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분·시기 놓친 수베로 한화 감독 경질

박강현 기자 2023. 5.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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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승리 후 갑작스런 일방 통보
외인 선수 부진, 전력 약화에 영향
영입 실패한 프런트 책임은 없나

프로야구 9위 한화가 개막 31경기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령탑을 교체했다. 3년 계약 마지막 해였던 카를로스 수베로(51·베네수엘라) 감독을 갈아치웠다. 감독 선임은 구단 고유 권한이긴 하다. 하지만 도의가 실종됐다는 반응이다. 이번 교체 과정은 여러모로 불쾌한 여운을 남겼다. 야구계에선 명분과 시기를 모두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대전에서 열린 NC전에서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전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007 작전’ 방불케 한 교체 과정

일단 너무 갑작스러웠다. 11일 당일 빠르고 비밀리에 진행돼 ‘야구판 007 작전’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후임으로 지명된 최원호(50) 2군 감독은 이날 오전 충남 서산에서 시작된 2군 경기를 마치자마자 대전에서 손혁(50) 단장을 만나 거취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오후 늦게 교체하기로 결정이 됐지만, 오후 6시30분 홈경기를 앞둔 수베로 전 감독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수베로는 오후 9시쯤 이날 삼성전을 이기고 경질 통보를 받았다. 보통 승리팀 감독 소감을 언론사에 전달하는데 이날은 그런 게 없었다. 해임된 감독이 “이겨서 기쁘다”라고 말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한화가 배포한 보도자료엔 수베로 전 감독의 소회나 최 감독의 포부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었다. 급하게 자료를 작성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꼭 그 야밤에 교체 통보를 해야 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튿날 해도 무방하고, 이왕 교체할 예정이라면 경기 전에 하든지 이치에 맞는 여러 경로가 있는데 방식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타 구단 관계자는 “(감독 교체는) 올스타전 휴식 기간이나 시즌 후 또는 시즌 전에 하는 게 팀 분위기나 경기력 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덜 준다”면서 “시즌 중이라도 이렇게 밤중에 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계에서 나온 국내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감독 교체 관련 연구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시즌 중 감독 교체는 그해 성적과 마이너스 관계”였다. 성적 부진은 감독 교체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 4일 잠실에서 열린 LG-한화전에서 4회초 한화 노시환이 솔로포를 치고 들어와 카를로스 수베로(맨 왼쪽) 전 한화 감독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허상욱 스포츠조선 기자

◇명분과 시기 모두 놓쳐

수베로 전 감독은 지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 성과가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2001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미 마이너리그 팀을 지휘한 ‘육성 전문가’로 통했다. 2021년 한화에 부임해서도 팀 재건(리빌딩)에 집중했다. ‘이기는 습관을 이식하겠다’고 출사표를 내던졌다. ‘이기는 야구’에 목을 매 선수들을 혹사시키고 질책하기보단 장기적 관점에서 팀을 재창조하기 위해 저연차 유망주들을 관리했다. 다만 불규칙하게 투타 자원을 운용하는 등 확실한 보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도 한때 6연패하는 등 하위권에서 허덕이자 감독 교체설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최근 반등하기 시작했다. 6경기 5승1패, 드디어 결실이 나오나 싶었다. 문동주(20)와 노시환(23) 등 그동안 키운 유망주도 올 시즌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경질이란 철퇴를 맞았으니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수베로는 이번 시즌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 환경에서 외국인 선수(팀당 3명)는 핵심 전력 요소다. 그런데 하필 한화가 영입한 외국인 선수 3명은 나란히 죽을 쑤고 있다. 1선발로 데려온 투수 버치 스미스(33·미국)는 개막전 때 단 한 번 던지고 부상으로 방출됐다. 거포로 기대한 브라이언 오그레디(31·미국)는 타율 0.127. 지난 시즌 합류한 투수 펠릭스 페냐(33·도미니카공화국)도 평균자책점 4.25다.

외국인 선수 영입은 프런트, 궁극적으로는 단장(손혁) 책임이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한화는 사실상 외국인 선수 없이 팀을 꾸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분에선 프런트 책임도 자유롭지 않다”면서 “수베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이 나오면 안 됐고, (경질) 타이밍도 너무 맞지 않는다. 언젠가 바뀌어야 했다면 어차피 내부 인사(최원호) 승격인데 굳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쫓듯이 했어야 됐나 싶다”고 전했다.

지난달 19일 대전에서 프로야구 한화-두산전을 앞두고 카를로스 수베로(왼쪽) 한화 전 감독과 손혁 단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단장 “팬들께 죄송하다”

최 신임 감독을 놓고도 말이 많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팀 수뇌부 중에는 감독도 있지만 단장이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손 단장은 자기는 책임을 안 지고 감독만 쳐냈다. 게다가 성적 부진으로 감독을 경질하면 대개 잠시 감독 대행 체제로 가다가 정식 감독을 나중에 선임하곤 했는데 이번엔 내정해 놓고 기습 통보했다. 여기에 최 감독이 손 단장과 사촌 동서지간(최 감독 부인이 손 단장 부인 사촌동생)이다 보니 입방아에 더 오르내리고 있다.

손 단장은 본지 통화에서 “올해보다 내년이나 후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돼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면서 “투수진과 타순 셋업이 조금 더 확실히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왜 굳이 이런 시기였느냐는 질문엔 “6연패 기간 논의해 최근 확정 짓느라 타이밍이 이렇게 (미묘하게) 됐다”고 해명하며 “외국인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 팀 전력이 약화된 건 사실이다. 팬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힘든 시기에 저희 팀을 맡아 리빌딩 토대를 만들어주신 수베로 전 감독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3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LG전에서 한화 팬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수베로 전 감독은 “구단 결정을 이해한다. (2년여간) 너무 멋진 동행이었다. 팬들께 감사드리며 한화의 우승을 기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이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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