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항미원조" 中 궤변 침묵한 野, 반일만 붙잡아봐야…
업혀가는 용산·국힘, 소통·민주주의 거부 심화
검찰권 쥔 당정 '아쉬울 것 없다' 변화 난망
野마저 '늘 하던대로' 죽창가 변주…국민 싫증
'中에만 저자세' 의문 풀어야 여론 반전 명분
지난 2주간 정치권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타락한 실태를 거듭 노정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한푼 줍쇼"라던 친명(親이재명)계 초선 김남국 의원 1명이 수십억~백억단위 코인을 공직자재산신고 사각지대에서 주물럭대고 이해충돌 소지 법안들에 서명·찬성한 민낯을 드러냈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300만~500만원 안팎 '돈 봉투 살포' 정황, 그 수혜자인 송영길 전 당대표의 귀국과 검찰출석 줄다리기로 홍역을 치르던 상황마저 까마득해질 정도다. '코인 살포'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없진 않다.
'잊혀지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으로도 꽤 시끄러워졌다. 종일 자원봉사자에게 점심 한끼를 주는 데 그치는 '열정페이' 공고 내로남불 논란, 한 장소에 똑같은 이름의 재단법인과 개인사업자를 만든 데 대한 수익 관련 의혹이 번지자 서둘러 불끄기에 나섰다. 신구(新舊)를 불문하고 '돈 귀신'이 붙은 듯한 논란에 아연실색이다. '대장동 개발-화천대유 폭리' 의혹처럼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무마할 수 없는, 국민 배신감을 유발하는 비리 의혹과 사법리스크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터져나올지.
당정은 소통·민주주의와 담 쌓고 있다. 용산은 제1야당의 대표를 놔두고 새 원내대표에만 대통령과 회동설을 띄웠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조차 접었다. 자화자찬 안 한다더니 홍보 영상·메시지는 주입식으로 쏟아냈다. 여당 지도부는 불과 두달 만에 비(非)윤핵관 최고위원 둘을 잘라내고 대표는 무풍지대로 숨었다. '전광훈 목사 연루 리스크'를 '그들의 설화'로 떠넘기고 사실(史實)논쟁을 거세했다. 원내대표는 발언권이 있는지 없는지, 출입기자들과 오찬 미팅을 열고도 '불편한 질문 자제'를 읍소했다.
징계 과정은 '답정너'였다. '엄한 곳 구걸' 비판을 들은 당대표는 4월 하순부터 임명직과만 어울리는 '최고위원 패싱' 징후를 보였다. 용산마저 월초 당 지도부를 두차례 부를 때 최고위원들을 배제했다. 윤리위는 사법기구 시늉조차 포기하고 "정치적 해법"을 징계대상자들에게 흥정했다. 한명 사퇴하니, 전례없는 전국위 주관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바로 예정됐다. '뒷배와 확신' 없이 가능한 일들일까. '용산의 입'과 '집단린치'로 3·8 전당대회의 당권주자를 솎아낸 것처럼, 총선까지도 변치 않을 태도다.
양 진영 중 어느 한쪽이 궤멸 직전에 몰리지 않는 한 '정치 실종' 상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여당으로선 거야(巨野)의 집권시절 실정을 때리고, 여소야대 국정 애로를 부각시키는 것에서 노선을 바꿀 유인이 적다. 검찰권이란 무기도 있다. '아쉬울 게 없다'는 계산일텐데, '잘하고 있다'는 착각을 해선 안 될 것이다. 친윤(親윤석열)계 의원모임에 야당의 노(老)정객을 불러 강연을 들은 여당 지도부는 당내 '찍어내기 말자'는 충고에 침묵하다가 '돈봉투, 선수끼리' 농담에나 반응한 정도다.
야당도 마지막으로 정권을 잃은 쪽이지만 '늘 하던대로' 1년 내내 강대 강을 택했다. 반일을 반미 레버리지 삼는 듯한 기조는 특히 고착화하고 있다. 변화하고 '바람'을 타야 대여(對與)공세에 힘이 실릴텐데 말이다. 윤 대통령의 4월 한미정상회담은 대(對)북핵 공조 강화 성과로 긍정평가가 국정지지도를 크게 웃돌고, 3월과 5월 두차례 한일정상회담도 평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조기 방한한 기시다 일 총리는 일제 징용에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고 인정했다.
윤석열 정부의 징용 배상 제3자 대위변제안에 대해, 지난달 전체 피해배상 대상자 15명 중 10명이 판결금을 수령한 데 이어 생존자 3명 중 1명이 '해법 수용'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생존자 전원이 반대한다'며 대통령 탄핵사유라고 주장했던 야당은 별다른 책임지는 언급이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중인 후쿠시마 사고원전 방사능 오염수 처리, 한국 시찰단 파견 관련 '용어 시비'에 열올리고 있을 뿐이다. 의원 방일단이 원전 방문은커녕 일본 극좌 과격파 거점만 들른 제1야당에게 설득력이 주어질까.
애초 역사·국격이 걸린 문제에서 '일본'을 '중국'으로 바꾸기만 하면 저자세로 돌변하는 모습에 대한 의문도 풀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수현 전 문재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5일 KBS라디오에서 문 전 대통령의 2017년 중국 국빈방문 당시 식사 총 10끼 중 8끼를 서민식당 등에서 혼자 해결한 '혼밥' 논란에 관해 "중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울렁이게 하는 일정이었지 저희가 어떻게 '홀대를 당해서 혼밥을 먹었다'고 하시냐"고 강변했다. "윤 대통령께서도 그런 일정들을 잘 기획을 하시라"고도 했다.
중국이 6·25 전쟁 개입의 가해·피해자 관계를 뒤집어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움)전쟁의 위대한 승리"라고 궤변을 편 지 3주째에도 민주당은 일언반구 없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7일(워싱턴DC 현지시간)미 의회 연설에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명 인해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자 중국 외교부는 이런 반응과 함께 막말을 했다. 여당에선 김기현 당대표가 "얼토당토 않은 역사왜곡"이라며 "불법침략에 대응하는" 전쟁이었음을 상기시킨 바 있다.
반면 민주당에선 '반일 죽창가, 대미 퍼주기 프레임'으로 윤 대통령의 정상외교를 실시간으로 겨눴다. 그나마 지난달 하순, 민주당 비주류 박용진 의원이 윤 대통령의 대만해협 관련 외신인터뷰 언급을 중국 외교부장이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비방하자 "오만방자함"을 꼬집은 적은 있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 북한 정권 등 끝나지 않은 침략전쟁에 반성없는 '사실상 전범'들을 눈감고, 패망한 일제의 식민지배사만 눈앞에 소환한다면 저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명칭 논란이라면 군 당국마저 북한 미사일을 '미상·불상 발사체'로 강변, 셀프 무장해제하던 빈손 평화쇼 시절도 만만치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느 쪽이 국익 추구세력인지 '정체성 전쟁'은 한층 치열해질텐데, 야당이라고 예외지대에 있는 게 아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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