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에 마차 타는… 동화 같은 왕실 행사가 英국민에 ‘낭만적 황홀’ 안겨

곽아람 기자 2023. 5.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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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슈 읽기] 찰스 3세 대관식으로 본 왕실 의례

클래식 영국사

박지향 지음|김영사|672쪽|3만2000원

퀸 엘리자베스

샐리 베덜 스미스 지음|정진수 옮김|RHK|432쪽|3만5000원

1948년생, 75세의 왕이 세자 책봉(冊封) 65년 만에 영국의 군주로 6일(현지 시각) 공식 등극했다. 영국 왕실은 이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승하로 뒤를 이은 찰스 3세 국왕이 대관식(戴冠式·Coronation)을 통해 영국과 영연방 국가 14곳의 군주가 됐음을 공포(公布)했다. <본지 5월 8일 자 A14면>

◇英 왕실, 권력 포기하며 인기 얻어

영국 왕의 대관식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건 1953년 6월 치러진 찰스 3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때부터다. 영국사 연구자인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클래식 영국사’에서 “1870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기간에 왕실의 대중적 이미지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왕실 의식이 더 웅장하고 대중적으로 변하였다”고 말한다. 그 직전 시대의 영국인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왕실 행사보다는 넬슨 제독이나 웰링턴 공작과 같은 영웅들의 장례식이었고, 1861년 남편 앨버트 공이 사망한 후 빅토리아 여왕이 왕실 행사에서 모습을 감추자 왕실 행사는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1997년 ‘영국사’라는 이름으로 까치 출판사에서 초판이, 2012년 ‘클래식 영국사’라는 현재 제목으로 개정증보판이 나온 이 책에서 저자는 “재미있는 사실은 대중민주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왕실의 역할이 오히려 더 강조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잉글랜드 역대 국왕들이 신민의 사랑을 받은 경우는 드물지만, 19세기 들어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권의 개념이 확실해지고 이후 왕실이 점차 현실 정치로부터 은퇴하면서 왕실의 인기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 발달·산업화가 왕실 儀式 대중화 부추겨

박지향 교수는 또 매스미디어의 발달, 도시화와 산업화 등도 왕실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에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19세기 말 황색언론의 등장이 오히려 왕실을 ‘신성 불가침’의 존재로 보이게 했으며, 철도의 확장과 자동차의 증가 등이 왕실의 교통수단인 마차에 ‘낭만적인 황홀함’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번 찰스 3세 대관식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노숙까지 불사하며 관람하려 한 이유도 이러한 ‘낭만적 황홀함’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대관식을 마치고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군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찰스 3세(왼쪽)와 70년 전인 1953년 대관식을 마친 후 발코니에 선 엘리자베스 2세. /AFP·연합뉴스

라디오를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도 왕실 의식의 대중화를 부추겼다. “1923년 조지 5세의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인들은 왕실 행사를 그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친근한 일로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조지 5세의 손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영제국과 영연방 모두에 영향을 미쳤던 위대한 의식”이라 평한다. 이 행사가 TV로 생중계되면서 왕실 행사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독려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의식’으로 거듭난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그 ‘위대한 의식’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이애나 왕세자빈, 존 F. 케네디 부부 등의 전기를 집필한 샐리 베덜 스미스의 ‘퀸 엘리자베스’(2012) 는 250명이 넘는 엘리자베스 2세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100여 권의 책 및 미공개 자료를 참고해 쓴 평전. 저자는 대관식 당시 여왕의 시녀였던 앤 글렌코너의 회고를 통해 대관식 중 성유(聖油) 축성 장면을 묘사한다. “그녀는 너무나 젊었고,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으며 다만 드레스 위에 흰 천만을 걸치고 있었다.”

소박한 리넨 드레스 차림으로 캔터베리 대주교에 의해 양 손바닥과 이마, 가슴에 성유 축성을 받은 여왕은 이어 금실로 짠 예복으로 갈아입고 444개의 보석으로 꾸민 무게 2.23㎏짜리 ‘성 에드워드 왕관’을 머리에 얹게 된다. 이번 대관식서 찰스 3세가 쓴 바로 그 왕관이다. 대주교를 이어 남편 에든버러 공 필립이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다. 찰스 3세 대관식에서는 아들 윌리엄 왕세자가 대주교의 뒤를 이어 서약했다.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왕실석에 있던 손녀 샬럿 공주와 손자 루이 왕자가 시선을 끌었던 것처럼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서도 왕실석의 어린아이가 대중의 눈길을 잡아챘다. “저기 봐요, 엄마예요!” 흰 새틴 셔츠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외할머니와 이모 마거릿 공주 사이에 앉아있던 네 살짜리 찰스 왕자가 잔뜩 신이 나 외치자 여왕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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