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사이의 리듬들
“우리 삶의 공간은 연속적이지도, 무한하지도, 동질적이지도, 등방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공간이 어디서 부서지고, 어디서 휘며, 어디서 분리되고, 어디서 다시 모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까? 우리는 균열들, 간격들, 마찰점들을 어렴풋이 지각하며, 때때로 공간이 어딘가에 붙박이거나, 부서지거나, 부딪치는 것을 막연하게 느낀다.”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려들면 습관처럼, 조르주 페렉의 <공간의 종류들>에 실린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공간’을 의식하면서 짚어보는 질문들이 그의 문장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일 거다.
30여년간 작가 최만린이 생활한 공간을 공공의 미술관으로 정비한 후, 미술관은 SMA 공간연구라는 기획 아래, 이 공간과 예술가들이 교감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올해의 연구자로 초대받은 오종과 크리스 로는 공간이 쌓아온 시간의 리듬을 감각하고 나눌 수 있는 작업을 펼쳤다. 사선의 천장과 아치형 문, 콘크리트 벽면에서 강직함 안에 부드러움을 간직한 최만린의 개성을 읽은 오종은, 강렬한 공간에 부드럽게 반응하는 조명 선을 만들었다. 공간의 모서리, 증축의 과정을 거친 장소에 자리 잡은 크리스 로의 작업은 그가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침묵과 공명하며 공간이 축적한 변화의 시간에 접속했다.
퍼포먼스로 공간연구에 참여한 안무가 공영선과 사운드 아티스트 홍초선은, 고요한 침묵의 틈 사이로 스며들어 간지러운 진동을 공간에 흩뿌렸다. 몸은 피할 길 없이, 이 공간의 모든 요소와 조응했다. 긴장, 이완, 멈춤, 이동을 반복하는 몸이 설계하는 리듬과 소리가, 잠시 머물다 사라질 층위를 쌓아나갈 때, 나의 몸은 그 무엇으로도 호명할 이유가 없었던, 아직 어떤 층위가 쌓이기 전의 이 공간을 문득 그리워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소환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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