭처럼 자연산, 즉 야생 식재료의 채집 위주로 공급망이 형성되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송로버섯의 제철은 겨울인데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의 흰 송로버섯을 최고로, 프랑스 북부 페리고르 지역의 검은 송로버섯을 그다음으로 꼽는다. 비싸기도 하지만 어차피 소비자들에게는 돌아오지도 않으므로 송로버섯이 궁금하다면 향을 입힌 기름이나 소금을 권한다. 일이만원 대에 향을 체험할 수 있는데, 다만 음식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으니 조금씩만 쓰는 게 좋다. 한국식으로 먹자면 짜장라면과 트러플 기름이 꽤 잘 어울린다.
물어물어 돼지의 행방을 찾아 결국 아미르의 아버지까지 찾아갔지만 롭은 그에게 협박을 당한다. 아들 버릇을 고쳐줄 심산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대신 돼지 값은 후하게 치러준다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롭은 십오 년의 공백을 깨고 요리를 해 설득한다. 알고 보니 아미르의 부모님이 누린 최고의 식사가 바로 롭이 요리한 것이었고, 그는 ‘모든 식사와 손님을 기억한다’며 바로 그때 먹은 요리와 같은 와인을 짝지어 아미르의 아버지에게 낸다. 뜻밖의 요리에 결국 마음이 누그러진 아미르의 아버지는 납치할 당시에 돼지가 이미 죽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롭은 슬픔에 잠기지만 사실 돼지를 사랑해서 찾고 싶었노라고, 자신은 나무를 보고 혼자서도 송로버섯을 찾을 수 있다며 다시 은둔의 삶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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