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中 중재, 진정성은 어디에
이탈리아 프로축구 명문 나폴리의 핵심 수비수로 33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끈 김민재를 팬들은 ‘통곡의 벽’이라 부른다. 키 190㎝의 압도적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공격 기회를 번번이 차단하자 붙여준 이름이다. 70년 넘게 국제사회 평화·안보 등 전후 질서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도 통곡의 벽이 있다. 지난해 70차례가 넘는 북한의 역대급 도발에도 불구하고 매번 거부권을 행사해 대북 압박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임이사국 중국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習近平) 3기’가 공식 출범한 이후 중국은 기존의 외교 문법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적극적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다. 올해 3월 이슬람 패권을 놓고 대립해온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안보 수장이 베이징에서 만나 7년 만의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지난달에는 시 주석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 발발 후 처음 통화하면서 중국이 이번 전쟁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달 말 100번째 생일을 맞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 “평화협상이 중국 중재로 연말에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부상하는 중재국이 정작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핵폭주는 철저히 외면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2006~2017년 자국이 찬성한 10개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무력화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북한의 정당한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북한 도발의 원인을 한미연합훈련이나 한·미·일 간 밀착에서 찾기도 한다. 올해 2월 뉴욕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리셉션까지 주재해 장쥔(張軍) 주유엔대사의 손을 잡고 협조를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러니 한국에서 “제재에 동참 안 하면서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윤석열 대통령)는 불만을 넘어 ‘안보리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대남 핵 선제타격을 운운하고 “서울이 과녁”이라는 북한 앞에서 확장억제(핵우산)를 업그레이드하는 ‘워싱턴 선언’과 한·미·일 미사일 정보 공유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과거 6자 회담의 건설적 파트너로 대화 테이블에 앉아 북핵 해법을 함께 고민하던 이웃 나라가 방관과 비호를 거듭하면서 이런 선택지들을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역내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한국에 책임을 돌리고, 국제사회의 보편 원칙을 재확인한 우리 지도자의 원론적 발언에 온갖 말폭탄을 퍼붓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거나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게 ‘대국’의 외교라면 세계 도처에서 벌이고 있는 중재 외교가 앞으로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일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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