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日의 ‘선택적 미안함’과 ‘역사 결벽’

배민영 2023. 5. 1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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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일본을 다녀왔다.

생애 첫 일본 방문은 13년 전 교토였다.

자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종식을 '패전'이 아닌 '종전'이라고 하는 점, 그 전쟁의 마침표를 찍게 한 미국의 원폭 투하를 '1945년의 공습'이라고 하는 점,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점, 정말로 '스미마셍'이라고 해야 할 결정적 순간에 사과하지 않는 그들의 '선택적 미안함'과 특유의 '역사 결벽'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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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일본을 다녀왔다. 생애 첫 일본 방문은 13년 전 교토였다. 그 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의 여러 도시를 다녀왔다. 처음엔 한국과 일본이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문을 거듭할수록 그 생각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대표적인 차이점이라면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일본인들의 언어습관이 아닌가 싶다.

스미마셍은 기본적으로 ‘미안합니다’란 뜻을 담고 있는데, 상대방한테 결례를 범했을 때 흔히 쓰인다. 일상에서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다 보니, 이를테면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이 마땅히 자기 일을 하면서도 손님한테 “스미마셍”이라고 한다. 손님들 역시 종업원을 부를 때 “스미마셍”이라고 한다. 서로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는 일본인 특유의 사고가 스미마셍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언어습관을 탄생시킨 듯하다. 일본 체류 중 셀 수 없이 들었던 스미마셍 중 과연 진심이 담긴 건 몇 개였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배민영 정치부 기자
지난달 방문 때 있었던 일들도 그러한 의심을 갖게 했다. 한번은 어느 상점에서 계산을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점원이 대뜸 와선 “줄을 왜 안 서느냐”며 “아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고는 줄 맨 뒤쪽을 손가락으로 맹렬히 가리키며 “저쪽에 서라”고 했다. 결국 점원의 착각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전철을 타고 이동 중일 때였다. 열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자 한 승객이 중심을 잃으며 자신의 구두 밑바닥을 좌석에 앉아 있던 나의 바지에 문질러 버렸다. 그 역시 사과할 생각조차 없다는 듯 아예 뒤돌아섰다. 스미마셍이란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와야 할 상황에서 정작 그들은 함구했다.

한 일본통으로부터 “‘자신의 실수’란 건 그들만의 매뉴얼에 상정돼 있지 않다”는 말을 들은 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 설명을 들으니 많은 게 설명됐다. 자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종식을 ‘패전’이 아닌 ‘종전’이라고 하는 점, 그 전쟁의 마침표를 찍게 한 미국의 원폭 투하를 ‘1945년의 공습’이라고 하는 점,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점, 정말로 ‘스미마셍’이라고 해야 할 결정적 순간에 사과하지 않는 그들의 ‘선택적 미안함’과 특유의 ‘역사 결벽’ 말이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을 루스 베데딕트(1887~1948)는 저서 ‘국화와 칼’(1946)에서 일찌감치 설명했다. 이 책은 일제 패망 1년 전인 1944년 미국 정부의 의뢰로 쓰였다. 당시엔 적이었던 일본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미국의 판단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고전으로 꼽힌다.

기자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할 즈음 일부 야당 의원들이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반대하기 위해 항의 방일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물잔 외교’를 두곤 ‘통 큰 양보’니 ‘대일 굴욕외교’니 하는 말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일본은 우리의 자중지란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띠지 않았을까.

배민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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