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불안·무기력…마음 아프면 뇌를 들여다봐야 해결

정영재 2023. 5. 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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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찾아서] ‘뇌 읽는 명의’ 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
기쁨·슬픔·우울·분노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은 뇌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권준수 교수의 모습을 다중노출 기법으로 촬영했다. 최기웅 기자
“무기력·수면장애·불안·우울·강박…. 내가 아니라 뇌가 문제다.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이 겪는다는 정신질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머릿속의 작은 우주 ‘뇌’를 알아야 우리는 괴롭히는 ‘마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책 『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21세기북스)의 저자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다. 그는 조현병과 강박증 분야의 명의이자 세계적인 뇌영상학 전문가다. “인간의 감정·의지 등 정신활동과 뇌의 작동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마음이 아프면 뇌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서울 동숭동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권 교수를 만났다.

우울감 2주 이상 이어지면 우울증 의심

Q : 현미경으로 본 뇌 신경세포와 망원경으로 본 우주의 모습이 놀랄 만큼 닮았는데요.
A : “양쪽이 정말 비슷해서 저도 깜짝 놀랍니다. 그만큼 인간이 대단한 존재라는 거죠. 인간은 대사(代謝) 작용이 멈추면 한순간에 생명이 끊어지는 존재지만 가장 중요한 뇌 안에 우주와 같은 섭리가 들어있는 겁니다. 우주는 그냥 물리적 세계지만 인간은 뇌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의식과 인지를 만들어내면서 진화하니까 어쩌면 우주보다 더 대단하지요.”

Q : 두정엽 손상 환자가 시계 반쪽만 그린 그림도 시사점이 크죠.
A : “실재하는 것보다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 대상이 그 사람한테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현실이 객관적으로 있다고 보죠. 사실은 각각의 인간이 느끼는 현실은, 시각 정보가 후두엽에 들어와서 두정엽까지 퍼지고, 거기서 재조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른쪽이 망가진 사람은 오른쪽만 현실이 되고 왼쪽은 없는 거예요.”

Q : 끔찍한 총기 난사,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뇌에 문제가 있다고 하네요.
A : “맞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편도체가 위축돼 있는 사람은 슬픔이나 공포·공감 같은 걸 잘 못 느껴요. 살인을 하고도 별로 끔찍하다고 생각 못하죠. 상당 부분 유전적인 요인이지만 환경의 영향도 큽니다. 제임스 팰런이라는 뇌과학자가 자신의 뇌 MRI를 찍어봤더니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의 뇌 모양과 흡사했어요. 유전적 요인이 있었지만 좋은 환경과 교육이 상쇄시킨 거죠.”

Q :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면서요.
A : “보통 사람이면 우울감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못 느끼는 게 더 문제죠. 아끼던 강아지가 죽었다면 당연히 우울하죠. 그런데 그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치료가 필요한 병적 우울증 상태라고 봅니다. 뇌의 내측 전두엽이나 편도체의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뇌 내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신경조절술이라고 해서 우울증을 느낄 때 나타나는 뇌 부위를 밖에서 자극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 현상과 뇌의 변화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거든요. 이쪽을 바꾸면 저쪽도 바뀌는 겁니다. 뇌를 쉽게 자극하는 기기를 갖고 다니면서 우울할 때마다 작동시키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모인 뇌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촬영하면(왼쪽) 망원경으로 본 우주의 모습(오른쪽)과 놀랄 만큼 닮았다. 그래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사진 권준수]
권 교수는 2011년 정신분열병을 조현병(調絃病)으로 바꾸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가 병명 개정 과정의 얘기를 소개했다. “병명개정위원회 위원이었던 국어국문학회 김진영 회장님이 ‘서산대사가 쓴 책에 조현긴완(調絃緊緩)이라는 표현이 있다. 현악기 줄을 너무 팽팽하거나 느슨하지 않게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는 뜻으로,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걸 병명으로 하면 어떨까’ 제안을 했어요. 처음에는 ‘뭔 소린가’ 했는데 뇌 신경세포의 연결이 느슨한 정신분열병 환자 상태와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더라고요. 그래서 조현병으로 바꿨고, 이 케이스가 해외 학술지에도 소개됐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현병’ 자체가 굉장히 안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뇌 자극해 기분 바꿔주는 기계 곧 등장

Q : 마약이 너무 급속히 퍼지고 있는데요.
A :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시작하면 안 된다’입니다. 일단 손을 대면 쾌락 중추에 대한 자극이 너무 커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죠. 도박·게임 중독도 이와 비슷합니다. 두 번째는 ‘빨리 치료받아야 한다’입니다. 마약사범이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재범률은 100%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마약범을 잡고 처벌하는 데만 치중했어요. 한동훈 법무장관이 들어오면서 교정시설에서의 치료 및 재활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Q : ‘처방하는 마약’이 더 심각하다면서요.
A :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중독성이 100배 이상 높은데 병원에서 처방 받아 사고 팔리거든요. 펜타닐은 적합한 환자에게 적정 용량을 처방해야 하지만 실제 처방되는 양은 그것의 몇 배입니다. 심지어는 외부 조직과 연결된 의사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한 번 중독되면 계속 사야 하니까요.”

Q : 건강한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A :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와 성취 지향성이 매우 강합니다. 외국인들은 이런 활력과 다이내믹을 좋아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인 텐션이 너무나 올라가 있어요. 적절한 스트레스는 활력을 주지만 과도하면 뇌 신경세포를 죽입니다. 명상이든 복식호흡이든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그것도 어렵다면 촛불을 켜고 멍때리기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신체가 건강해야 뇌도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햇빛 보기, 7시간 이상 잘 자기, 긍정적인 생각이 신체와 정신 건강에 필수입니다. 가끔씩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요.”
권 교수는 이마 가운데서 오른쪽으로 10㎝ 정도 깊은 자상(刺傷) 흔적이 있다. 7년 전, 상담 중이던 환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에게는 드문 경험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나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극단·극한의 상황들을 숱하게 보고 들으면서 권 교수는 행복을 다시 정의하게 됐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거나 가지는 ‘포지티브 경험’을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존재하는 자체가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와 주위에서 사건 사고가 생기지 않고, 네거티브가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하루, 저녁에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함께 먹을 수 있는 게 행복입니다. 작은 거라도 재미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걸 위해 시간을 내 보세요. 그러면 뇌도 행복하다고 느낄 겁니다.”

■ ‘안인득 사건’의 비극…조현병 환자 치료·인권 접점 찾아야

「 2019년 4월 17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현병 환자인 안인득이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 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했다. 안인득은 살인자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환자였다. 권준수 교수는 “정신질환자를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정신질환 환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해서 관련 7~8개 법안이 19대 국회 막바지에 올라갔어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합 심의해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비빔밥이 돼 버렸죠. 이해당사자가 많은데 공청회 한번 안 하고 우당탕탕 통과시켜 버린 겁니다. 환자 인권을 보호하는 건 좋지만 입원 조건을 굉장히 까다롭게 만들었어요.”

이런 와중에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환자를 토요일에 입원시킨 정신과 전문의가 검찰에 기소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병원에서는 웬만하면 입원 안 시키고 환자 상태가 더 심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안인득의 경우도 가족이 몇 번이나 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괜찮다고 무마하는 바람에 결국 사건이 터진 거라고 한다. 권 교수는 “법과 시스템이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 현실 검증력에 장애가 있음에도 그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쪽과 환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입원시켜서 치료를 하는 게 진정 본인과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거라는 주장이 있어요. 그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겠죠”라고 말했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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