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학교 간 쑨원, 거수경례 웨이리황에 “나를 보위해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75〉
전공 세우자 지명 ‘웨이리황현’ 변경
훈화를 마치고 소년병 학교를 나서던 국부 쑨원(孫文·손문)은 헐레벌떡 달려와 거수경례하는 앳된 청년이 눈에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옆에 앉은 주칭란(朱慶蘭·주경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을 극진히 돌봐준, 바로 그 주칭란에게 차를 멈추라고 지시했다. 직접 내려 성명과 나이를 물었다. 기백과 예의가 맘에 들었다. “내 옆에서 나를 보위해라.”
쑨원은 웨이리황에게 초급장교 계급장을 달아줬다. 웨이는 자연스럽게 장제스(蔣介石·장개석)와도 인연을 맺었다. 쑨원 사망 후 북벌(北伐) 전쟁에서 전공(戰功)이 탁월했다. 북벌군 사령관 장제스의 눈에 들었다. 장의 인사원칙은 단순하고 철저했다. 동향이나 황푸군관학교 출신이 아니면 공을 세워도 포상에 인색했다. 웨이만은 예외였다. 중요보직은 물론 진급도 빨랐다. 웨이가 한 현(縣)을 점령하자 명칭을 ‘웨이리황현’으로 바꿀 정도였다.
웨이리황은 우연을 중시했다. 말년에 자주 한 말이 있었다. “국부는 물론, 장제스 위원장과의 인연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주윈헝과 한췐화와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마오 주석과 주더(朱德·주덕), 린뱌오(林彪·임표)와의 인연도 우연이었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1927년 4월, 북벌군이 난징(南京)에 입성했다. 웨이리황은 1개 사단 이끌고 70km 떨어진 쩐장의 펑처산(風車山) 밑에 사령부를 차렸다. 산 중턱에 충스여중이 있었다. 사병들은 승리에 들떴다. 떼를 지어 고성방가하고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희롱했다. 학교에 몰려가 축구하고 씨름하고 유리창을 깼다. 대소변도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교사들도 미국인 선교사 외엔 전부 여자였다. 항의할 엄두를 못 냈다. 용기 내서 불만 토로하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들이다.” 교장 주윈헝이 직접 나섰다. 사병들을 설득했다. “학생 교육에 지장이 많다, 당장 철수하기 바란다.” 사병들은 대꾸도 안 했다. 배꼽 움켜쥐고 깔깔댔다.
웨이 “장제스·마오 등과 인연도 우연”
주윈헝은 화가 치솟았다. 난징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쩐장에 주둔 중인 사령관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답신은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계급은 육군 중장.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무식하고, 난폭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일반 군벌과 다를 바 없다. 쑨원 따라 하느라 콧수염을 길렀다. 별명이 리틀 쑨이다. 머리에 든 것이 없다 보니 아는 척하다 남을 웃기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본인은 모른다. 전쟁에서만 용감한 군인이다. 이겨도 크게 이기고 패해도 크게 패할 사람이다.” 당시 주는 28세, 호기심이 식지 않은 나이였다. 웨이리황을 직접 찾아갔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한편의 코미디였다. 웨이리황은 여학교 교장이 왔다는 보고에 시큰둥했다. 안 봐도 어떨지 뻔했다. 잠시 후 주윈헝을 만난 웨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늘씬한 키의 젊은 여인이 꼿꼿이 서서 당장 군인들을 철수시키라고 호통치자 당황했다. 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칠게 나올 줄 알았던 장군이 땀 뻘뻘 흘리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부관을 불러 소리쳤다. “학교에 진입한 군을 당장 철수시켜라. 모든 것을 원 상태로 복원시켜라. 앞으로 여학교 근처에 얼씬거리면 장교건 사병이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겠다.” 부관이 나가서 다시 불러 목청을 높였다. “당장 시행해라.” 자기를 곁눈질하며 허둥대는 웨이의 모습에 주는 웃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행동을 했다. 땀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넸다. 받아 쥔 웨이가 씩 웃자 주도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웨이리황이 주윈헝에게 오찬을 함께하자고 청했다. 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방에서 기다리는 비서를 불렀다. “학생들도 학교 정리하는 군인들을 도와줘라.” 웨이가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찬은 화기애애했다. 웨이가 음식을 권하자 주가 조용히 응답했다. “명령이 몸에 뱄군요.” 다음에 제대로 된 만찬 준비하겠다며 민망한 표정 짓자 주가 맞받았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주도 웃고 웨이도 웃었다. 그날 밤 웨이는 잠을 설쳤다. 주도 그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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