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운을 줍는 사람들
조성진 대타로 나서 월드 스타로
日 오타니도 ‘만다라트 계획’ 실천
꾸준한 성실함이 ‘운의 씨앗’ 심어
운동을 곧잘 했었다. 덕분에 체육선생님의 신임을 두둑이 받곤 했는데,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가. 수업 중 느닷없이 불려 나간 곳은 도내 육상선수대회였다. 선수 한 명이 이탈하면서 대타로 100m 달리기에 차출된 건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러모로 어리둥절. 여차여차해서 결승까지 진출했으니 의기양양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말은 사뭇 교훈적이었으니, 예선까지는 어느 정도의 요행이 통했지만 결승전에서는 어림없었다. “준비, 탕!” 나는 출발에서부터 한참을 밀렸고, 경쟁자들의 뒤통수만 구경하다가 꼴찌로 결승선에 도착했다. 스타트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거리에서 오랜 시간 출발 연습을 한 친구들과 수업 도중 불려 나온 나 사이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했던 것이다.
알다시피 주원은 이후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를 통해 범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대타로 나선 무대에서 세계적 스타가 된 케이스다. 2017년, 부상 입은 랑랑 대신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인) 베를린 필하모닉 무대에 선 조성진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하며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면 대신 무대에 오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고, 얻었다 해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3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조성진을 보다가 인상적으로 박힌 부분이 있다. 2015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을 때를 언급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콩쿠르 우승한 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이거든요. 생각했죠.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사람이구나. 이 음악계에서 완전히 신생아구나.” 최고의 순간, 가장 낮은 자세에서 생각하기. 성장하기 위해 매일매일 피아노 앞에 앉았을 그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머리에 그려졌다.
최근 나는 ‘꾸준함’이라는 것이, 운을 줍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팀 우승을 이끈 오타니 쇼헤이를 통해서다.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훈훈해서 ‘순정만화의 실사화’라는 이야길 듣는 오타니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건, 그가 자기 계발법으로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계획표’다. 가로·세로 3칸씩 구성된 정사각형 한가운데 최종목표를 적고 그 주위로 세부 목표를 채운 후 이를 위한 실행 계획을 64개 세부안으로 나눠 실천하는 것인데, 여러 항목 중 눈길을 끄는 건 ‘운(運)’이다. 배려, 예의, 심판을 대하는 태도 등이 채워진 이곳엔 하물며 ‘쓰레기 줍기’도 있다.
실제로 쓰레기 줍는 모습이 여러 차례 중계방송에 잡히기도 한 오타니. 이에 대해 그가 한 말이 또 만화적이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겁니다.” 아마 그가 생각하는 운이란, ‘갑작스럽게 찾아드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획득하는’ 것일 것이다. 이때의 관건은, 꾸준함. 꾸준함으로 기회가 될지도 모를 씨앗을 줍는 것이다. 그 씨앗이 꽃을 피우지 못할 수는 있지만, 줍지 않으면 피지도 못할 테니까.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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