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세종이 ‘민족의 스승’인 까닭
인재 적재적소 등용 ‘포용 리더십’도
5월은 정말 행사가 많은 달이다.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그리고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은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이다. 세종은 1397년 음력 4월10일에 한양 준수방(현재의 서울 서촌)에서 태어났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5월15일이다. 스승의 날은 한글을 창제하여 온 백성에게 가르침을 준 세종이 우리 민족 모두에게 스승인 점을 강조하고, 모든 스승이 세종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은 인재 등용에 있어서는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인 대표적인 왕이었다. 과학자 장영실의 활약이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천민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을 뚫었다는 점이다.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 소주, 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보듯 세종은 편견 없이 그를 후원했고, 장영실은 최고의 과학자가 되어 세종의 기대에 보답하였다.
조선의 명재상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황희는 한때 세종의 즉위를 반대한 인물이었다. 태종이 14년 동안 세자의 자리에 있던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충녕대군(후의 세종)을 후계자로 정하자, 황희는 이에 반대했고 태종 때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황희의 능력을 인정한 세종은 다시 관직에 등용했고, 세종 시대를 대표하는 정승으로 활약하였다.
세종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맞게 등용했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통한 인재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1420년(세종 2) 경복궁에 설치된 집현전(集賢殿)은 인재들의 싱크탱크가 되었다.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하위지, 최항 등은 집현전에서 세종이 맡긴 국가의 정책 과제들을 연구하였고 성과를 만들었다.
집현전이 위치했던 곳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왕이 조회와 정사를 보는 근정전이나 사정전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종은 수시로 이곳을 방문하여 학자들을 격려하였다. 어느날 밤 집현전에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본 세종이 이곳에서 깜빡 잠이 든 신숙주에게 왕이 입고 있던 용포(龍袍)를 덮어주었고, 이 일화는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집현전에서는 주로 고제(古制)에 대한 해석과 함께 정치 현안의 정책 과제들을 연구하였다. 주택에 관한 옛 제도를 조사한다거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의 접대 방안, 염전법에 관한 연구, 외교문서의 작성, 조선의 약초 조사 등 다양한 연구와 편찬 활동이 집현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집현전에 소속된 학자들은 왕을 교육하는 경연관, 왕세자를 교육하는 서연관, 과거시험의 시관(試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임무도 동시에 부여받았다. 그만큼 세종은 이들을 신뢰했고 국가의 기둥으로 키운 것이다. 집현전의 설치는 왕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집현전이라는 인재의 싱크탱크를 활용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민족의 스승으로서 세종이 보인 리더십과 성과들이 현재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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