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글로벌 사우스’ 집중 공략…서방 맞불 대책 주목
다음주 G7 정상회의
이번 정상회의는 1년을 넘어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갈수록 심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 등 각종 현안이 중첩돼 있는 상황에서 서방 주요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강구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특히 유엔 차원의 러시아 침공 비판 결의안 채택 등 G7 회원국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안에 선뜻 동조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제3세계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어떻게 달래고 설득할 것이냐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란 점에서 주목을 모으고 있다.
올해 G7 정상회의에 한국·인도·브라질·호주·인도네시아·베트남·코모로·솔로몬제도 등 8개국이 별도로 초청된 것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항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려는 서방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인도와 브라질은 중국·러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브릭스(BRICS) 회원국이고 솔로몬제도는 최근 중국이 부쩍 공을 들이고 있는 남태평양 도서 국가다. 아프리카 동남쪽의 조그만 섬나라인 코모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미온적 입장을 취하는 남아공 대신 초청국 명단에 포함됐다. 여기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의가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당초 나고야·후쿠오카 등이 개최지 후보로 거론된 상황에서 1945년 원자폭탄 피폭지이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역구인 히로시마로 최종 결정된 것은 핵 사용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나선 러시아에 맞서 ‘핵무기 반대’라는 메시지를 발신할 최적지라는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서방을 대표하는 G7 정상들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어떤 의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할지는 최근 G7 장관들이 진행한 일련의 사전 협의를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G7 외교장관들이 지난 2월부터 심도 있게 논의해 온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가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도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현지에선 G7 정상들이 북한 핵·미사일 도발을 한목소리로 비판할 경우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G7 재무장관들과 통상장관들이 최근 잇단 회동에서 국제 금융 시스템과 공급망 안정을 중점 논의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경제 안보를 중시하는 우리 정부로서도 공급망과 관련한 협력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과 관련해 AI의 적절한 이용에 대한 정상 간 합의가 도출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대만 문제와 인도·태평양 지역 안정 등 중국 견제를 위한 G7의 통일된 메시지를 내는 것도 주요 현안으로 꼽힌다. 더욱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유럽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길을 따르지 않고 독립적인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며 외교적 독자 노선을 강조하고 나선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일본 등 G7 회원국들이 프랑스와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대응 전략이다. 이는 기존의 G7 정상회의 의제와 가장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주제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의 ‘우군’ 확보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집중 공략하고 나서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G7 정상들이 대책 마련에 본격 나서는 모습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기·식량·에너지 공급과 군사 협력을 고리 삼아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집트와 수단·케냐·콩고·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의 러시아산 밀 수입 의존도는 30%가 넘고 있다. 러시아 용병 기업인 와그너 그룹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말리·모잠비크 등에 주둔해 왔고 최근 내전에 휩싸인 수단에서도 반군 훈련을 도맡아 왔다. 그런 가운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최근 6개월 새 아프리카 11개국을 돌며 외교적 유대 강화에 나서자 서방 국가들도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하고 본격 대응에 나설 태세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이 같은 국제 지형을 십분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G7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번 G7 정상회의에 초청된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월 ‘보이스 오브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에 125개국을 초청해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모리 총리는 “지난 80년간 지속된 (강대국 중심의)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이 바뀌고 있다”며 “우리가 미래에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G7 정상회의 의장국인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의를 목전에 둔 이달 초 아프리카 4개국 순방에 나선 것도 글로벌 사우스 달래기의 일환이란 해석이다.
외교가에서는 이 같은 국제사회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보다 많은 외교 역량을 투입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적잖다. 윤석열 정부도 ‘글로벌 중추국가(GPS)’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와의 교류 확대 등을 통해 한국 외교의 외연을 넓힐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G7 정상회의 참석이 한국 외교 다원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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