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식모’와 ‘동남아 이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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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시골에는 도짓논을 부쳐먹는 집이 있었다.
이런 가정의 소녀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도회지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는 일이 흔했다.
'식모(食母)'는 말 그대로 밥 해주는 사람이다.
현관 바로 곁에 '식모방'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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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 반포주공 1단지는 1970년대 한강변 채소밭, 갈대밭을 갈아 조성했다. 국내 최초의 대규모 주공단지다. 부촌형 아파트로 ‘강남불패 신화’의 시작이었다. 가장 작은 72㎡(22평형) 분양가가 당시 서울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00배가량인 395만원이었다. 그 작은 22평 공간에 방이 3개나 됐다. 현관 바로 곁에 ‘식모방’이 있어서다. 성인 한 명이 잘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다. 2021년 재건축 이전에 이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주로 옷방이나 창고 용도로 썼다. 반포주공 이후 지어진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부엌 옆 공간에도 외딴섬처럼 식모방이 갖춰져 있다.
‘식모’라는 말은 반포주공이 허물어지기 훨씬 이전 사라졌다. 경제성장 덕에 여성들도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가사노동을 ‘3D 업종’으로 분류해야 할 판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정 생계를 유지하는 시대도 아니다. 아침 식탁에 올릴 음식을 밤에 앱으로 주문하면 새벽에 현관 앞까지 배달된다. 청소도 로봇에 맡기면 집안 구석구석을 알아서 척척 해준다. 그래도 젊은 부부들이 맞닥뜨리는 ‘넘사벽’이 육아다. 외국처럼 ‘베이비시터’ 역할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올 하반기 동남아 출신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실시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내국인 외에 재중동포로 제한된 가사도우미 조건을 풀어 ‘동남아 이모님’을 들여온다는 것이다. ‘재중동포 이모님’들 눈치를 봐온 이들이 반긴다. 하지만 육아를 외국인 손에 맡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출산·보육 인프라 확충은 사회 몫이다. 가사도우미라는 단어도 식모처럼 사라질 날이 올 수 있을까.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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