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코너] “미군” “의사예요”… 여성들 돈 뜯는 로맨스스캠 주의보
“사랑인 줄…” 피해액만 수십억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신경과 전문의 A씨는 수년째 자신을 사칭하는 SNS(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아내 삭제 요청하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도용해 여성들부터 돈을 가로채는 ‘로맨스스캠(로맨스 사기)’ 피해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근무 중 쉴 틈이 생기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검색해보는데 그때마다 10분 동안 찾아내는 사칭 계정만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페이스북 등에 삭제를 요청하지만, 자고 나면 또 생기는 실정이다.
최근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 이성에게 접근해 호감을 산 뒤 돈을 뜯어내는 신종 사기 ‘로맨스스캠’이 급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된 미국 군인이나 의사, 국제연합(UN)이나 환경단체 직원 등을 사칭해 국내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수법이다. 호감형 인상의 실제 인물을 활용해 합성된 얼굴로 페이스톡도 한다고 한다.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 피해자들은 이들에게 돈을 송금한다.
A씨는 자신의 얼굴을 도용한 로맨스스캠이 심각해지자 블로그에 주의문을 내걸기도 했다. 그는 “사칭 일당이 제 사진을 이용해 얼굴을 보여주는 페이스톡을 하는데 다 조작된 것”이라며 “이들은 오랫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한다고 하다가, 통장이 묶여서 돈을 보낼 수 없으니 대신 내달라고 한다”고 했다. A씨는 “이들은 한국에 가면 내가 가진 재산을 주겠다고 말하는데, 피해자들은 당연히 처음엔 거부하는데 계속되면 조금씩 돈을 보내게 된다”며 “저도 사진을 도용당한 피해자고,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2021년 신고된 로맨스스캠 피해 금액은 20억7000만원으로 2020년(3억7000만원)보다 5배 늘었다. 센터에 신고되지 않은 사건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채팅·소개팅 앱을 이용해 비대면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 같은 신종 사기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피해자들은 평소 접해보지 못한 외국 생활 얘기에 현혹되거나 외국인과 대화한다는 신기함에 이끌려 사기를 당한다고 한다.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수법으로 돈을 가로챈다. 피해자와 연락하는 해외총책, 해외총책의 지시를 받는 국내 총책, 인출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범행하기 때문에 조직 전체를 검거하기 어렵다. 최근엔 가짜 코인 사이트를 개설한 뒤 돈을 투자하도록 유도해 자금 추적이 쉽지 않다고 한다.
서울서부지법 제1형사부는 지난 4일 나이지리아 국적의 B씨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B씨는 로맨스스캠으로 4명에게 1억여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버상에서 알게 된 사람과 결혼, 연애 등 장래를 약속하거나 상대방에게 거액을 받기로 했더라도, 금전을 요구하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