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장관 배출한 고창 隱士마을의 비밀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2023. 5.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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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정종섭 전 장관이 공부한
은사리와 문수사의 풍수

2015년 10월 당시 정종섭 행안부 장관이 전북 고창을 방문하였다. ‘찾아가는 장관실’을 주제로 장관이 직접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고창군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정 장관은 문수사 등을 둘러보고 상경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고창 고수면 은사리에 있는 문수사는 풍경이 빼어나지만 잘 알려진 절은 아니다.

전북 고창 문수사의 입구 풍경.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낸 정종섭 전 행안부 장관은 1980년대 초 문수사 내 양진암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해 1982년 합격했다. /김두규 교수 제공

왜 정종섭 장관은 바쁜 일정 속에 이름 없는 이곳을 찾았을까? 정종섭 장관은 당시 정치인이었지만 헌법학자로서 서울대 교수였다. 지금은 안동에 있는 유학의 본산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이다. 서울 강남 봉은사에 가면 처능 대사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전면 비명(碑銘)을 정 원장이 썼다. 서예가로서 그는 ‘세계서예비엔날레’에 초대될 만큼 경지에 이르렀다. 다재다능하다. 고향이 경북 경주이고 대구와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을 감안하면 고창 문수사와 인연이 있을 수 없다.

40년 전인 1980년대 초, 한 법대생이 이곳 문수사 양진암(養眞庵)에서 사시를 준비한다. 그리고 1982년 사시에 합격한다. 정종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왜 그는 이곳을 찾아와 공부를 하였을까? 금년 4월 “퇴계 귀향길 재현 행사”(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14일 동안 걷는 행사)가 있었다. 여기에 참가한 유기상 박사(전 고창군수)가 행사를 주관하는 정종섭 원장을 만났다. 고창을 언급하며 그 연유를 물었다. 답변이 뜻밖이었다.

“그곳이 은사(隱士) 마을 아닙니까? 선비[士]가 숨어서[隱] 공부하기에 좋은 땅이지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공부한 곳은 양진암이란 작은 암자였다. ‘참 나[진아·眞我]를 키우는[養] 암자’이다. 양진암에는 붓[筆]과 먹과 같은 바위가 있고, 그 옆에는 작은 바위샘이 있다. 붓과 같은 바위[筆岩]가 있으면 훌륭한 학자가 배출된다.

대개 큰 절들의 풍수 특징은 주변이 바위산[石山]이다. 탈속(脫俗)의 기운이 강하다. 그래야 절이 번창한다. 그런데 문수사 주변은 흙산[肉山]이다. 흙산은 세속의 땅이다. 절터로서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문수사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중심맥은 석맥(石脈)이다. 흙[土]가운데 바위[石]를 취하는 독특한 땅이다. 탈속과 세속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 땅이다. 만해 한용운과 노사 기정진이 이곳을 찾아 머물렀던 이유이다.

법대생이 지명만 보고 찾아온 ‘은사(隱士)’ 마을 터는 과연 어떠할까? 마을 입구에 비석 하나가 있는데, “川出凸岩忽然鎭西-隱士洞-”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냇가로 볼록한 바위가 뻗어 나와 서쪽을 진압하니, 은사 마을이네”라는 뜻이다. “서쪽을 진압한다”는 무슨 뜻일까? 서쪽의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의미이다. 관련하여 촌로들의 이야기를 수년 전 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 이병렬 박사가 녹취한 것이 있다.

“냇가로 튀어나온 석맥은 꾀꼬리 머리와 부리이며, 물 건너 앞산은 오행상 나무산[木山]이다. 꾀꼬리가 나무를 쪼는 형국이다[황앵탁목형·黃鶯啄木形]. 큰 인물이 나올 것이다.”

가수 진성이 세 살에서 여덟 살까지 할머니와 살던 집이 바로 석맥에 등을 댄 곳이다(지금은 집은 없어지고 대나무 숲이 됨). 배고픔과 멸시 속에서 어린 진성이 남의 잔칫집 가서 노래 부르고 밥 얻어먹던 마을이다.

요즘 농촌은 사람보다 악취 나는 축사가 더 많다.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은 옛말이다. 삼천리 금수강산(禽獸江山)이다. 최근에는 태양광 시설물들이 농촌을 더럽히고 있다. 탈속과 세속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 덕분일까? 아직까지 은사마을은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앞으로도 그러하길 희망한다. 좋은 땅이 큰 인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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