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늙어가는 아내에게

2023. 5. 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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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얼마 전 ‘세상에 시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 질문에는 시나 시인에 대한 회의나 불신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공격성도 찾을 수 없었고요.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열린 문학 행사에 온 한 어린이의 물음이었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실감 가는 답을 전하고 싶었던 까닭에 한동안 침묵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덥다, 배부르다, 저 옷 갖고 싶다. 등등. 하지만 또 이 세상에는 말로는 부족한 마음이 있습니다. 슬프다, 고맙다, 서운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이런 부족함을 채우고자 사람들은 말 대신 노래를 하고 시를 쓰는 것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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