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로 펼쳐낸 고대사의 상상력

신준봉 2023. 5. 1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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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끝에 새긴 이름
화살 끝에 새긴 이름
이훈범 지음
문학수첩

시류에 초연한 듯한, 장르나 성격을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제목보다 작은 활자체로 인쇄한 부제가 좀 더 구체적이다. ‘초원의 화살, 김(金)의 나라에 닿다’. 초원. 김의 나라. 과거·미래를 삭제해 무중력이면서도 현장감이 살아나는 동사 원형 ‘닿다’. 어쩐지 벌판·전쟁·망명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기원전 중국 대륙의 절대 강국 한나라에 맞섰던 변방의 유목 민족 흉노의 후예가 우여곡절 끝에 신라에 정착한다는 설정이 소설의 뼈대다. 공인받지 못한 재야사학에서나 거론되는 이야기인데, 신라 김씨 왕가의 뿌리가 결국 중국이라는 것. 현대 한국인의 혈통 지분 가운데 적어도 3분의 1이 신라에 있다면, 거칠게 말해 한국인과 중국 소도시 어디선가 마주칠 법한 중국인이 생판 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미묘한 대목은 소설 막바지, 동북공정에 혈안이 돼 있는 지금의 중국 당국에, 경주 김씨 성(姓)의 비밀(뿌리가 중국이라는)을 증거하는 금인상(金人像)을 넘기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사료가 충분치 않다 보니 빈틈도 많은 고대사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상상력의 글쓰기다.

인터넷 백과사전과 지도를 적잖이 참조하며 읽으면 뿌듯한 소설인데, ‘잘파세대’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취향과 삶의 태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소설의 무거움을 덜기 위한 장치가 판타지와 로맨스. 중심인물 김준기와 리한나가 의식 이격 요법이라는 최면술 비슷한 방식으로 2000년 전 흉노족 황제 묵돌 선우를 보필하던 누르하(소설에 따르면 경주 김씨의 시조겠다), 인터넷에 경주 김씨 중시조로 검색되는(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김일제 등의 의식 안으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그러다 두 사람은 연애에 빠지는데, 표현 수위에 실망할 수도, 소설은 결국 글쓴이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당황할 수도 있겠다.

저자 이훈범은 예리한 필봉을 휘두르던 언론인이었다. “역사에서 밝은 눈을 얻고 책에서 맑은 귀를 얻는 게 삶의 기쁨”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다 쓴 소설이겠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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