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튜닝과 맞춤법의 공통점(MD칼럼)

2023. 5. 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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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뭐해요? 튜닝해야죠?” 

아, 깜박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온 일에 정신이 팔렸나 보다. 기타를 치기 전에 튜닝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기타 레슨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튜닝이 몸에 배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도도서가에서 새로 나올 첫 번째 책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책 마감이야 한두 해 하는 일도 아니지만, 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게 에디터의 일. 

설상가상으로 튜닝을 깜박하는 것은 물론 기본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로 벌써 몇 달째다. 레슨 중 내가 자주 하는 말은 “이 소리가 맞아요?”이다. 기타 선생님은 “아니 그걸 본인이 알아야죠”라고 답한다. 간혹 “지금 소리 좀 괜찮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요.” 

내 귀는 아직 매우 안 좋은, 그러니까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소리 정도만 구분할 뿐, 안 좋은 소리나 조금 안 좋은 소리, 그나마 들어줄 만한 소리 등을 구분해내지 못한다. 기본 소리를 잘 내지도 못하고 좋은 소리를 구분해내지도 못하고 있다.

기타 선생님은 기본에 꽤 엄격하다.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다행히도 나는 기타는 못 칠지언정 기본의 중요성은 매우 잘 알고 있다. 기본이 기본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꼰대 같은 말이지만 북 에디터로서 나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잘 못하는 에디터가 기획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서 좋은 에디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잘 지켜야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틀릴 때가 있지만.  

우선 책은 한번 출간되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책은 그대로 시중에 유통되어 독자 손에 닿는다. 초판을 2000부 찍는다고 한다면 맞춤법 띄어쓰기가 잘못된 책 2000부가 그대로 시중에 돌아다닌다. 그 책을 산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한, 그 독자가 그 책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말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요즘은 어느 분야든 기획력을 중시하는 분위기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획력이란 적어도 출판 세계에서 에디터가 갖춰야 할 여러 능력 중 하나일 뿐이다. 출판에서 기획이란 여러 중간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달라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책은 콘텐츠로서 소비되는 여타 매체보다 사이클이 길다. 반면에 시의성 있는 기획은 갑자기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면 그에 따라 기획 방향과 원고 내용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같은 기획이라도 편집 방향을 어떻게 잡는지(혹은 누가 편집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책이 될 수 있어 기획 능력만 가지고 좋은 에디터다 아니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닮고 싶은 경력 20년 이상 선배들은 아직도 책 한 권을 만들면서 사전을 찾고 또 찾는다. 표준어나 외래어표기법이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알고 있는 단어와 그 뜻이라도 혹시 내가 언중에 잘못 쓰고 있지는 않은지, 또 다른 용례는 없는지, 이 문장에 어울리는 더 적확한 단어는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기본이 단단해야 발전도 변형도 가능하다. 지루하고 힘들어도 이 기본을 잘 다져두어야 한다.

지금 내가 매번 기타 레슨에서 하고 있는 건 이 작업이겠다. 기본이 어느 정도 다져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북에디터 18년 차라는 적지 않은 경력의 나도 아직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꽤 많이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만큼 하다 보니 기본기가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 그럼 다시 기타를 튜닝하고 소리를 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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