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노키즈존’은 없다
유튜브 콘텐츠 중 10년 후 일상을 그린 스케치 코미디(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코미디극) ‘2033년’ 시리즈를 즐겨본다. 2033년에는 아동 인구 감소로 유치원이 망한 대신 노인정이 흥하고, 오은영 박사는 <요즘 효도 금쪽같은 내 부모>에 출연한다. 아이 돌잔치는 부산 사직 구장에서 열리고, 실수로라도 어린이를 울리만 해도 범죄자가 된다. 대학도 학생이 없어 경영학과는 ‘경영경제사회복지관광통일국문학과’로 통합되고 ‘저출산극복학과’가 의대보다 인기가 높다. <런닝맨>과 <나는 솔로>에서는 사람 대신 동물들이 달리고 짝짓기를 한다. 허무맹랑한 상상일까? 무서운 예언일까?
역사에는 ‘가정법(IF)’이 무의미하다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데는 유용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있을 법한 일이니까. 그러므로 ‘2033년’ 시리즈가 그린 미래는 지극히 현재적이다. 제주도의회에서 ‘아동출입제한업소(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을 상정했다는 이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시끄럽다. 제주도가 아니어도 ‘노키즈존’에 관한 찬반 논란은 꾸준하게 있어왔다. 업소 선택에 따라 아동 출입을 제한해도 된다고 하는 이들은 아동(과 보호자) 손님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열거하며 ‘영업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한다. 물론 손님이 잘못했을 경우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업주의 곤란한 사정도 이해는 된다. 어떤 손님을 받을 것인지는 업주가 선택할 몫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잘못은 아동만 저지를까? 성인 손님으로 인한 피해는 없을까? 그럼에도 왜 아동 출입만 제한되어야 할까? ‘노키즈존’의 더 큰 문제는 ‘노OO존’을 허용할 명분을 제공하는 ‘첫 단추’라는 점에 있다. 몇년 전 화제가 된 ‘노아재존’ 식당이나 며칠 전에 등장한 ‘노시니어존’ 카페가 그 예다. 그곳들도 그럴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OO존’의 목록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문제는 ‘손님’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살펴 공생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어떤 사회 구성원을 문제적 존재로 간주하여 배제하는 ‘쉬운’ 선택을 자유와 권리로 오해하고, 그런 행위에 ‘노OO존’이라는 그럴싸한 의미부여를 한 사회 전반에 있다. 그런 행위는 자유와 권리로 포장된 차별과 혐오일 뿐이며 ‘노OO존’은 특정 대상을 배제하는 반사회적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지난 11일 제주도의회는 논의 끝에 해당 조례안 상정을 보류했다고 한다. 워낙 논쟁적인 사안이니 섣불리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았으면 한다. ‘차별하고 혐오할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 마련은 물론, 이참에 자유, 권리, 노OO존 등 그간 우리가 오·남용하며 과잉 의미를 부여한 개념들을 재고하고, 정당한 이름을 붙이자. 그래서 하는 제안인데 ‘노키즈존’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던 것을 ‘아동배제업소’라고 솔직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우리도 그런 업소 안 갈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과격한 제안인가? 사회가 이대로 흘러간다면, 10년 후에는 ‘노키즈존’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동이 희소해질 텐데 다음 ‘노OO존’ 타깃은 누구일까? 카페나 식당 문에 끝없이 나열된 출입 금지 대상 목록을 보고 눈물 흘리며 돌아설 자신을 상상해 보라.
오수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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