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네게 줄 수 있는 건 차비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글 쓰는 후배를 만났다.
5년 만의 재회였다.
작가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나를 처음 만났는데, 헤어질 때 내가 자신을 슬쩍 따라오더니 차비를 주더란다.
글 쓰는 선배는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게 차비밖에 없어요.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10여년 전 자신이 막 등단했을 때의 일을 소환했다. 작가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나를 처음 만났는데, 헤어질 때 내가 자신을 슬쩍 따라오더니 차비를 주더란다. 막차가 끊긴 시간도 아니어서 웬 차비냐고 묻자 내가 대답했단다. 이래야 한다고 선배에게 배웠어요.
그렇게 근 20년 전, 내가 등단하던 해의 일이 소환되었다. 어느 출판사에서 오라기에 갔더니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대거 모인 술자리였다. 나는 그냥 그들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돌을 만난 중학생처럼 신기하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다.
소설가 L이 나타난 것은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전작이 있었는지 이미 취한 상태였던 그는 곧바로 작가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문득 내게 누구냐고 물었다. 올해 등단?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좋겠지. 근데 일년 뒤에도 계속 글 쓰고 있을까? 책 낼 수 있을까? 흥. 어디 두고 보자. 다른 작가들이 웬 악담이냐고 만류할 정도로 그의 말투는 신랄했다.
반전은 내가 그만 집에 가겠노라며 일어섰을 때였다. 그가 조심해서 가라며 대뜸 차비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내가 고사하자 그는 말했다. 글 쓰는 선배는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게 차비밖에 없어요. 다른 건 못 해주지. 글은 혼자 쓰는 거니까. 그만큼 작가로 살기가 힘들다는 얘기이니까 내 말에 혹시라도 상처 받지 말고 끝까지 써요. 그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막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으나 어쩐지 그가 준 차비를 다른 용도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그 일은 어떤 위로나 격려보다도 더 다정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선배님을 뵙지 못한 지 10년이 넘었다. 이참에 용기를 내어 안부 전화 한 번 드려봐야겠다.
김미월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