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정치가 잉태한 심청전·춘향전, 새로운 역사 신호였다
[근현대사 특강] 근대의 여명 〈중〉
18세기 들어 평민 열녀 전기 등장
춘향전과 심청전의 주인공은 열녀와 효녀이다. 열녀의 역사는 오래다. 조선 전기 『삼강행실도』가 언해본으로 보급되면서 생긴 역사다. 각 고을 읍지(邑誌)를 보면 「효행」 「열녀」 항목이 세워지고 시대가 지날수록 뽑힌 인물의 수가 늘었다. 「효행」에는 남자가 대부분이고 효녀는 어쩌다 보인다. 「열녀」에는 적지 않은 평민과 천인의 이름이 올라 있다. 18세기에 들어와 평민 열녀의 전기(傳記)가 등장한다. 조귀상의 「향랑전(香郞傳)」을 비롯해 6편 정도가 확인된다. 전기는 정려문 세우기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수절 내용을 후세에, 그리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 18세기 서민 보호 정치를 내세운 탕평 군주 시대에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진한의 한시 춘향전도 굳이 따지면 이 계열에 속한다. 그런데 심청전의 연원으로 간주할 만한 효녀 ‘전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조는 재위 18년(1794) 정초에 백관을 거느리고 할머니(영조 계비 정순왕후)와 어머니(혜경궁 홍씨)를 찾아 특별한 세배를 올렸다. 할머니가 50세, 어머니가 60세 되는 해였다. 할머니가 계비로 늦게 간택된 탓으로 며느리보다 10세 연하였다. 정조 임금은 두 어른이 같은 해에 순년(旬年, 10년 단위)을 맞이한 것을 “천 년에 한 번 있을 경사”라고 축하하였다. 이어 신하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전·현직 관리 70세 이상, 사(士)·평민 80세 이상, 80세 미만이라도 해로하고 있는 부부들을 모두 조사하여 ‘작위’(품계)를 내리고 해당자의 이름과 나이를 적어 올리게 하였다. 9개월 뒤 총 7만5145인의 이름과 나이를 담은 『인서록(人瑞錄)』이 올려졌다.
일반 백성도 유교 실천 덕목 공유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던져진 후 용왕의 배려로 연꽃으로 세상에 되돌려 보내져 마침 그곳을 지나던 뱃사람들이 그 연꽃을 건져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연꽃이 처녀로 변하자 왕비로 삼았다. 왕비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맹인 잔치를 열어 부녀 상봉이 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아버지 심 봉사는 딸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뜬다. 이 줄거리에서 주목할 것은 지극한 효성이면 평민도 왕비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왕실이 마련한 전국 맹인 초대 양로 잔치이다. ‘을묘 원행’의 양로 잔치가 없었다면 있기 어려운 구성이다. 심청전이 ‘을묘 원행’ 직후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화성 양로 잔치가 없었더라면 그런 높은 구성력을 지닌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2년 뒤(1797년) 새해 첫날 정조는 다시 신하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의 기쁨을 팔도 신민들과 함께 누리고자 효자를 표창하고 노인을 경모하는 의식에 최선을 다하였으나 내가 부덕한 탓으로 풍속이 새로워진 것이 없다고 하면서 특별한 조치를 지시하였다. 요순시대처럼 오륜을 닦는 것이 주요하므로 모든 공부의 출발인 『소학』을 백성들이 뜻을 쉬이 알 수 있도록 설명[訓義]를 붙이고, 또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친 『오륜행실도』 언해본을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농촌에서 노인을 앞세우는 「향음주례」를 행하여 노인을 섬기면서 농민들이 힘써 농사짓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자 하며, 「향약」 또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요결이므로 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듬해 그 결과로 언해본 『오륜행실도』가 간행되어 전국에 배포되었다. 이 책 머리에 앞의 지시를 정리하여 양로와 무농(務農)을 위해 소학·오륜행실·향음주례·향약을 반포하는 「윤음」을 붙였다. 소학, 오륜행실, 향음주례, 향약 등은 지금까지 양반 사대부들의 것이었다. 정조는 일반 백성들도 이를 공유하여 그들이 유교 덕목 실천 주체가 되어 나라의 주인 의식을 가지게 하려고 하였다. 서민 대중의 국가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조치였다. 춘향전의 하이라이트는 수청 들라는 변 사또에 대한 춘향의 항변이다. 남자는 두 임금을 모실 수 없고, 여자는 남편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천륜인데 나보고 수청들라는 사또 당신은 임금을 바꿀 사람이라고 질타한다. 효성이 지극하면 평민 출신도 왕비가 될 수 있다는 심청전의 메시지도 같은 지향이다. 어사 출두 후 이 도령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는 춘향은 나중에 나온 판본에서 지위가 첩에서 처로 바뀌고, 왕이 춘향에게 특별한 상을 내리는 것으로 끝이 맺어진다. 두 작품은 곧 탕평 군주, 특히 정조가 모든 신민이 나라 주인이 되게 하려는 새로운 역사 만들기에 대한 합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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