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답대로 발표… 교수는 “아주 꼼꼼” 칭찬

오주비 기자 2023. 5.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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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챗봇 등장 후 첫 중간고사… 뒤숭숭한 대학가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장모(25)씨는 지난달 중순에 본 전공 과목 중간고사 성적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6개 문항을 책과 인터넷을 활용해 ‘오픈북’ 방식으로 답하는 시험이었는데, 챗GPT가 알려준 답을 그대로 적어내고도 80명 중 22등을 한 것이다. 장씨는 “취업 준비에 바빠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해 챗GPT를 썼다”며 “챗GPT가 존댓말로 답변해 준 걸 ‘했다’ 등으로 문장이 끝나게 손보고, 어색한 표현 몇 개 고쳤는데 성적이 잘 나와 너무 놀랐다”고 했다. 그는 “수업을 매번 열심히 듣고 논문과 기사까지 찾아 읽어 시험 친 친구는 24등을 해 양심에 걸렸지만, 교수님이 챗GPT 사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다음에도 쓸 생각”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챗봇 챗GPT가 나온 뒤 첫 대학 중간고사가 치러졌다. 대학가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교육 당국과 대부분의 대학이 별다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챗GPT를 사용한 일부 학생은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후기를 공공연히 남기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챗GPT 활용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서울대생 김모(25)씨는 “최근에 원어민 교수님에게 영어 글쓰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들었는데 솔직히 찔렸다”고 했다. 김씨가 듣는 영어 교양 수업은 매주 영어로 수필 한 편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김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챗GPT를 이용해 문장을 고쳐 제출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전에는 한 문장씩 문법이랑 단어 틀린 게 없는지 점검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챗GPT에 ‘이것을 교정하고 편집하시오’라는 명령어를 넣으면 문장이 매끄럽게 고쳐져 시간이 정말 많이 단축돼 잘 쓰고 있다”고 했다.

시험·과제뿐만 아니라 발표나 조별 과제에서도 챗GPT를 이용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유아 운동 발달에 관한 수업을 듣는 신모(23)씨는 지난달 초 이 수업에서 발표 점수로 A+를 받았다. 신씨는 챗GPT에 발표해야 할 주제를 물어보고 그 내용을 그대로 발표했는데 교수가 “무척 꼼꼼하고 정성스러운 발표였다”며 호평했다고 한다. 신씨는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다들 챗GPT를 이용하고 있어서 별 죄책감 없이 쓰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백모(24)씨는 챗GPT를 이용해 조별 과제에서 자신이 맡은 부분의 자료 조사를 하고 있다. 백씨는 “양질의 자료를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써봤는데 다른 조원들이 찾아온 자료들과 수준이 동일하거나 오히려 높아서 조별 과제를 하는 데 편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교육 당국이나 대학은 별다른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작년 8월 교육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 원칙을 만들어 발표하긴 했는데 여기에 챗GPT 내용은 없다”며 “챗GPT를 비롯해 올해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대학 중에는 연세대, 국민대 등 일부만 챗GPT 관련 가이드라인과 윤리 강령을 만들어 공지했다. 챗GPT 가이드라인이 없는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들의 챗GPT 사용에 관해 교수들이 잘 통제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교수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겠다는 뜻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다들 챗GPT를 이용하는데 안 하면 나만 손해다”라는 말이 나왔다. 대전의 대학생 이모(22)씨는 “과제 할 때 논문을 다 읽어보고 써서 작성에 이틀씩 걸리곤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챗GPT로 금방 쓰는 걸 보고 내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3월 연세대 교양 수업 교수는 한 학생의 작문 과제를 챗GPT 대필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0점 처리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대학생은 “걸린 사람만 운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교수만이 챗GPT 사용 관련 지침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마케팅 수업에서 학생들이 과제를 낼 때 챗GPT 답변을 요약하고, 이 답변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추가로 쓰게 하고 있다. 송 교수는 “마냥 금지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챗GPT를 올바르게 잘 활용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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