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병, 별거 아닌 질병이란 말의 폭력성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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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마로 사느라 의사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크론병에 대한 부적절한 묘사로 논란을 빚었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처럼, 질병은 사건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나약하지 않은 환우도 많을뿐더러, 질병을 떨쳐내지 못한 이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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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마로 사느라 의사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크론병에 대한 부적절한 묘사로 논란을 빚었다. 바로, '유전되는 못된 병'이란 대사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작진은 문제적 장면이 방송된 지 사흘이 지나서야 공식 홈페이지에 크론병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이전에도 '갑상선암은 별거 아니다'라는 대사를 버젓이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나는 그 대사에 기가 막혔다.
올해로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지 딱 10년이 지났는데, 처음 '암'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태연해야 하는 건지, 슬퍼야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소리를 내서 엉엉 울게 됐는데, 막연히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절망스럽게 했던 것은 갑상샘암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담론이었다. 내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을 즈음, 갑상샘암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진단 장비의 발달로 갑상샘암 환자가 늘어난 것이며 병의 진행이 느리고 치사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착한 암'이라는 등 암의 환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 많았다. 그러한 논란은 갑상샘암의 보험금 지급액수를 크게 낮추는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도 그와 맥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위로의 말은 '별거 아니다'였다. 가장 심각한 위로는 '보험금을 많이 받아서 좋겠다며 자신도 필요 없는 갑상선을 떼고 보험금을 받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말을 한 지인을 만나지 않았다.
갑상샘암의 치사율이 낮다고 하더라도 일단, 암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상심을 하게 된다. 내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할 정도로 심리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변에서 해주는 '힘내'라는 말도 정말 싫었다. '힘내'라는 말에서 폭력성을 느낄 정도였다. 도저히 힘을 낼 수 없었던 탓이다. 암 환자는 암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닌, 말 때문에 죽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암'이란 진단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 '언어'가 가진 무게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경험에서 나는 지금도 '힘내'라는 말을 선뜻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맛있는 밥을 사준다거나 무언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한다. 내 경험상 그것이 훨씬 실질적인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인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질병이 은유로 작동함을 주장했는데,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에서 질병의 재현은 질병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처럼, 질병은 사건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미디어에서 질병을 재현하는 몸의 이미지는 나약함 그 자체이다. 또한 질병은 반드시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질병을 꼭 그런 식으로 재현해야 할까 싶다. 나약하지 않은 환우도 많을뿐더러, 질병을 떨쳐내지 못한 이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노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질병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질병은 인간과 밀접한 대상이다. 따라서 질병은 극단적 재현보다 일상적인 서사로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윤복실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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