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

기자 2023. 5.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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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지 ‘취업’이 주요한 교육 목표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집에서 가는 잡월드 견학을 시작으로, 초·중·고 재학기간에는 취업을 위한 발판인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내달리다, 대학에서는 또다시 입사지원서에 적을 다양한 활동(공모전, 인턴 등), 자격증, 어학능력시험, 학점 따기가 펼쳐진다. 마치 ‘취업’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미션이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게임 속에 있는 듯하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내가 일하는 대학도 ‘신입생 세미나’와 ‘커리어 탐색과 설계’와 같은 수업과 학생 면담을 통해 진로 설정 및 취업을 돕도록 강조한다. 다른 대학도 비슷하겠지만,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대학 재정이 취약할수록 취업 중심 교육은 더욱 심해질 거라 짐작한다. 취업률이 신입생 모집을 위한 주요 전략이고, 신입생 모집률에 따라 대학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도 대학 교육을 취업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취업 중심 교육의 가장 큰 부작용은 공부를 통한 자기 성장의 기쁨보다 경쟁으로 인한 좌절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공부는 다른 이와 경쟁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물거품이 된다. 면담에서 반복적으로 듣는 학생들의 고민은 “다른 애들은 이미 하고 싶은 것을 잘 알고 그에 맞춰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은데, 저만 뒤처져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로서 “삶은 각자 자신의 경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하기”를 권한다. 공부를 자신의 성장을 위한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경쟁적인 사고 틀에서 벗어나도록 제안해주는 것 자체가 학생들의 불안을 다소 덜어주는 듯하지만, 학생들의 현실을 모르고 주절거리는 공자님 말씀이나 꼰대질은 아닐지 매번 조심스럽다.

답답한 마음에 ‘신입생 세미나’에서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와 자신이 생각하는 공부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에 대해 작성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공부의 목표를 자기 성장을 통해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것으로 제안하고, 이를 위한 적극성과 체력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공부 기술도 알려준다. 내 예상과 달리, 학생들의 반응은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그중에 한 학생은 자신들이 수동적인 인간이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에게 공부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경쟁의 구도에 몰아넣은 것이 수동적인 인간이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보를 남에게 알려주지 않으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자신이 힘들거나 귀찮은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 것이라고.” 또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경쟁과 창의성 사이의 모순도 지적한다. “나는 공부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창의성을 가지고 남들이 못하는 걸 하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힘든 일을 하라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이 학생의 진술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수동성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듯하다. 취업 중심 교육은 대학이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은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산업에서 요구하는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 기반한 공부는 창의성은 물론이고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다. 반면에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서로의 생존을 지지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은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키운다. 따라서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과 상치되지 않는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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