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인아]인사이트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2023. 5.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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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꿰뚫어 보는 인사이트 키우려면
관심 갖고 질문하며 숨은 의미 파악해야
눈으로 본 것 가슴으로 들여 ‘발효’해보자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좀 다쳤다. 얼마 전 새벽에 토사곽란이 일어 급히 화장실에 가다 그만 균형을 잃었다. 얼굴은 세면대 모서리에 찧었고 무릎은 타일 바닥에 부딪혔다. 다친 자리가 금세 부풀어 올랐는데 왼쪽 눈과 코 사이 미간, 부딪힌 자리가 아슬아슬했다.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조금 지난 시각. 할 수 있는 게 없다. 집에 굴러다니던 연고를 찾아 얼굴에 바르곤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는데 아뿔싸, 오전에 강연이 있다. 그것도 부산 강연이다. 6시 56분 기차를 타야 하니 병원에 갈 수도 없다. 무릎도 걷기 힘들 만큼 아프고 속은 여전히 메슥거리며 복통도 있다. 이 상태로 강연을 할 수 있을까. 다쳐서 강연이 힘들다고 사정을 말해 볼까. 아니다. 주최 측은 무슨 날벼락인가. 결론은 명확했다. ‘나는 10시 30분 부산의 강연장에 서야 하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

서울역에 도착해 약국을 찾았지만 이른 아침의 약국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겨우 편의점에서 파는 소화제 한 병을 털어 넣었다. 도중에 기차에서 한 번 더 토했지만 제시간에 ‘무사히’ 도착해 무사하게 강연을 마쳤다. 강연하는 동안은 아무 일이 없었고 청중 그 누구도 나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채 말짱하게 마무리했다.

워낙 세게 부딪혀서 골절을 걱정했으나 무릎도 얼굴도 골절은 아니었다. 아주 다행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과 코 주변으로 멍 자국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머, 무슨 일이에요?” 하며 놀랐고 민망한 나는 배시시 웃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멍 자국은 짙게 올라오는데 통증은 반대로 조금씩 가라앉았다. 물론 다친 자리는 여전히 아팠으나 다친 날과 그다음 날의 통증에 비하면 훨씬 약해진 상태였다. 반면, 눈과 코 주변을 보라색으로, 또 노란색으로 물들인 멍은 통증이 한참 심하던 때를 지나면서 더 명확하고 짙어졌다. 그러니까 다친 부위의 멍은 통증의 절정이 지나서야 사람들 눈에 드러났고 명확히 보인 셈이다.

사실 이런 경험은 전에도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입병이 잘 났다. 조금만 피곤해도 혓바늘이 돋고 입안이 곪아 누렇게 되었다. 어린 나는 엄마한테 혀를 내밀거나 입안을 보여주며 아프다고 어리광을 부렸는데 엄마 눈에도 확연히 보일 만큼 혓바늘이 성하거나 입안이 누레져 걱정을 시킨 때는 사실 제일로 아픈 상태는 지난 뒤였다. 김치 등 맵고 신 음식이 닿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아픈 때는 혓바늘도 입안의 염증도 눈에 드러나지 않았다. 매우매우 아팠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알기 어려웠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중요한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눈이 보는 단계는 이미 뭐가 한참 진행된 다음이구나. 반대로 눈에 보이기 전에, 혹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른 진짜 의미를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은 거구나…. 그래서일까. 나는 일찍부터 ‘인사이트’에 주목했다. 인사이트 (insight)가 뭘까? 사전엔 ‘통찰’, 즉 ‘본질을 꿰뚫어 봄’을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안으로 들어가 실체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인사이트다.

강연에서 인사이트를 말하면, 어떻게 해야 인사이트를 얻느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어렵지 않다. 관심, 혹은 질문이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왜 사과는 옆이나 위가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지 않나. 사과나무 아래 앉았던 사람이 어디 뉴턴 한 사람뿐이었을까. 숱한 사람들이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햇빛을 피하고 바람을 쐬면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 보면서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므로 ‘안쪽’의 인사이트에 닿지 못했다.

나는 인사이트라는 화두를 들고 오래도록 천착한 끝에 이런 생각에 닿았다. 질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고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곧 인사이트라고. 즉, 본 것을 안쪽으로 들여 그간의 관심이나 호기심, 질문과 버무려 발효시킬 때 비로소 인사이트가 생겨난다고.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고 의미 역시 훨씬 깊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훌륭한 리더는 범인들과는 다른 인사이트를 보여줄 때가 많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 이번 주말엔 나무 아래에 앉아 눈으로 본 것을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들이면 어떨까. 숙성되고 발효되면 근사한 인사이트를 갖게 될지도 모르니.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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