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책과 삶]

배문규 기자 2023. 5. 1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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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
카일 차이카 지음·박성혜 옮김
필로우 | 360쪽 | 1만8000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의 구호는 삶의 태도마저 되어버린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요철 없이 새하얗게 마감된 방,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 옷은 종류별로 한 벌만 있으면 된다는 유기농 소재 의류 브랜드까지. 사방이 ‘단순함에 대한 열망’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미국 작가 카일 차이카는 “우리의 침실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다”고, 상업화되면서 진부해져버린 미니멀리즘을 비판한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엄청난 양의 전기를 소비하는 데이터센터, 노동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중국의 공장들, 주석을 캐느라 황폐한 진흙 구덩이 광산”에 의존한 ‘맥시멀리즘의 집합체’라는 비판과 같은 날카로운 통찰이다.

책의 구성도 ‘미니멀’하다. 목차는 저자가 미니멀리즘의 특징으로 꼽은 ‘줄임’ ‘비움’ ‘침묵’ ‘그늘’이라는 키워드가 네 개의 깔끔한 상자에 배치돼 있으며, 각 장은 다시 여덟 개의 하위 부분으로 짜였다. 저자는 더 깊이 있고, 더 정직하며, 덜 자기중심적인 미니멀리즘을 찾아 맨해튼 한복판에서부터 텍사스의 사막, 교토의 뒷골목을 누빈다. 미술, 음악, 건축, 철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넓고 깊은 시선이 인상적이다.

다만 서양인이 교토의 료안지에서 미니멀리즘의 의미를 새삼 발견하며 끝맺는 흐름은 상투적인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미니멀리즘의 단조로운 표면 너머를 탐구하는 사색들은 흥미롭다. “이건 올바른 것을 소비하자는 이야기도, 잘못된 것을 내다 버리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몰입하기 위한 시도로서 가장 깊숙한 믿음에 도전하자는 이야기다. 현실이나 정답이 모호한 상태가 두려워 피하지 않는 것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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