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소수가 ‘순응편향’ 만나면
토드 로즈 지음
노정태 옮김
21세기북스
사회심리학 연구의 선구자 리처드 샹크가 1928년 미국 뉴욕주 작은 마을에서 3년간 지역 주민을 관찰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주민들은 술·담배·카드게임 등과 관련해 공적으론 근본주의적 태도를 내세우면서도 사석에선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공적 의견과 사적 행동 사이의 이러한 괴리를 사회심리학에선 ‘집단 착각’이라고 한다.
샹크는 이를 ‘목소리 큰 소수가 집단 전체를 잘못 대변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 결과’라고 분석했다. 주민들은 특정 의견이 다수의 뜻을 대변한다고 ‘부정확하게’ 알고 이를 추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간발달학 박사로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지은이는 집단 착각을 ‘사회적 거짓말’이자 집단을 아무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끄는 ‘흑마술’이라고 비판한다.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내용처럼 누군가 진실을 말하기 전에는 모두가 파국으로 가는 행진을 멈추지 못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집단착각은 정치와 젠더·인종 등 삶의 거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성공의 의미나 삶의 방식, 살고 싶은 나라의 성격, 타인에 대한 신뢰, 법률·교육·의료 등 공적 제도에 대한 관점 등 거의 모든 사회적 삶에 집단착각이 난무한다. 전쟁·기후변화 등 거대담론에서 우리 눈에 색안경을 씌우는 건 물론 뭘 먹을지와 같은 소소한 분야에도 관여한다.
집단착각은 편견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국제적 화근이 될 수 있다. 예로 중국인들은 다른 중국인들이 일본인에게 부정적 감정을 지녔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믿음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반일감정을 표출하기 일쑤다. 대부분의 일본 남자는 출산휴가를 쓰고 싶어 하지만 다른 남자들이 이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해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은이는 인간 뇌에는 다른 사람들과 맞춰 행동하고 싶은 충동인 ‘순응편향’이 있어 ‘진실’ 대신 ‘집단의 믿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뇌는 음식 선호도에서도 집단의 평균과 가까운 방향으로 가는 순응 편향성을 보여줬다.
지은이는 각자가 갈등보다 조화를 위해 헌신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개인이 믿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때 집단 착각이라는 안개를 걷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제 Collective Illusions.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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